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의서산책(516)-「紅疹要訣」

해마다 달라지는 時行毒氣의 유행

2011-12-08     안상우

최근 가까운 분으로부터 손때 묵은 연구자료 하나를 선사받았다. 다소 거칠지만 능숙한 필치로 써 내린 필사본으로 이름 모를 저자의 평소 경험과 각종 마진과 두창서를 참조하여 편집한 방역전문서이다. 「홍진요결」이라는 책 제목에서부터 일찌감치 이 책이 다루고 있는 주제와 성격을 단번에 알아볼 수 있다.

「홍진요결」

앞부분에는 萬氏賦, 治疹總論, 用藥禁忌 등 의론이 수록되어 있고, 이어 遍身繃漲眼赤封閉, 大便急小便澁熱極也, 身體極熱隱伏不出 등 병증, 증상별 치법과 치방이 열거되어 있다. 목록은 있으나 서문이나 발문이 없어 저술 동기를 자세히 알긴 어렵다.

다만 속표지에 ‘庚戌二月日’이라고 등사 시기가 적혀 있고, 또 권미에 “庚戌二月成于咸昌利安”이라고 밝혀져 있는 것으로 보아, 이 책이 대략 1850∼1910년경 현재 상주군 함창지역에서 작성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권두의 萬氏賦는 홍역치법의 대강을 요령 있게 정리한 것으로 다산의 「마과회통」에도 인용된 明代 소아과 명의 萬全의 책에서 뽑은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아마도 저자가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애써 직접 화법을 피하기 위한 방책으로 내세운 것으로 보인다.

治疹總論에서는 홍진과 두창을 비교하여 설명하고, 이 병증이 비록 胎毒에서 출발한 것이지만 時行感氣로 끼고 들어오기 때문에 「醫鑑」 소아문에서는 반진만을 약간 다루고 홍진치법을 찾아볼 수 없다고 문제점을 제기하였다. 이것은 바로 「동의보감」 소아문에서 두창편의 말미에 ‘附癍疹’이라는 항을 두어 소략하게 설명하였을 뿐 홍진에 관한 내용이 상세하지 못함을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문제점에 대해 저자는 두창은 대개 今年運氣에 맞으면, 다른 날에도 대략 통용할 수 있지만, 시행독기에 감염되는 것은 해마다 달라져 지금과 그전의 변증치법이 맞지 않기 때문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바꿔 말해서 요즘 해마다 양상을 달리하여 등장하는 변종 바이러스 질환의 來侵을 눈앞에서 지켜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用藥禁忌는 본문에서 辨症附用藥及禁忌라고 소제가 달려 있는데, 두창에 비해 홍진은 양에 속하는 六腑의 질환으로 정의하고 기병인지라 형체가 드러나지만 痘漿이 흐르지 않고 열증은 많은 반면 한증은 없기 때문에 두창 치법과 전혀 다르다고 하였다.

한편 본문에 消斑 이후 餘熱이 다 제거되지 않은 경우, 황연해독탕에 益元散을 調服한다 했는데, 주석에는 “금년 운기를 살펴보니 삼초와 심화가 모두 부족해서 익원산을 쓸 수 없다”고 밝혀 놓아 일률적인 통용방의 적용보다는 당년 운기에 따라 매년 치방을 바꿔 적용하거나 가감하여 운용했던 것을 알 수 있다.

이하 증상별 치법과 치료법이 수재되어 있는데, 별도로 소제를 두지 않고 해당되는 내용의 상단 여백에 소주제를 압축하여 색인이 편하도록 제목처럼 줄여 달아놓은 곳이 적지 않다. 또 본문 중간에 ‘附南陽方’이라고 적힌 내용이 적지 않게 눈에 띠는데, 이것은 아마도 南陽 李顯吉의 저작이라고 알려진 「마진방」에서 채록한 내용을 독자들로 하여금 쉽게 대조하여 볼 수 있도록 편집한 것으로 여겨진다.

또 본문에 등장하는 처방에 대해서는 방문을 해당 처방명 아래 2줄의 작은 글씨로 적어놓아 알아보기 쉽게 편집해 놓았다. 간간이 보이는 按說은 저자의 경험과 독자적인 견해가 담긴 것이어서 매우 가치가 있는 소중한 내용으로 보인다.

다른 방역서와 마찬가지로 역가 의가의 논설과 제서의 치법, 치방들을 모아 잘 편집해 낸 방역서이지만 저자 특유의 홍진치법에 관한 견해와 경험을 더하여 독창적인 방식으로 엮어낸 점이 매우 돋보이는 저술이라 하겠다.

안상우 / 한국한의학연구원 동의보감기념사업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