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숙한 토론문화 아쉬웠던 공청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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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숙한 토론문화 아쉬웠던 공청회
  • 승인 2003.03.18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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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사람의 의견을 모아보자고 하는 게 토론이다. 토론은 개인의 연구성과를 검증받는 수단이기도 하다. 대중은 전문성이 없어보이는 듯 하면서도 문제의 핵심을 찌르는 묘한 속성을 갖고 있다. 어쩌면 쉬운 일인지도 모른다. 해당 주제가 자신의 필요에 부합한지 여부를 기준으로 발표내용을 보기 때문에 맹점을 정확히 찌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래서 토론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없어서는 안될 필수요소로 자리잡은 지 오래다.

최근 한의협도 한국 한의 표준의료행위분류(안) 작업을 마무리하면서 여러 사람의 중지를 모으고자 공청회를 개최했다. 그러나 왠지 토론이 어설프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어떻게 진행되었든 많은 지적이 쏟아졌으면 성과가 있는 것 아니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겠지만 이왕이면 성숙한 토론문화가 정착되었으면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이날 공청회를 보면서 느꼈던 소회를 몇 가지로 정리해보았다.

우선 공청회의 형식요건을 지적할 수 있다. 발제자가 적절하느냐의 문제가 있을 수 있다. 연구를 한 사람은 자리에 없고 용역을 맡긴 주체가 발표를 대신했다. 연구자가 어떤 과정을 거쳐서 그렇게 작업을 했고, 분류기준은 무엇이었는지 설명을 했어야 토론자와 청중들의 이해를 높일 수 있었을 것이다.

토론자가 적절한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느냐의 문제도 있다. 연구에 참여한 사람이 굳이 토론자로 나올 필요가 있었겠느냐는 생각이 든다. 공청회라면 관련 전문가들의 의견을 충분히 듣는 것이 중요하지 똑같은 연구자가 두세 명이나 참여할 필요는 없었다. 그것도 한 사람은 공청회가 한참 진행된 다음에야 나타나 면목이 설까 의문이었다. 앞 뒤 내용과 동료토론자, 청중의 분위기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토론자는 좌충우돌 할 수밖에 없었다. 한 가운데 자리에 배치된 또다른 토론자는 참석조차 하지 않아 행사의 권위와 중요성을 갉아먹는 요인으로 비춰졌다.

둘째는 내용의 문제다. 공청회가 공청회다우려면 복지부 사무관의 지적과 같이 밑으로부터 충분한 검토를 거쳐 각계각층의 의견을 수렴해야지 내부의 의견조차 수렴하지 못하고 공청회장에서 자중지란을 보인 것은 매우 아쉬운 대목이다. 더욱이 핵심 관계자인 학회의 의견이 수렴되지 못한 것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물론 주최측에서는 최선을 다한다고 했지만 한의계 사정상 조직적이지 못한 분과학회의 탓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공청회라면 정선된 안을 갖고 임해야지 설익은 논리로는 같은 식구들로부터도 외면받을 수밖에 없다. 오죽하면 이번 공청회가 마지막이 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랐겠는가?

셋째는 공청회가 진정한 의견수렴의 장이라기보다 통과의례가 아니었나 의문이 들 정도였다. 정책적으로 시작한 일이니 정책적 일정에 따라 일은 진행될 터이지만 분류원칙마저 정책적으로 한다면 보험수가에의 반영이나 심사당국자의 인정은 고사하고 한의계 내부의 반발에 부딪히게 될 게 뻔하다. 간혹 정책을 우선시할 수도 있지만 정책만으로 벽에 부딛힐 수 있다는 사실도 새길 필요가 있을 듯하다.

토론은 여러 사람의 의견을 듣는 자리다. 발표자나 토론자가 자신의 입장만을 홍보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마음을 비우고 다수의 의견을 경청해야 한다. 그래야 내용도 풍부해지고 보기에도 아름다운 법이다. 이번 공청회가 한의계의 토론문화가 성숙해지는 디딤돌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김승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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