서울대 한의대 단계적 설립론 대두

2003-11-28     
“先 연구소 後 대학원 설립이 현실적” 주장


한의대 설립과 관련한 서울대당국의 의사가 무엇인지 좀처럼 실체가 드러나지 않고 있는 가운데 단계적 설립론이 흘러나와 배경에 눈길이 쏠리고 있다.

서울대측은 한의학발전추진위원회를 구성하여 올초 위원까지 위촉하는 등 물밑작업을 해온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아직 구체적이고 공식적인 반응은 나온 바 없으나 서울대 의대 임상교수들과 친분이 있는 한 관계자는 최근 의대교수들의 한의학에 대한 인식이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그에 따르면 재작년만해도 한의학이란 말조차 꺼내기 힘든 분위기였으나 작년에는 한의학의 존재를 인정하는 데 이르다가 올해는 대학원 과정의 몇 개 科나 연구소 설립 정도는 허용할 수 있다는 식으로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연구기관 설립이나 대학원 과정 설치·운영론은 이미 2001년 10월 당시의 입장에서 크게 벗어나고 있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이때 서울대는 ‘한의학과 신설관련 의견’이라는 제하의 내부 회람용 글에서 “한의학의 과학화가 국가 정책으로 채택되고 정부의 적극적 지원하에 과학화 추진이 시행되는 경우 서울대학교는 한의학의 과학화 및 학문적 연구를 수행하는 연구기관이나 대학원 과정을 설치·운영하는 것을 적극 검토할 수 있다”고 입장을 표명한 바 있다.

연구기관과 대학원 수준은 학부 설립을 바라는 한의계의 입장에서 한참 벗어나는 이야기임에는 분명하지만 현실적인 측면도 고려돼야 한다는 주장도 적지않다. 한의대 설립에 극도의 거부반응을 가진 서울대 교수들을 설득하는 일이 쉽지 않을 뿐더러 학생들의 생각도 완강하다는 것이다. 학생들은 대체로 “한의학을 접할 기회가 전혀 없으며, ‘한의학은 독성 검사, 유효성·안전성이 검증되지 않았다’는 교수들의 강의를 들으면서 자신도 모르게 한의학에 안티가 되어간다”고 호소한다고 한다.

결국 의대교수들을 설득할 수 있으면 학생들의 설득은 자연스럽게 해결되므로 교수들의 설득수단으로 연구소의 설립이 선행돼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는 것이다. 서울대학교 설립법상 연구소에 15명 내외의 교수를 발령낼 수 있으므로 의대교수와의 접촉면적을 늘릴 수 있는 효과가 있고, 서울대교수가 중립을 지키면 다른 의대교수나 7만 양의사의 인식이 개선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나아가 연구소의 설립은 대학원 한의학과 설립으로 연결될 가능성이 높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혹자는 반응이 좋으면 학부의 설립도 기대해볼 수 있다는 논거를 제시한다.

사실 정운찬 서울대 총장도 “학부는 안된다”고 분명하게 밝힌 바 있어 서울대, 좁게는 서울의대측의 입지가 좁아진 측면도 있다. 그러나 한의학의 위상이 좁아진 이유중의 하나가 치료효과의 객관화가 안된 데 있다면 진료보다 연구중심 기관으로 서울대를 바라봐야 한다는 견해도 존재한다.

전국한의대 교수를 다 합친 숫자보다 많다는 서울대 임상 및 연구교수, 분야별로도 없는 게 없는 연구인프라의 보고라는 서울대. 이 서울대에 한의학을 꽃피우는 방법으로 기존의 학부제식 방식에 더해 先 연구소 설립 後 대학원 설립 방식이 추가됨으로써 한의계의 입장이 어떻게 정리될 것인지 논의 전개양상에 귀추가 주목된다.

김승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