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역사의 뒷편에 가려 소외와 편견에 짓눌려온 한의계로서는 새정부의 국정철학에 지지를 보낸다. 다만 한 가지 아쉬움이 남는 것은 전통가치와 현대적 가치를 어떻게 조화시킬 것이냐는 점이 잘 안보인다는 것이다. 신임 대통령이 이 문제에 대한 분명한 입장을 밝혔으면 하는 마음 가득하다. 우리 전통 한의학은 근세 1백년간 힘과 과학의 논리로 무장한 제국주의 세력으로부터 존재자체를 부정당함으로써 치료가치에 상응하는 정당한 대접을 받지 못한 채 오로지 질긴 생명력 하나로 의학의 정수를 보존해왔다. 최근 10년 사이에 한의학이 국가정책 속으로 편입되기는 했지만 국가예산의 측면에서나 법적 제도적 측면에서 여전히 변방적, 보조적 위치를 면치 못하고 있다.
한의학에 대한 방치는 국부의 고갈은 물론 우리들 삶에 윤기를 빼앗고 있다. 인체를 보는 전통적인 가치관을 뿌리채 흔들어 서양의학의 한계상황에서 국민을 혼란에 빠뜨리고 있다. 치료비용은 높아가고 질병발생률은 떨어질 줄 모르고 있다. 국가적으로는 국공립대학에 한의대 하나 없이 한의학 인재양성을 전적으로 사적인 영역에 묶어둔 결과 한의학의 학문적 발전 가능성을 차단했으며, 막대한 전세계 동양의학시장을 중국에 넘겨주는 피해를 감수할 수밖에 없게 됐다.
우리는 동의보감을 편찬한 나라, 사상의학을 창시한 나라로서 한의학의 학문적 정통성과 프리미엄을 보유하고 있지만 국가에서 외면하는 사이 기초와 임상과 상품화를 일본, 중국, 미국에 추월당해 급기야는 이들 나라로부터 한의학을 역수입해야 하는 처지로 전락할지도 모른다. 이것이 방치된 한의학의 대내외적 현실이다. 새삼 우리의 의료환경을 뒤돌아보게 한다.
근래 들어 한의학 정책의 부재를 자성하는 목소리가 정책당국에서 나오는 것은 그나마 다행스런 일이다. 1백여년간 지속돼온 우리 가치의 왜곡을 반성하며 복원해내겠다는 의지의 일단으로 받아들여진다. 한의계는 이런 달라진 인식이 보건복지부를 넘어 청와대 핵심브레인과 대통령 자신에게까지 파급되기를 바란다. 우리 시대 마지막 소외된 가치인 전통 한의학에 관심을 쏟아야 우리의 정신이 살고, 민족적 자존도 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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