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현대 한의학 인물사 (90) - 鄭寅鎭 (1839∼?)

영친왕의 痘候를 완쾌시킨 고종 연간의 典醫

2011-07-07     김남일

 

정인진의 승진관련 기사가 나오는 1903년 4월 28일자 황성신문
鄭寅鎭은 조선 고종 때의 典醫이다. 기록에 따르면 1892년(고종 29)부터 삼등·용인·아산의 현령을 역임하다가 1895년 典醫司의 전의에 임명되었다. 다음해에는 奏任官 6등에 오르고 1897년에는 전의사가 太醫院으로 개칭되었을 때 정3품 통훈대부에 올랐다. 1898년 고종의 병환에 朴準承·洪哲普 등과 함께 別入直待令醫官으로 임명되어 고종이 완쾌되자 1등급 승진되고 熟馬 1필을 하사받았다. 1903년에는 영친왕의 痘候가 나아 회복되자 종2품에까지 올라가게 되었고, 1905년에는 判任官 4등에 서품되는 등 왕실의 전의로서 공이 컸다.

 

비록 국권이 일제에게 넘어가는 비운의 시기에 활동한 인물이지만, 그의 활동은 나름대로 빛난다. 아마도 그의 뛰어난 치료 능력으로 당시 이름을 떨쳤던 典醫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던 것 같다.

당시 그와 함께 이름이 거론되는 인물들로 朴準承, 洪哲普, 李峻奎, 金大鎭 등이 있다. 朴準承(1847-?), 洪哲普(1853-?), 李峻奎(1852-1918) 등 당대를 주름잡았던 典醫들보다 연배상 위였던 이유로 鄭寅鎭은 아마도 궁중에서 주도적 위치에 있었을 것이다.

鄭寅鎭은 대한제국시대에 官報 등에 그의 거취에 대한 기록들이 이어지다가 일제시대에 접어들면서 활동기록이 없어진다. 그가 연로한 것이 이유일 수도 있겠지만, 일제가 조선을 점령하면서 그가 궁중에서의 활동을 접고 재야에서 활동을 시작하였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김남일 / 경희대 한의대 의사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