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사의 팔은 밖으로 굽어야 한다
안종주의 일침(一針)
2014-02-27 안종주
그동안 보건의료인 가운데 한의계 종사자들에 대한 일반 시민들의 신뢰가 나쁜 편은 아니었다. 하지만 날이 갈수록 그 신뢰가 떨어지고 있다. 환자를 놓고 양의계와의 치열한 경쟁에서 밀리고 있는데다 한의사의 수도 계속 늘고 있어 한의원들의 경영은 계속 어려워지고 있는 상황이다. 비도덕적인 시술이나 처방, 과대광고·선전이 한의계 내에서 똬리를 틀 가능성이 점점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2월 중순 ‘한방 가슴성형 전문’을 내세운 서울 강남구 신사동의 어느 유명 한의원이 환자들한테서 1인 당 수백만 원의 시술비를 미리 받은 뒤 병원 문을 닫고 잠적한 사건이 발생했다. 당연히 거의 모든 언론이 앞 다퉈 이를 크게 다뤘다. 한의사에 대한 신뢰에 먹칠을 가할 수 있는 사건이다. 이 한의원의 원장은 지난 2006년 가슴 부위에 여려 차례 침을 찔러 ‘가슴 크기를 한 컵 가량 키우는 한방 가슴 확대 시술법’을 개발했다고 주장했다. 그 뒤 수십 곳의 한의원이 이런 한방 가슴 침 시술을 벌이고 있다고 한다. 한방 가슴 성형 침 시술의 선구자로 유명해진 그는 지난해 한 케이블방송의 성형 시술 관련 프로그램에 한의사로는 처음으로 출연까지 했다고 한다. 또 이 한의원은 강남구청이 지난해 3월 외국인 환자 유치 증대를 위해 선정한 ‘강남구의료관광협력기관’이 되기도 했다.
이 한의사가 개발한 가슴 성형 침시술법은 2008년과 2010년 ‘대한침구학회지’에 그 방법과 효과에 대한 논문이 실려 그 과학성이 검증되었다고 한다. 2008년 대전대 한의대가 이 학술지에 발표한 연구결과를 보면, 시술 후 평균 2.6㎝ 가슴이 커져 가슴이 올라가는 리프팅효과가 입증됐다는 것이다. 브래지어 한 컵 기준은 2.5㎝이므로 시술 이후 평균 한 컵 이상 가슴 확대 효과가 있었던 것으로 나타난 셈이다. 가슴 확대 침술의 원리는 침이 경혈과 경락을 자극해 기의 흐름을 원활히 하고 이에 따라 더 많은 기가 가슴에 전달되어 막혔던 혈이 뚫려 가슴이 커진다는 것이다.
가슴 성형은 양방의 경우 전신마취를 한 뒤 살을 째고 여기에다 큼지막한 보형물을 넣어야 하기 때문에 수술 후 상당 시일 정상적 사회생활을 하기 힘들고 수술사고와 부작용 등에 대한 우려가 있다. 하지만 한방의 경우 침 자극과 일부 약물 주입 요법으로 시술이 이루어져 상대적으로 부작용이 적을 것으로 인식돼 최근 제법 많은 사람들이 한방성형 전문 한의원을 찾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보형물을 집어넣는 양방의 가슴성형은 단 시간 내 확실한 효과가 있는 반면 한방시술은 그 효과를 보기 위해서는 수개월이 걸리는데다 사람에 따라 효과가 낮거나 없을 수도 있다. 이번에 문제가 된 한의원은 수백만 원 하는, 값비싼 시술비를 미리 받고 원장이 잠적한 것 외에도 일부 시술을 받은 환자들이 부작용을 호소하고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고 주장함으로써 과대 홍보선전이 문제가 되고 있다.
한방성형은 경영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한의계로서는 블루오션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너도나도 뛰어들어 일부 부실한 실력의 한의사들이 환자들의 기대치에 부응하지 못하거나 모두에게 뚜렷한 효과가 있을 것처럼 과대선전을 할 경우, 또 이번 사건처럼 돈 받고 잠적하는 부도덕한 일이 벌어질 경우 블루오션도 하루아침에 레드오션이 될 수 있다. 질서를 바로잡고 윤리를 바로 세우는 일은 바로 이런 상황에서 필요하다. 그래야 대다수 양식 있고 정직한 한의사들이 보호와 신뢰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물의를 빚는 한의사에게는 솜방망이가 아닌 홍두깨로 내리쳐야 한다. 이를 위해 대한민국 한의사들이여! 오늘부터 밖으로 굽는 팔을 가지자.
<필자 약력>
서울신문 과학/의학전문기자, 한겨레신문 사회부장, 보건복지전문기자, 국민건강보험공단 상임이사, 현 한국사회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저서로는 「에이즈 엑스화일」 「한국 의사들이 사는 법」 「인간복제 그 빛과 그림자」 「석면, 침묵의 살인자」 「위험증폭사회」 등이 있다. 현재 ‘내일신문’과 ‘프레시안’ 등에서 고정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