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영주 칼럼] 긍정의 힘

2008-06-09     
잠시 일을 쉬면서 개원해 있는 지인들의 한의원을 방문할 기회가 많아졌다. 여러 사람이 모일 때는 경영난이 심각하다는 암울한 이야기들뿐이어서 은근히 걱정스럽기도 했는데, 개별적인 만남들은 그런 걱정을 씻어주었다. 대박을 기대하고 개원한 특화 클리닉들은 생각보다 붐비지 않았지만, 끊임없이 공부하면서 여러 가지 시도로 다양한 질환 치료에 도전하고 있는 이들은 대부분 밝은 모습이었다. 어려운 병이 잘 치료되어 기뻤던 일들을 흥분해서 전하기도 하고, 어떤 이는 그런 사례들을 모아 출판 작업에 들어갔다는 좋은 소식을 알리기도 했다.

개원 의사들이 간혹 큰 병원에 의뢰해야 할 중한 병을 진단해 환자를 구했다는 자랑을 하기는 하지만, 치료가 잘되어 행복해하는 일이 적은 것과는 대조적인 모습이었다. 이들의 자신감과 긍정적 에너지는 항상 능력이 부족하다고 느끼고 잘 위축되는 편인 필자에게 큰 자극이 되었다. 믿는 대로, 생각하는 대로 이루어진다고 주장하는 책들이 베스트셀러 목록에서 내려오지 않는 것은 그것이 진실이기 때문일 것이다. 단점과 문제점만을 나열할 것이 아니라 자신을 긍정하면서 장점과 잘 할 수 있는 것들을 최대화시키는 것이 꿈을 현실로 만드는 길임은 분명하다.

한의학의 최대의 강점은 무엇일까? 질병과 치료의 패러다임이 다른 것이야말로 서양의학과 경쟁할 수 있는 출발점이다. 서양의학의 질병 진단 기준으로 포괄되지 않는 미세한 증상들부터 치료의 대상으로 삼는 治未病의 원칙이 임상에서 더 철저히 구현되어야 한다. 비용을 낮추고 장기복용이 쉬운 환제를 만들어 주로 양약으로 관리되는 고혈압, 당뇨 등의 예방과 치료에 도전하는 것은 훌륭한 시도이다. 만성질병의 국가적 예방, 관리 사업에 한의약이 진출할 수 있는 발판도 될 것이다.

치료에 있어서 正氣, 즉 자연치유력을 최대화하는 원칙은 환자를 치료의 주체로 만들 수 있을 때 진정한 위력을 발휘한다. 자신의 질병을 인지하는 것이 질병 치료에 도움을 주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암 진단의 공포가 환자를 압도하면서 급속도로 병세가 악화되는 것은 매우 흔한 일이거니와, 덜 치명적인 질병에서도 진단명의 꼬리표가 붙는 순간 환자는 더욱 더 환자로 살아가게 되는 것을 자주 본다.

황제내경의 첫 편은 본디 병들 이유가 없고, 온전한 생명력을 가진 인간의 모습을 잘 그려내고 있다. 환자가 한약, 침구, 한의사에게만 의존하지 않고, 자신의 몸, 자기치유력을 믿고 긍정적인 에너지를 만들어 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한의사의 첫째 임무가 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한약도, 침구치료도 더 큰 효과를 낼 수 있다. 친절하게 설명을 잘해주는 것에서 그치지 말고, 한의학 원리에 맞는 올바른 생활습관(식습관, 운동법 등) 상담과 스스로 쉽게 실천할 수 있는 체조, 기공, 명상법 등의 교육이 강화되었으면 한다. 이것은 환자-의사 관계의 신뢰를 높이고 결국에는 경영에도 큰 도움이 됨은 물론이다.

한의계의 산적한 문제 해결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한의학이 위기인가? 한의계의 앞날이 어두운가? 설사 객관적인 분석과 평가가 그러하더라도, 그것을 헤쳐나갈 힘은 한의학을 긍정하는 것에서만 나올 수 있다. 병을 정확히 진단하더라도 환자의 긍정적 태도와 실천이 따라주지 않으면 병을 치료할 수 없듯이 말이다. 문제를 인식하고 지적하더라도 그것을 상황 탓, 남의 탓으로만 돌리거나 냉소적으로 자신의 한계를 긋지는 말자. 이제는 한의학의 무한한 긍정의 힘으로 비난, 원망, 분노, 좌절, 공포의 부정적 에너지의 물길을 돌려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