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살깎기 식의 상호견제행위로 인해 한의계에 끼치는 해악이 심각한 상태로 치달으면서 한의계 내에서는 이 사태를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고 인식하고 있다. 당장 한의학회는 표준한의의료행위 분류, 진료지침서 작성 등 기본적인 사업에 손을 놓고 있으며 한의협으로부터 의뢰받은 각종 자문도 보류시키고 있다. 그러나 예산이 지원되는 의료사고 자문에는 응하고 있다. 결국 예산이 수반되지 않는 사업은 연구하고 싶어도 할 수 없다는 태도다. 한의협도 대의원총회의 결의를 무시하고 시험을 강행한 학회 관계자들의 행태에 강한 불만을 느끼면서 예산의 결재를 미루고 있지만 자문을 받지 못해 회무에 불편을 느끼기는 마찬가지다.
현상적으로 양 단체의 갈등은 전문의시험을 둘러싼 대립이지만 양측의 견해를 들어보면 근본적으로 조직적 위상을 바라보는 시각차가 있는 듯하다. 한의협은 학회를 하나의 지부로 보고, 학회는 스스로 한의협 조직으로부터 독립되었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이런 인식의 차로부터 시작된 갈등이 스스로 조직적 내실을 기하지 못함으로써 사사건건 인식의 간격이 벌어지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한의협은 지부로서의 의무를 다할 것을 요구하지만 학문집단으로서의 학회의 특수성 인정에 다소 소홀한 듯하고, 반대로 학회는 독립의 여건을 제대로 갖추지도 못했으면서 탈 한의협 입장을 견지해 비현실성을 노출하고 있다.
조직적 위상과 별도로 양자는 동전의 양면처럼 1만 2천여 한의사의 이익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에서 일시적 감정을 접고 회원입장에서 협력해야 할 책임이 있다. 행여 상대가 굴복할 때까지 버티는 무모한 생각을 조금이라도 한다면 그런 생각은 과감히 떨쳐버려야 할 것이다. 침구사법, 약대 6년제 등 한의계의 운명을 가르는 사건들이 즐비한 마당에 사소한 감정과 명분 때문에 한의학을 자멸시키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중앙회와 지부가 의학회를 도와 원만하게 운영하고 있는 양의계의 사례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 냉각기를 거칠 만큼 거쳤다. 대외적으로도 명분을 잃지 않고 화해에 이를 수 있는 여건도 조성되고 있다. 한의협과 개원한의사협 관계자도 말했듯이 이 문제는 지극히 정치적인 문제이므로 정치적으로 풀면 풀 수 있다. 부디 양 단체의 슬기를 모아 조속히 해결해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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