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영주 칼럼] 치료 ‘경험’의 중요성

2008-09-26     
유명 대학병원의 중견의사이면서도 환자를 종종 한의사에게 보내는 형식으로 협진을 하고 있는 분을 만날 기회가 있었다. 당연히 제일 궁금한 것은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하게 되었는지”였다. 그 한의사가 고등학교 때부터 친구이기도 했지만, 몇 년 전 오래도록 낫지 않던 본인의 기침을 친구가 보내 준 한약으로 고치고 난 후 한의학을 다시 보게 되었다고 하셨다. 함께 해외 의료봉사를 가서 침 치료로 환자가 그 자리에서 호전되는 것을 보고는, 처음에는 시큰둥했던 다른 의사들도 마음을 열게 되었다는 일화도 이야기 해주셨다.

한의학을 공부하고 싶어 하거나, 한의학에 호감을 표시하는 의사들 대부분은 비슷한 이야기를 한다. 아무리 통계와 과학, 근거중심의학을 강조한다 해도 직간접적인 치료의 경험이 개개인의 의식에 미치는 영향은 그만큼 큰 것이다. 효과가 별로 없었거나, 부작용을 경험했을 때는 반대로 부정적인 의식이 몇 배 강화된다.

의대에서 강의를 하면서 학생들에게 ‘보완대체요법이나 한방치료를 직접 체험해 보거나, 그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인터뷰하는’ 과제를 내주었다. 본인이든 가족이든 과거에 난치병을 한의학으로 치료했던 경험을 쓴 학생들은 한결같이 “잘은 모르지만 한의학에는 뭔가가 있다”는 취지로 글을 맺었다.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분들이지만 전국 각지의 숨어 있는 ‘명의’들에게 절이라도 하고 싶은 감사한 마음이었다.

반대로 특정 질환을 치료한다는 네트워크 한의원에 갔다가 실망했던 일, 비싼 한약을 강요하다시피 해서 불쾌했던 일 등을 쓴 학생들도 많았다. 레포트를 혼자 읽으면서도 낯 뜨거워짐을 피할 수 없었다.
침·뜸에 관한 모 방송사의 추석 특집 프로그램 때문에 말들이 많다. 그러나 같은 방송사의 인기 높은 주부대상 아침 프로그램에는 최근 복수면허자나 한의사가 출연해서 한 시간 내내 한의학을 홍보하기도 했다. 담당 피디가 혹은 가족이 놀라운 치료 경험이 있지 않았을까 상상해 본다.

“가족 고치는 일이 제일 힘들다”는 말이 있긴 하지만, 나 자신은 얼마나 주위 사람들의 병을 잘 치료했을까, 그들이 한의학을 더 신뢰하게 되었을까 그렇지 못했을까 반성이 된다. 우선 부지런히 실력을 더 연마해야 할 테고, 아직 자신이 없다면 좋은 곳을 찾아 소개하는 노력도 아끼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한의사들도 가족이나 친구 중에 의사는 있기 마련이고, 언론 종사자들도 한두 명은 찾을 수 있을 텐데, 우리가 먼저 위축되어, 한방 치료를 권유하고 한의학을 설명하는 데 소극적이었던 건 아닐까?

‘환자를 잘 고치는 것’, 어려운 환자라고 포기하지 말고 정성을 다해 한 명 한 명 잘 치료하는 것이야말로 한의학을 살리는 길이며 한의사로서의 자신감과 자부심을 회복하는 가장 빠른 길이라고 생각된다. 치료율이 높고 치료 노하우가 많은 선배 한의사들은 후배 한의사들에게 그것을 교육하고 아낌없이 공유하는 풍토가 한의계에 더 확산되었으면 좋겠다. 여러 임상유파들은 각자의 장기를 잘 살려서 특정 질환에 대한 치험례들을 집중적으로 만들어내고 정리하는 데 박차를 가했으면 한다.

얼마 전 필자가 펴낸 책을 보고 연락을 해 오신 한의사가 있었다. “더 냉정하게 한의사들의 부족함을 인정해야 했다. 치료되기도 하지만 효과가 없거나 부작용만 내는 경우도 있다. 한방치료는 효과가 천천히 나타난다는 말로 변명만 하지 말고, 환자에게 침구나 한약 치료를 할 때 치료기간이나 예후에 대해 ~일(회)이내 호전이라는 기준을 분명히 제시하고 책임을 져야 한다”는 취지의 말씀을 하셨다. 이렇듯 자신에게 엄격하게 정진하는 많은 분들이 계시는 한 한의학의 미래는 결코 어둡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