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사의 팔은 밖으로 굽어야 한다

안종주의 일침(一針)

2014-02-27     안종주
안 종 주
전 ‘한겨레신문’
보건복지전문기자
보건학 박사
정상인들의 팔은 안으로 굽는다. 팔이 밖으로 굽으면 비정상, 즉 치료해야 할 대상이 된다. 이는 사람의 육체를 두고 하는 말일 뿐이다. 우리는 가족이나, 조직 또는 조직 구성원이 저지른 잘못에 대해 제대로 된 조치를 하지 않고 깔아뭉갤 때 ‘팔이 안으로 굽는 법’이라는 비유를 즐겨 쓴다. 어떤 조직 구성원이 비리나 부도덕한 일을 저질러 사회에서 손가락질을 받을 때 애써 외면하는 일은 예나 지금이나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정부부처나 공공기관, 정당이나 단체, 법조계, 언론계, 학계 등 거의 모든 곳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보건의료계도 예외는 아니다. 그동안 의료계와 약계, 한의계 등에서도 이런 일이 비일비재했다. 의사가 여성환자들을 마취하고 성폭행해 감방을 갔다 와도 처벌을 받은 뒤 곧바로 다시 병원 문을 열고 진료를 한다. 의료인으로서 ‘나쁜 짓’을 하고 있다는 것을 가장 빨리 알아차리는 사람은 동료들이다. 하지만 동업자 의식 과잉으로 이를 모른 척하는 경우가 그동안 많았다. 이런 일이 잦을수록 그 직종에 대한 일반 대중들의 신뢰는 크게 떨어진다.

그동안 보건의료인 가운데 한의계 종사자들에 대한 일반 시민들의 신뢰가 나쁜 편은 아니었다. 하지만 날이 갈수록 그 신뢰가 떨어지고 있다. 환자를 놓고 양의계와의 치열한 경쟁에서 밀리고 있는데다 한의사의 수도 계속 늘고 있어 한의원들의 경영은 계속 어려워지고 있는 상황이다. 비도덕적인 시술이나 처방, 과대광고·선전이 한의계 내에서 똬리를 틀 가능성이 점점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2월 중순 ‘한방 가슴성형 전문’을 내세운 서울 강남구 신사동의 어느 유명 한의원이 환자들한테서 1인 당 수백만 원의 시술비를 미리 받은 뒤 병원 문을 닫고 잠적한 사건이 발생했다. 당연히 거의 모든 언론이 앞 다퉈 이를 크게 다뤘다. 한의사에 대한 신뢰에 먹칠을 가할 수 있는 사건이다. 이 한의원의 원장은 지난 2006년 가슴 부위에 여려 차례 침을 찔러 ‘가슴 크기를 한 컵 가량 키우는 한방 가슴 확대 시술법’을 개발했다고 주장했다. 그 뒤 수십 곳의 한의원이 이런 한방 가슴 침 시술을 벌이고 있다고 한다. 한방 가슴 성형 침 시술의 선구자로 유명해진 그는 지난해 한 케이블방송의 성형 시술 관련 프로그램에 한의사로는 처음으로 출연까지 했다고 한다. 또 이 한의원은 강남구청이 지난해 3월 외국인 환자 유치 증대를 위해 선정한 ‘강남구의료관광협력기관’이 되기도 했다.

이 한의사가 개발한 가슴 성형 침시술법은 2008년과 2010년 ‘대한침구학회지’에 그 방법과 효과에 대한 논문이 실려 그 과학성이 검증되었다고 한다. 2008년 대전대 한의대가 이 학술지에 발표한 연구결과를 보면, 시술 후 평균 2.6㎝ 가슴이 커져 가슴이 올라가는 리프팅효과가 입증됐다는 것이다. 브래지어 한 컵 기준은 2.5㎝이므로 시술 이후 평균 한 컵 이상 가슴 확대 효과가 있었던 것으로 나타난 셈이다. 가슴 확대 침술의 원리는 침이 경혈과 경락을 자극해 기의 흐름을 원활히 하고 이에 따라 더 많은 기가 가슴에 전달되어 막혔던 혈이 뚫려 가슴이 커진다는 것이다.

가슴 성형은 양방의 경우 전신마취를 한 뒤 살을 째고 여기에다 큼지막한 보형물을 넣어야 하기 때문에 수술 후 상당 시일 정상적 사회생활을 하기 힘들고 수술사고와 부작용 등에 대한 우려가 있다. 하지만 한방의 경우 침 자극과 일부 약물 주입 요법으로 시술이 이루어져 상대적으로 부작용이 적을 것으로 인식돼 최근 제법 많은 사람들이 한방성형 전문 한의원을 찾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보형물을 집어넣는 양방의 가슴성형은 단 시간 내 확실한 효과가 있는 반면 한방시술은 그 효과를 보기 위해서는 수개월이 걸리는데다 사람에 따라 효과가 낮거나 없을 수도 있다. 이번에 문제가 된 한의원은 수백만 원 하는, 값비싼 시술비를 미리 받고 원장이 잠적한 것 외에도 일부 시술을 받은 환자들이 부작용을 호소하고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고 주장함으로써 과대 홍보선전이 문제가 되고 있다.

한방성형은 경영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한의계로서는 블루오션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너도나도 뛰어들어 일부 부실한 실력의 한의사들이 환자들의 기대치에 부응하지 못하거나 모두에게 뚜렷한 효과가 있을 것처럼 과대선전을 할 경우, 또 이번 사건처럼 돈 받고 잠적하는 부도덕한 일이 벌어질 경우 블루오션도 하루아침에 레드오션이 될 수 있다. 질서를 바로잡고 윤리를 바로 세우는 일은 바로 이런 상황에서 필요하다. 그래야 대다수 양식 있고 정직한 한의사들이 보호와 신뢰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물의를 빚는 한의사에게는 솜방망이가 아닌 홍두깨로 내리쳐야 한다. 이를 위해 대한민국 한의사들이여! 오늘부터 밖으로 굽는 팔을 가지자.


<필자 약력>
서울신문 과학/의학전문기자, 한겨레신문 사회부장, 보건복지전문기자, 국민건강보험공단 상임이사, 현 한국사회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저서로는 「에이즈 엑스화일」 「한국 의사들이 사는 법」 「인간복제 그 빛과 그림자」 「석면, 침묵의 살인자」 「위험증폭사회」 등이 있다. 현재 ‘내일신문’과 ‘프레시안’ 등에서 고정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