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계에도 기부문화 불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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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계에도 기부문화 불어라
  • 승인 2003.03.18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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받는 주체의 투명성, 주는 주체의 가치관 중요
기부확산으로 한의학 연구 활성화 이뤄야
사회적 분위기 점증, 절차와 방법 모색할 시점

기부에 인색한 한의계

사회적으로 싹트는 기부문화가 한의학의 발전으로 이어지도록 하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

일간신문을 보다 보면 간간이 일생동안 어렵게 모은 거액의 재산을 아낌없이 기부하여 얼마 남지 않은 인생을 아름답게 정리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을 훈훈하게 만든다.

정부는 기부가 부의 재분배 기능을 담당하고 나아가서는 사회를 살만한 세상으로 만드는 효과가 있다고 보아 기부문화 확산에 주력하고 있다. 정부는 관계부처와 협의해서 기업체에 대한 현행 법인세 5%와 개인기부자에 대한 소득세 10% 감면혜택을 상향조정할 계획이어서 기부자 수가 지금보다 한결 많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참고로 미국은 개인 50%, 기업 10%의 세제혜택이 있고 일본은 모두 25%의 혜택을 주고 있다.

복지부는 또 기업 매출액의 일정부분을 기부토록 하는 공익연계마케팅과 직장근로자가 기부한 만큼 기업에서도 기부하는 직장모금캠페인 등 다양한 방법을 통해 기부문화 확산에 노력하기로 했다.

기부문화 확산을 주도하고 있는 아름다운재단은 ‘유산 1% 남기기 운동’, ‘소득 1% 기증운동’ 등을 전개해 사회적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개인 기부자들의 기부금의 용도는 종종 대학의 발전기금이나 의학발전기금으로 출연하는 경향성을 띠어 한의계의 관심을 끈다. 배우지 못했거나 오랜 동안 질병에 시달린 나머지 다른 사람들은 자신과 같은 한과 고통을 겪지 않도록 이런 기관에 전 재산을 헌납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지금까지 나타난 기부양태로 볼 때 기부금이 한의학 발전으로 이어질 지는 미지수다. 기부금이 극히 일부분의 사례를 제외하고는 한의과대학이나 한방병원, 혹은 한의과대학이 소속된 대학에 전달된 사례가 거의 없는 형편이기 때문이다.

일반인에 의한 기부는 고사하고 한의사 스스로에 의한 기부도 초라한 실정이어서 총체적인 점검이 요구되고 있다. 한의계에 전달되는 기부금은 한의과대학동문회를 통한 대학발전기금 형태와 개인적으로 장학금을 희사하는 경우가 대부분일 뿐 액수와 건수, 기부금의 용도의 다양성에 있어 빈약한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물론 사회적으로도 총 기부금중 80%가 기업체가 내는 현실에 비추어 한의사만 기부에 인색하다고 말하기도 어려운 점이 있는 게 사실이다. 어떤 면으로는 한의사도 개인적으로 협회비, 학회비는 물론이고 지역사회 속에서 알게 모르게 내는 돈이 많아 따지고 보면 허리가 휠 정도라고 하소연하는 한의사들의 주장도 귀담아 들을 내용이 많다. 그러나 이런 기부는 순수한 기부라고 보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순수 기부의 측면에서 말하면 사실 평생 동안 한의학에 의지해서 재산을 형성해왔어도 인생을 정리하는 시점에서 전 재산을 한의학 발전에 헌납한 한의사가 얼마나 될까 하는 의문이 든다. 하다 못해 일생동안 자신의 손때가 묻은 서적을 책임있는 기관에 기증하는 경우도 많지 않은 실정이다. 芝山 박인규 선생이 형상의학회에 15억원을 출연하여 형상재단을 만든 것이나 청강 김영훈 선생의 아들 김기수 씨가 경희대 한의과대학에 장서를 기증한 것은 매우 드문 사례 중의 하나에 속한다. 얼마전 부산에서 부친 장례식을 치른 뒤 남은 300만원을 부산지부에 기증한 경우도 비록 액수는 작아도 한의계의 기부문화를 촉진할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그러나 한의계의 기부는 한의사가 가진 사회적 지위나 재력, 한의학문에 대한 자긍심과 한의계의 일원이라는 강한 유대감 등에 비추어 볼 때 뒤돌아볼 여지가 있는 게 사실이다.

사정이 이러다 보니 한국한의학연구원 같은 경우 정부출연연구원이지만 정부지원예산은 전체의 30%밖에 되지 않아 나머지 70%를 민간에서 끌어와야 하는데도 정작 한의계에서 유입되는 자금은 거의 없는 형편이다. 한국한의학연구원의 한 관계자는 “정부출연 연구원이라 하더라도 옛날과 달리 정부 예산만 갖고 운영하던 시대는 지났다”면서 “민간의 투자와 후원을 받아 자력으로 운영하도록 요구받고 있는 실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한의학연구원은 자생한방병원 신준식 원장으로부터 고서적 300여권을 기증받은 일, 그리고 본사로부터 장비구입비로 2000여만 원을 지원받은 것 말고는 전무한 실정이다.

한의계 내외의 기부문화가 뿌리내리지 못하는 배경에 대해 모 한의대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기부라는 것은 주는 주체와 받는 주체가 분명할 때 활발해지는 것인데 한의계에서 책임있게 기부금을 받을 주체가 과연 있다고 볼 수 있는 지부터 따져봐야 할 것입니다.”

이 교수의 말은 한 마디로 한의계의 각 단체들은 기부금을 받아도 투명하게 사용할 것이라는 신뢰감을 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사학에 대한 불신이 뿌리깊은 한의사들로서는 설사 기부금을 내고 싶어도 한의학 발전보다 양방병원을 키우는 데 써버리는 사학의 행태를 너무 자주 보아온 터라 선뜻 기부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사학에 대한 불신이 정부출연 한의학연구원과 뜻있는 연구단체와 학술·교육기관에게 잘못된 선입견을 불어넣어 피해를 주는 셈이다.

자기 학문에 대한 애정이 부족해서 그렇다는 견해도 있다. 학문에 대한 애정은 학문에 대한 신뢰와 공부하는 과정의 어려움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학문의 소중함, 고마움, 유지·발전시켜야 한다는 사명감이 형성되는 것인데 한의사는 과연 얼마나 학문을 신뢰하면서 강도높은 훈련을 거쳤느냐는 것이다.

혹자는 기부할 시스템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기부는 바람직하지만 맘만 있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낼 수 있는 정교한 여건형성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반면 기부할 완벽한 조건이 되어 있지 않은 것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애써 찾아보면 기부할 단체가 전혀 없는 것도 아니라는 견해도 있다. 찾지는 않고 주변 환경의 열악성만을 탓하는 것은 일종의 핑계라고 지적한다.

여러 사람의 의견을 종합하면 받는 주체의 확립과 더불어 몸담고 있는 학문에 대한 확신과 정열, 그리고 한의사 개개인의 신념과 가치관도 건전한 기부문화 정착에 중요한 변수임임을 알 수 있다.

개인은 부유한데 단체는 가난한 한의계 현실을 타개하고 달리 염출할 길이 없는 현실에서 기부문화는 한의학 연구재원을 확보하는 최선의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한의각단체는 이 점을 평가하여 기부문화를 정착시킬 세련된 절차와 방법을 도출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조심스럽게 개진되고 있다.

김승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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