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혜정 칼럼] 원리의 굴레

2008-11-07     
몇 년 전 한참 의료계연합 개정의료법 반대 시위가 있은 후 의협·치협·간호조무사협·한의협이 릴레이로 광화문의 정부청사 앞에서 의료법 반대 1인 시위를 한 적이 있었다.
나도 그 릴레이 주자중의 한명이었는데, 그때 우리 이외에도 공무원연금법 개정에 반대하는 1인 시위자가 맞은편에 있었다. 그 1인 시위자를 보면서 느낀 것은 “그래 공무원은 철밥통”이라는 생각이었고. 뒤이어 내가 들고 있는 피켓이 어떻게 보일까 생각해보았다.
“그래 전문직은 철밥통.”
오랜만에 1인 시위자의 피켓을 그런 시각으로 보게 되었다.
의료일원화특위의 한방물리치료 급여화 반대 시위가 그것이다. 한의사의 물리치료기 사용에 대해 이만큼 홍보해주고 이슈화라도 시켜 주는 것에 대해 고맙다고 해야 할까.
그쪽의 논리는 간단하다.

“한의사의 현대의료기기 사용은 불법이다. 한의학원리에 의해서 행하라.”

소위 ‘원리’라는 것은 매번 우리에게 불리하게 작용한다. IMS는 양방원리이기에 양의사가 침을 써도 되고, 현대진단기기는 한방원리가 아니기에 한의사가 쓰면 안 된다는 게 그들의 논리이다.
이쯤 되면 답은 간단하지 않은가? 우리가 무얼 게을리 했는지 명확하지 않은가? 우리는 ‘한의학의 과학화’가 아니라 ‘과학의 한의학화’를 했어야 했다. 엑스레이 판독을 한의학적으로 해내고 CT사진과 음영으로 기혈수진액을 판단하고 논문화하면 된다. 즉 한방에서 말하는 어혈은 ‘혈액검사상 이러한 것이다’가 아니라 ‘혈액검사상 이러한 것은 한의학적으로 이것이다’라고 자꾸 시도해야 한다. ‘마황에는 에페드린이 있다’가 아니라 ‘스테로이드는 한의학적 기미성상이 이러하다’라고 해야 한다.

ADHD로 인해 신경정신과 양약을 복용한 아이들의 상당수가 무기력과 체중증가 등을 호소한다. 집중력부족은 정신의 음적인 작용보다 양적인 작용이 활발한 것이고, 그 양약을 한의학적으로 해석한다면 억양의 효능일 것이다. 억양하면 기운이 없고 둔해지며 음이 성해 체중이 증가할 것이다. 스테로이드는 강력한 소염작용과 더불어 진통작용이 있다. 염증과 통증은 모두 화와 열의 결과물이며, 이를 제어하는 것은 한수의 작용이다. 오랜 스테로이드 복용자가 검은빛을 띠고 윤기를 잃고 붓고 추위를 타게 되는 등의 패턴을 보인다. 염증과 그 이외에도 상당수의 많은 양약들이 단지 어떤 팩터에만 작용하게 하고 싶으나 사이드 이펙트(side effect)로 다른 작용을 일으키는 것을 관찰해보면 한의학적으로 매우 타당한 패턴을 보인다.

정작 거대한 과학계는 그런 논문을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스스로 지레 그런 것이 받아들여질 수 없을 것이라 움츠려드는 것이 문제이다. 이런 논문이 나왔을 때 과연 한의학계가 어떻게 반응할까. 왜 아직도 경락에 전기를 걸고 자침을 하고 뇌의 활성부위를 찾는 일에 한의학계가 몰입하고 있어야 하나? 왜 다른 학문을 우리의 언어로 번역해오지 않고 우리학문을 패러다임이 다른 외부학문으로 번역해서 “받아주십시오” 하고 굽신거려야 하는가!
데니스노블과 같은 시스템생물학자가 이런 말을 꺼내들면 “외국의 저명인도 한의학을 인정했어”라고 우쭐하면서 왜 우리스스로 그런 말을 꺼내지도 못하고 논문화·정설화 하지도 못하는가. ‘한의학적 원리’는 우리의 도구이다. 그것이 우리의 굴레가 되지 않게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