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의 한의계에 바란다 | 이혜정 경희대 한의과대학 교수

많은 긍정과 소통의 이야기들 나오길

2013-07-18     이혜정

오랫동안 우리 사람의 몸은 질병 중심의 몸이었다. 병이 나서 아프면 당장 훌륭하다고 소문난 의사를 찾아 가서 그 원인을 찾아 증상을 제거하고 나서야 드디어 치료가 다 되었다며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21세기 들어 의학의 폭발적 혁명이 거듭되면서 삶의 질 향상 욕구과 함께 각종 정보와 지식이 팽창하는 가운데, 자기 흥미 위주의 삶이 보편화되고 환자라는 소비자 중심 의학으로 패턴이 바뀌고 있음을 보게 된다.

최근 문학에서 자주 대두되고 있는 스토리텔링은 어떤 문제의 해결을 위하여 필요한 과정이요, 요소로 설명되는데, 이것이 의학에 적용되면 어떤 모습일까? 바로 의료 커뮤니케이션이다.

의사와 환자는 질병이 발생된 길을 따라 이야기를 시작하게 되고, 이때 치료의 적응과정을 따라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중심구조, 즉 ‘공감’이라는 마음 사다리가 건설되기 시작한다. 바야흐로 환자 자신이 왕이라는 자긍심 속에서 긍정적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환자 콘텐츠에 맞춘 통섭의 스토리텔링 요법이 시작되는 것이다. 정신과 치료에서 활용되는 역할 바꾸기 치료도 일종의 스토리텔링으로, 객관적인 타인의 입장이 되어 상대의 이야기 속으로 빠져 들어갈 때 비로소 상대의 입을 빌어 자신의 허점과 모순을 발견하게 되면서 원인 치료의 해법도 찾아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질병중심에서 인간중심 의학으로

이에 서사중심의학(Narrative based Medicine)이라 불리는, ‘절대 진리는 없다’라는 의식의 확산에서 나온 의학의 한 패턴이 그 모습을 드러낸다. 지식 정보의 시대에 들어와 패러다임의 변화 욕구가 급격히 일어나면서, 지식 체계의 완고한 중심이 붕괴되고 쉽고 편하고 소통하기 쉬운 이야기 시대가 도래됨과 함께, 지식과 기술체계 담론에서 내러티브 이야기로의 변화, 질병중심의학에서 인간중심의학으로의 변화들이 서서히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미래 한의학이 어디로 가야하는지에 대한 스토리텔링의 시대정신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과거 중국 금원 사대가들도 치료의 중심에 대한 각각의 주장을 나름대로의 설득력있는 이야기로 설파하여 그 시대의 치료의학을 선도하였다. 또한 우리 한의학에도 그러한 시대정신이 다분히 존재하였으니, 중의학과 구별되는 신토불이의 정서가 깃든 허준의 동의보감, 몸의 체질을 분류하여 치료에 응용했던 이제마의 사상의학 등이 그것이다. 이와 같이 여러 학파의 이론들이 각기 그 고유의 색깔을 나타내며 그 시대의 정신, 그 시대인에 딱 맞는 이른 바 맞춤치료를 선도하여 왔던 것이다.

신(神) 또는 기(氣)에너지 개념이 주를 이룬 고대 그리스철학을 보면, 그 시대 사람들의 사유방식이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세계관과 인체관이 동양철학의 유기적 정체관과 매우 비슷하며 거대한 우주적 이야기마저 내재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다시 르네상스 시대에 이르면 인간성 회복이라는 화두가 빛을 발하다가, 근대에 들어서서는 실증주의, 합리주의가 대두된다. 나아가 초립자물리학이나 인공위성 발사, 또는 유전자지도 작성 등 급격한 과학의 발전을 이룬 현대에 들어와서는 우리 인간은 모든 것을 정복한 듯 했지만, 오늘날 모두는 여전히 탈현대의 시대라 말해도 좋을 만큼 인간과 자연의 조화를 노래하며 다시 옛 시절을 그리워하고 있다. 
소통과 융합의 시대라 불리는 지금, 예를 들어 문학과 물리학과 의학이 서로 공감할 수 있는 것일까? 아니면 옛 시대의 철학과 의학이 오늘날의 현대과학과 의학을 만나 과연 공감할 수 있는 것일까? 만일 그렇다면 그 공감의 요소는 무엇일까? 당연히 신구 시대적 변화와 적응단계를 통하여 이러한 시대정신은 그 당시의 문화와 사회의 특성을 반영하면서 다양성을 함축하게 될 것이다.

새로운 맞춤형 의료패턴 출현

이제 향후에는 의료의 방식과 시스템의 변화가 당연히 수반되면서 행복과 삶의 질 향상을 위한 복지나 건강추구에 관한 문제가 강하게 대두될 것이며 소비자 욕구의 다양성에 따른 새로운 맞춤형 의료 패턴이 출현할 것이다.

이와 동일한 맥락으로 요즘 대학교육의 관심사로 등장한 문제중심교육(PBL) 프로그램도 지식과 기술 중심의 교육에서 벗어나 학문에 대한 올바른 정체성 확립과 함께 문제 인식과 해결을 위한 방법론을 구축해야 한다는 움직임에서 나왔다.  

이에 더하여 의학의 영역에서는 기초학문과 임상학문의 연계성 교육 및 연구 풍토가 더욱 절실해지고 있는 가운데, 지식의 함양은 물론이고 타 유사 학문과의 소통과 융합을 통한 새로운 의료모형, 삶의 질 향상을 위한 새로운 의료방법론 구축이 더 큰 과제로 남아있다.

‘만물은 흐른다’는 헤라클레이토스의 말과 함께, 시대의 흐름과 정신, 그리고 문화의 변천에 따른, 에너지와 생명을 담은 미래의학이 저만치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음을 주지하면서, 우리 한의학이 시대적 리더쉽을 발휘할 수 있도록 더 많은 긍정과 소통의 이야기들이 나와 주기를 기대한다. 이에 비로소 민족의학의 진정한 열매가 맺혀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