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증과 뇌

한방재활의학과 전문의 김지용의 ‘척추관절보감’ <11> 통증이란 무엇인가 ②

2015-05-22     김지용

 김 지 용
한방재활의학과 전문의
통증은 뇌에서 결정한다
만약 앞에서 설명한 C, A-delta 섬유가 ‘통증을 전달’한다면 모든 부상이 우리를 괴롭히고 삶에 큰 위험이 될 것이다. 그런데 차량이 많은 길에서 차도를 건너고 있는데 발목을 삐끗했다고 상상해보자. 나에게 달려오는 버스가 한 대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는 통증을 느끼지 못한다. 차도에서 벗어나게 될 것이다.
무슨 일이 생긴 걸까? 만약 손상된 발목에서 ‘통증 신호’가 뇌로 전달되는 것이라면 통증은 육체적 반응을 약하게 해서 그 자리에서 주저앉게 하고, 결국 차에 치였을 것이다. 그런데 왜 통증을 느끼지 못한 것일까? 그 이유는 발목에서 뇌로 보낸 신호가 ‘통증 신호’가 아니라 ‘위험 신호’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일반적으로 통증 섬유라고 부르는 C, A-delta 섬유들은 통각 수용섬유 (Nociceptive fiber)라고 다시 불러야 한다.

뇌는 신체 내부 뿐만 아니라 주변 환경으로 부터 지속적으로 정보를 수집한다. 그리고 살아남고 생존하기 위해서 어떤 반응이 가장 적절할지 결정한다. 조직은 통각 수용신호나 위험신호를 전달할 뿐, ‘통증’을 결정하는 것은 뇌이다.

통증을 결정하는 뇌의 과정
뇌는 통각 신호를 분석해서 두 가지 결정을 내린다. 먼저, 이 통각 신호가 생존에 위협이 되는지 결정한다. 통각 신호가 위협이 아니라면 무시된다. 두 번째로 위협을 주는 신호라고 판단되면 통증으로 느낀다. 그리고 그 통증에서 벗어나거나 생존을 보장받기 위한 행동을 명령한다.
이 과정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위협의 유무를 결정하기 위해 신체 내부의 신호와 외부의 정보를 모두 취합해야하기 때문이다. 일단 취합되면 각 부분을 지배하는 뇌의 구역은 활성화가 되고, 연계되어 분석하기 시작한다. 이런 일련의 역동적 활동을 뉴로매트릭스라고 하고 활성화되는 뇌의 패턴을 뉴로태그라고 한다.

뉴로매트릭스는 통증을 결정하는 방정식이다. 세포 손상에 대한 통각 수용의 뉴로태그가 기본이지만 그 외에도 다양한 뉴로태그가 들어간다. 이전에 삐끗했던 자세에 대한 위치감각의 뉴로태그, 내 몸은 회복되기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과 기대에 대한 뉴로태그, 우울·긴장·슬픔·절망과 같은 감정에 대한 뉴로태그, 직업·재산·대인관계 등 사회적 관계에 대한 뉴로태그, 혈압·pH·산소포화도·포만감 등 내수용 감각에 대한 뉴로태그 등이 있다.

이런 뉴로태그들을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없으므로 통증의 원인이 순전히 통각 수용 때문인지, 아니면 그 외의 요소들이 작용하고 있는지 알 수 없다. 그렇다면 뉴로태그의 객관적 수치가 계산될 수 있다면 통증을 정확히 진단하고 치료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뉴로매트릭스의 방정식을 모르기 때문이다. 그 외에도 각 요소들이 얼마나 영향을 미칠지에 대한 다양한 변수가 있다.

첫째, 감각신경이 척수 후각에 들어가는 과정에서 역치가 낮아지면서 증폭될 수 있다. 척수 후각은 아주 많은 말초신경에서 신호를 받기 때문에, 이런 상황이 통증의 원인이 되면 더 넓은 부위에 모호하고 애매한 통증으로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둘째, 신경을 감싸는 수초에 발생한 염증은 스스로 통증에 대한 신호를 만들어서 뇌로 전달한다. 뇌에 신호가 전달되면 이 신호는 신경의 중간에서 손상되어 발생한 신호라고 생각지 않고 그 신경의 말초에 존재하는 통각수용기에서 (예를 들어 팔 중간의 신경초의 손상이 있지만 손끝에 손상이 있는 것처럼 느낌) 문제가 발생한 것처럼 느낀다.

셋째, 특정 뉴로태그들이 통증 뉴로태그와 동시발화를 자주하면, 특정 뉴로태그의 작은 활성에도 통증을 느낄 가능성이 높다. 계단을 내려갈 때마다 무릎 통증이 있는 환자가 있다면, 무릎 통증의 원인 (염증, 외상 등)이 해결되어도 계단을 내려갈 때 통증을 호소할 수 있다. 통증을 자극하는 움직임은 최대한 피해야하는 이유이다.

만성 통증의 이해: 고전 통증 이론과 현대 통증 이론의 조화
지금까지 통증의 개요에 대해서 보았다. 결국 치료자는 고전적인 통증(세포 손상과 염증으로 인한 통각 수용)과 현대적인 통증(통증 뉴로매트릭스의 결정)을 모두 이해하고, 환자의 통증에 어떤 요소가 가장 크게 관여하는지 판단하여 치료계획을 세워야 한다. 통증이 만성화될수록 여러 가지 변수를 고려해야 한다.
첫째로 몸의 손상과 염증이 너무 커서 치유에 오래 걸리는 경우가 있다. 이런 경우에는 염증의 제거와 손상의 회복과정을 위해서 입원치료가 필요하기도 한다. 특히 통각수용의 원천이 디스크나 관절 내부와 같이 체중을 지지하는 곳이라면 더욱 그렇다. 주변 근육에 대한 재활치료, 정상적인 움직임에 대한 훈련을 통해서 일상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두번째로 뇌, 신경적 요소로 인해 모든 해부학적 요소가 정상적으로 되었는데도 통증을 느끼고 있는 경우가 있다. 신체에 가해지는 위협이 없고 안전한 상태라고 뇌에서 판단하도록 도와줘야 한다. 바른 움직임을 통해 고유수용감각의 교육이 필요할 수 있고, 심리적 상담이 필요할 수도 있다. 이런 치료적 접근법을 치료적 신경과학 교육(TNE, Therapeutic Neuroscience Education)이라고 한다.

그러나 고전적인 통증 이론을 통한 치료와 현대적인 통증 이론에 의한 치료는 서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다. 만성적인 허리 염좌 환자가 갑자기 최근 다시 허리를 삐끗해서 급성 염증으로 인한 손상이 심해질 수도 있고, 급성 허리 염좌 환자가 움직임의 회복의 부재와 뇌, 신경, 심리적 문제로 인해서 만성 통증으로 넘어갈 수 있다. 반대로 급성 요통 환자가 만성적으로 지속된다 하더라도 이것이 뇌, 신경적 요인이 아닐 수도 있다. 업무를 쉬지 못해 지속적인 물리적 자극에 의한 지속적인 염증반응과 통증을 만들어 낼 수 있다. 그러므로 환자의 통증은 모두 같은 것이 아니라는 생각으로 접근해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