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단시대 한의사의 존재이유

2010-11-25     권영규

권영규칼럼 - 첨단시대 한의사의 존재이유

지난 주 한국한의학연구원의 연구원들과 만남이 있었다. 서울출장 때문에 중간에 들린 3시간의 짧은 회의였지만 즐거웠다. 최근 한의계에는 즐거운 일이 별로 없지만, 해방이후 한의학의 역사와 미래 한의학을 이어주는 현대 한의사의 역할과 관련된 의견을 주고받았기 때문이다.

우선, 한의사가 국민건강을 위하여 과연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가. 이는 이원화된 의료제도가 가지는 의미와 통한다. 우리나라의 이원화된 의료제도에서 한의사와 양의사의 수적 비교만 보더라도 ‘한방’과 ‘양방’의 대등한 관계는 사실상 비상식적이다. 이점은 양의사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기도 할 것이다. ‘한의사’가 한 명이라도 참석하면 ‘의사’들은 갑자기 상대적 표현으로 ‘양의사’가 되고 만다. 우리가 ‘한방’ 혹은 ‘한’의 용어를 차별적 의미에서 싫어하듯 양의사들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일반 국민들은 ‘한방’과 ‘양방’에 익숙하다. 또한 한의사에게는 ‘양약과 수술’의 부작용을 이유로 상담을 하고, ‘객관적인 진단’의 필요성 때문에 양의사를 찾더라도 굳이 ‘한약’ 복용사실을 밝히지 않는다. 이는 비록 소수의 한의사이지만 한의학을 양의학과 대등하게 유지시켜 양의학의 독점적 시장을 허락하지 않고 의료시장을 조정하고 싶어 하는 국민들의 정서가 반영된 것이라는 해석에 공감하였다.

그리고 첨단 장비를 이용한 ‘과학적인’ 진단에서 배제돼 있는 한의사에게 국민들은 무엇을 기대하고 있는가? 이 문제는 한의사제도가 만들어지면서부터 과학화가 시대적 소명인 것처럼 달려왔던, 그리고 앞으로도 궁극의 목표로 생각하고 있는 이들의 고민과 맞닿아 있다.

다양한 의견이 있겠지만, 미국에서 보완대체의학이 다시 대두된 이유와 관련해 생각할 여지가 있다. 첨단화되고 시스템화 된 병원에서 의사와 환자의 소통시간이나 수단이 배제되면서 환자들은 ‘양방’보다 자신에게 전적으로 관심을 가져주고, 교감이 가능한 신체적 접촉이 많은 ‘보완대체의학’에 대한 만족도가 높아졌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한 이유로 현대의 의사에게 히포크라테스시대의 인간적인 의사로 돌아갈 것을 강조한다.

국내의 조사에서도 양의사의 환자 대면시간이 불과 5분미만인데 반하여 한의사의 상담시간과 침구치료시 신체적 접촉시간은 환자와의 라포형성에 기여하고 진료만족도를 높인다고 한다. 맥진이나 복진 그리고 혈위를 찾는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자연스러운 신체적인 접촉은 모니터만 쳐다보며 환자의 눈도 제대로 맞추지 않는 양의사보다 만족하게 된다. 환자들은 과학화에 가려진 의사의 직접적인 돌봄의 중요함을 바란다.

마지막으로 시간 혹은 비용대비 효과가 탁월한 양방보다 만족스럽지 않을텐데 왜 국민들은 한의학적 치료를 선호하는가? 인공적이고 화학적이며 공격적인 치료의 부작용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간편하고 즉각적이며 일회적인 치료효과가 지속적이지 않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 한의사들은 양의사들과 비교하여 대등한 역할을 해야 한다는 사명감과 책임감 때문에 양약만큼 혹은 수술만큼 효과적이고 효율적이지 않은 우리 전통의 침구 및 약물치료가 불만일 수 있지만, 환자들은 상대적인 가치가 아니라 전통적인 치료가 가지는 장점에 만족하고 있음을 생각해야 한다. 양의학의 치료방법을 배제하거나 뛰어넘을 수 있는 기적적인 치료를 원하는 환자들도 있지만, 자연철학에 바탕을 둔 한의학에 매료된 환자들이 한의원을 찾고 있음을 명심해야 할 것 같다.

힘든 현실에서도 한의사를 존재하게끔 한 역사에 감사하며, 환자들이 왜 우리를 찾는지를 생각하며 한의사 제도가 만들어졌던 처음으로 돌아가야 할 때인 것 같다.

권영규/부산대 한의학전문대학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