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경희대 한방병원이 살아야 한의계도 산다

2009-12-04     민족

경희대 한방병원이 살아야 한의계도 산다

대학한방병원들이 휘청거리고 있다. 탈출구를 하루 빨리 찾지 못하면 동네 한의원과 경쟁을 벌이는 덩치 큰 한의원으로 전락하기 십상이다. 이미 중소 한방병원은 특화에 실패해 개원가 한의원들과 환자 쟁탈전에 들어간 지 오래다. 진료체계가 지금처럼 헝클어진 상태로 지속될 경우 한의계는 콩가루 집안 신세를 면하기 어렵다. 전국민 대상 한방 주치의제도 도입 역시 불가능한 소망에 불과하다.

특히 경희대 한방병원의 추락은 예사롭지 않다. 이 한방병원은 명실상부한 한의학 메카로 여겨졌다. 국민 대다수가 양방 하면 서울대 의대를 떠올리듯이, 한방 하면 경희대 한방병원을 자연스레 떠올릴 정도였다. 헌데 지금은 옛 명성조차 지키지 못하는 신세라고 하니 기가 찰 노릇이다. 병원 규모가 위축되다 못해 병상이 200개도 넘지 못한다는 얘기는 자괴감마저 안겨준다. 이 한방병원의 부진은 자체 문제에 국한되지 않고, 그 여파가 개원가 전체에 악영향을 주기에 사태의 심각성이 크다.

때문에 경희대 한방병원은 재기해야 한다. 재기의 필요충분조건은 임상능력이 탁월한 한의사들 영입이다. 전국구 스타, 명의로 소문난 한의사로 의료진을 꾸리지 않고는 난관을 해쳐나가기 어렵다. 경희대 한방병원 하면 누구누구 교수 하고 대표선수 이름이 세인들 입에 오르내려야 한다. 교수진 물갈이에는 음참마속이 필요하다. 임상능력이 떨어지는 교수는 과감히 퇴출시켜야 마땅하다. 정에 이끌려, 관계 때문에 우물쭈물하다가는 그나마 재기 가능성마저 영영 잃어버릴 수 있다.

임상능력 평가기준도 실용성에 맞춰야 한다. 꿩 잡는 게 매라는 속언도 있다. SIG급 국제 학회지에 논문 게재도 중요하지만 치료기술이 뛰어난 한의사 확보가 먼저다. 이 전제가 풀리지 않는 한 제 아무리 뛰어난 논문이 나와도 환자들 유치에는 역부족이다. 서울대 의대가 어디 논문 때문에 환자들의 신망을 얻고 있는가. 현실을 직시해야 길이 보인다. 그 누구도 자기 손에 피 묻히기 싫겠지만 한의학을 위해 책임자는 조자룡 헌칼 쓰듯 개혁의 칼날을 휘둘러야 한다.

그래야 임상능력이 떨어져도 눈치 하나로 버티는 교수들이 달라진다. 한의사는 단순한 월급쟁이가 아니다. 생명을 다루는 신성한 직업이란 의식 없이는 책상과 씨름해 가며 임상능력을 키우기 어렵다. 더구나 우리 사회의 수재들을 뽑아 6년 간 교육시켰으면, 응당 그 학생들은 임상능력을 갖춰야 정상이다. 헌데 현실은 영 딴판이다. 사회적 영재들을 받아 한의학 수재로 키워내기 위해서라도 임상능력이 특출난 교수가 반드시 필요하다.

나비효과는 한의계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경희대 한방병원이 다양한 치료기술을 보유하고 새로운 치료영역을 개척해 가면 한의학에 대한 국민 신뢰는 증폭되고, 그 여파는 중소 한방병원과 동네 한의원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다. 알렉산더 대왕이 뒤죽박죽 엉킨 실타래를 단칼에 풀었듯이 경희대 한방병원 책임자는 좌고우면하지 말고 일단 교수진 물갈이부터 시작해라. 물꼬가 트이면 변화의 물결은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다.

091203-칼럼-한방병원-경희대-물갈이-나비효과-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