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비평 - 「가짜 우울 : 우울 권하는 사회, 일상 의미화 전략 」

자신의 자유를 되찾아라, 불행을 느낄 자유까지도

2013-01-17     홍세영

에릭 메이젤 著
강순이 譯
마음산책 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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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릭 메이젤 著
강순이 譯
마음산책 刊

선수들은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다. 먼저, 인간이 겪는 불쾌한 경험에 비정상이라는 딱지를 붙여 질병 상품으로 포장한다. 여기에 그럴듯한 이름 짓기를 더하고 대충 증상만 가려주는 치료제를 만들어서 특효약이라는 딱지만 또 한 번 붙여주면 그때부터는 저절로 굴러간다. 이것이 제약자본이 지탱하는 정신건강 산업의 진짜 얼굴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언론과 의료계의 추임새만 적절히 얹어주면 마르지 않는 샘이 따로 없다.

저자는 ‘우울증’은 없고 ‘슬픈 상태’라는 기분이 존재할 뿐이라고 한다. 한의사 입장에서 본다면 물론 한계가 보이는 인식이지만 저자가 경험하는 현실에서는 그래도 가장 나은 인식이 아닌가 싶다. 이 책은 주로 정신건강 산업에 국한된 ‘질병 상품화’를 다루고 있으나 사실상 이러한 상품화 경향은 의료의 전 영역에서 보이는 듯하다.

요즘 우리 주변에서 만날 수 있는 의료계 작명의 걸작선 중에 ‘야식증후군’이 있다. 저녁 식사에서 하루 섭취 칼로리의 대부분을 섭취하며 수면장애를 보이기도 하는 증상을 말한다. 그렇다면…? 아침은 거르고, 점심은 밥맛이 없어 얼추 때우고, 저녁은 거하게 먹고, 늦은 밤까지 회식자리에서 안주 해치우는 직장인이라면 어김없이 야식증후군 ‘환자’가 된다. 일상에서 일어나는 평범한 경험을 병리적인 사건으로 탈바꿈시킨 이 무명의 작명꾼은 과연 의약산업의 재간둥이가 아닐 수 없다.

저자는 우울도 기분, 불행도 기분, 행복 역시도 기분일 뿐이라고 지적한다. 별 다른 기분을 추구하지 말고 그대로 하루하루를 의식적으로 살아야 한다고 설득한다. 온갖 힐링과 마음수련법이 돈을 긁어모으는 세상이건만, 마음의 평정 따위는 그저 무시하라고 주장한다. 쉽지 않은 현실을 버틴답시고 마취상태로 노예를 자청하는 삶에서 뛰쳐나오라고 말한다. 삶의 주인이 되는 길이 요원해 보여도 전진하는 것이 안 하는 것보다 낫다며 격려한다.

이 책의 후반부는 그야말로 자기계발서를 방불케 하지만, 저자의 주장을 듣다보면 여느 책들과는 좀 다르다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힌두교에 절은 세상을 개탄하며 분연히 일어났던 부처의 말들과 어쩐지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제행무상, 일체개고, 제법무아를 현대적으로 바꾼다면 다음과 같은 저자의 말이 되지 않을까?

“수시로 변하는 기분 때문에 행복입네, 불행입네 호들갑스럽게 굴지 말고, 현실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장애물과 함정들이 마치 없다는 듯이 눈감고 살지도 말고, 문제를 풀 사람은 자기 자신밖에 없으니 정신 똑바로 차리고 적당히 쉬어가며 열심히 살아라.” (값 1만 4000원)

홍세영 / 경희대학교 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