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학 원전, 성경인가 불경인가?

내용 모두 신성불가침 영역일까

2010-11-11     강용혁

강용혁 칼럼- 한의학 원전, 성경인가 불경인가? 

한의계의 내로라 하는 한 스타 강사는 “동의보감을 믿어라, 원전을 무조건 믿어라“는 말을 수차례 강조했다. 물론, 원전을 조금 더 치밀하고 깊이 있게 공부하라는 좋은 의도였으리라 생각한다. 동시에, 필자는 “원전을 의심하고 또 의심하라”고 말하고 싶다. 데카르트의 명언대로 ‘나는 의심한다, 고로 존재한다(cogito, ergo sum)’는 회의적 방법론에서 한의학만은 예외일까.

일부 동료의 학문적 논의를 볼 때면 ‘동의보감이 면죄부인가. 수세보원이 도피처인가’ 하는 자괴감마저 든다. “동의보감에 이렇게 나와 있다”는 말 한마디로 모든 책임을 원전으로 돌리곤 한다. 한의대교육 역시 마찬가지다. 원전을 무조건 외우라는 식이다. 누가누가 많이 잘 외우는가로 성적을 매긴다. 당장 외울 것이 지천인데, 의심하고 생각하는 기회를 스스로 갖기란 여간 쉽지 않다. 

원전은 한 구절 한 구절 모두 옳은 것인가. 한의사라면 이를 모두 신성불가침의 영역으로 받아들여야 하는가. 동의보감이나 수세보원에는 허무맹랑하거나 현 시대에는 적합하지 않은 내용은 없을까. 저술 당시 과학으로는 최고 수준에서 기술된 내용이지만, 현재는 달라지거나 폐기처분되어야 할 내용은 없을까. 또한, 그런 지엽적 내용을 의심한다고, 원전의 핵심적 가치까지 훼손되는 것일까.

내용 모두 신성불가침 영역일까
비판 의심 등 정신적 노력 필요


때로는 양의사들의 비판이 싫어서 무조건 반사로 동의보감을 감싸는 것은 아닌가? “이런 부분은 한의사인 우리가 보기에도 말이 안되는 내용들”이라고 솔직히 인정하면 자존심 상하는 일일까.

서양의학은 어떤가? 과연 400년 전 서양의학이 오늘날 의학이라 할 만한 게 몇 프로나 될까? 멀리 갈 것도 없다. 불과 10년 전 교과서 중에도 지금은 용도폐기된 것도 수두룩하다. 혹자는 “의학은 과학을 바탕으로 예술적 판단이 요구되는 학문”이라고 정의했다. 그러나 서양의학은 과학이라는 탈 뒤에 숨어 의사의 예술적 판단은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결국 ‘질병은 고쳤으나 환자는 죽었다’는 모순이 발생한다.

반대로 한의학계는 일반적이며 과학적 타당성은 무시한 채 자의적 판단에 너무 많은 재량권을 주고 있다. 그러다 보니 “한의사는 무당인가” 하는 비난까지 직면하게 된다. 그에 대한 빌미로 애꿎은 동의보감과 수세보원이 볼모가 되어 훼손되는 것은 아닌가.

또한 ‘비판’과 ‘의심’에 소요되는 정신적 에너지와 학문적 노력보다는, ‘차라리 그냥 믿고 보자’는 심리적 게으름이 21세기 한의학을 한 발 더 나아가지 못하게 발목 잡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일부 양의사의 철없는 한의학 폄훼를 논하기 전에 먼저 돌아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강용혁/ 마음자리 한의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