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의서산책 686] 사시사철 존귀한 中央土의 의미

「戊己正經抄」

2015-07-03     안상우

 
표지도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군데군데 한지를 꼬아 만든 종이 못으로 질끈 묶어 맨 단권의 필사본이 마치 짚신 신고 황톳길을 묵묵히 걸어온 농사꾼 모습이다. 첫 면에는 ‘醫方新鑑’이라는 표제가 붙어 있고 中風門의 개략과 小續命湯, 疎風湯, 養榮湯 등의 방제가 적혀 있다. 또 뒷면에는 萬應丸, 雄砂丸, 追蟲打鼈丸, 化蟲丸, 使君子丸, 正氣丸 등 蟲痛에 쓰는 처방이 위아래 5단으로 나뉘어 열거되어 있다.
 

◇ 「무기정경초」

하지만 이것이 이 책의 본문은 아닌 듯 다음 장부터는 ‘戊己正經抄’라고 쓴 권수제가 쓰여 있고 조금 색다른 내용이 전개된다. 본문의 첫머리를 읽어 보니 “戊는 陽土이니 그 수는 五요, 己는 陰土이니 그 수는 十이다. 그 자리는 중앙에 위치하니 가장 존귀하다”(戊陽土, 其數五, 己陰土, 其數十. 位居中央, 尊莫尙焉)라고 하였다.

또한 “대륙이 이루어지고 만물이 생겨나는 것이 토에서 비롯되지 않은 것이 없으니 산과 언덕이 솟아나고 나지막한 것과 멀리 뻗어나가고 그 자리에 머무는 것이며, 陰陽의 動靜 변화도 역시 토에 의뢰하지 않은 것이 없으니 성대함으로써 戊己의 큰 덕을 이룬 것이다”라고 하여 무기토의 강력한 生發 작용을 칭송하고 있다.

이어서 ‘子午卯酉는 通天之四門이요, 乾坤艮巽은 立地之四柱’라고 하고 있으니 이것은 다름 아닌 전통지리, 즉 풍수의 기본 개념을 설명하고 있는 문구이다. 대개 그 중요성과 설명방식에 있어서 인체의 중앙토인 脾胃의 중요성을 말하는 것과 매우 흡사한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땅의 비옥도와 可居 즉 살만한 정도는 결국 지세에 따라 바람과 물의 구비 여건이 어떤지에 좌우된다고 볼 수 있는데, 이것이 곧 堪輿라고도 불리는 전통자연지리학을 風水라고 부르는 까닭이라 할 수 있다.

한편 풍수에 대해서는 陰陽論과 五行說을 기반으로 땅에 관한 이치, 즉 地理를 체계화한 전통적 논리구조이며, 「주역」을 주요한 준거로 삼아 追吉避凶을 목적으로 삼는 相地技術學이라는 사전적 정의가 내려져 있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나아가 풍수의 기본논리는 일정한 경로를 따라 땅 속을 돌아다니는 生氣를 접함으로써 복을 얻고 화를 피하자는 것이다. 사람의 몸속에 經絡과 같은 기의 통로가 땅에도 있다는 이론으로서, 경락은 눈으로 보이지 않으나 몸 안의 氣가 전신을 순행하는 통로로 존재하듯이 地氣가 돌아다니는 龍脈도 마찬가지라는 설명이다.

땅 속 생기의 존재 자체는 아직 증명되어 있지 않으나 지기의 존재를 전제로 설명되는 현상들이 많이 있으며, 과학적인 해석이 불가능하다해서 자연계에 엄존하는 모든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다는 것이 풍수론자의 주장이다.

필자는 풍수지리에 문외한인지라 더 이상 세심한 설명을 붙이기 어려우나 대지의 풍요로움과 인체에 있어서의 비위의 기능이 자연과 인체 내에서 건강을 좌우하는 가장 중요한 기반임을 인식해야 한다.

좌청룡우백호로 익숙한 龍虎論을 비롯하여 藏風得水說, 坐向論, 看山論, 入水論 등 다양한 이론설을 갖추고 있으나 아직껏 여전히 비과학적이고 맹목적인 미신으로만 치부되고 있는 전통과학의 한 분야이다.

비판적인 시각은 대개 東晋 郭璞에 의해 제기된 同氣感應說에서 땅속에 묻힌 조상이 살아있는 후손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가설에 의해 수많은 사람들이 명당 터에 집착한 나머지 사회적인 문제를 야기한데서 비롯되어 매우 부정적인 인상을 남겼다. 하지만 조선에서 다산과 성호 같은 학자들이 나서서 감응설을 강하게 비판하였다.

한편 권미에는 手部와 足部의 三陰三陽經絡의 起始와 終止穴位가 도해되어 있고 뒷면에는 萬病全治丸이라는 복합제제가 기재되어 있다. 작자의 의도가 무엇인지는 확인할 수 없으나 모두가 비위와 中央土, 전신건강의 상관관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이다.  

안상우 / 한국한의학연구원 동의보감사업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