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歷代名醫醫案22] 喩昌의 醫案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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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歷代名醫醫案22] 喩昌의 醫案②
  • 승인 2005.05.20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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喩昌(1585~1664) : 청나라 초기의 의학자. 字는 嘉言, 별호는 西昌老人이며 江西省 南昌 사람이었다. 淸軍이 入關한 후에 은거하면서 의서를 탐독하여 17년간(1644~1661) 常熟에서 의업을 하면서 이름을 떨쳤다. 方有執의 『傷寒論條辨』을 기초로 이를 분류 귀납하여, “治病必先識病, 識病然後議藥”이라는 辨證論治思想을 확립하였고, 病案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尙論篇』(1648), 『醫門法律』(1658), 『寓意草』(1643) 등의 저술이 있다.

■ 제목 : 傷寒壞證腰痛案

張令施는 제자인데, 傷寒의 壞證으로 양쪽의 허리가 굽어 누워있으면서 밤새도록 아파 소리를 질렀는데 모든 治法이 효과가 없자 나에게 진찰을 요구했다. 그 脈은 또한 平順하여 병이 없는 듯하고 통증은 전에 비해 크게 감소했다. 내가 이에 “병이 죽을 증상은 아니나 廢人이 될까 걱정이 된다. 이 증상이 轉變한 곳이 모두 통증이 칼로 찌르는 듯한 것은 아직도 邪氣와 正氣가 다투고 있는 象이며, 만약 전혀 아프지 않으면 邪氣와 正氣가 혼합된 것으로 보기에는 문제가 없어 보인다. 지금 통증이 크게 감소했다고 느끼는 것은 실로 염려할 일이니 마땅히 빨리 치료해야 한다”라고 하였다.

환자가 이에 “내 몸은 이미 廢하였는데 목숨이 어찌 살겠는가. 빨리 죽느니만 못하다”라고 하였다. 내가 이마를 찌푸리며 살릴 방법을 구하였으나 治法이 없었는데 살피고 생각하기를 잠시하고 나서 “熱邪가 양쪽 허리에 깊이 들어가 血脈이 閉한지 오래되어 다시 회복하지 못하니 단지 攻散시키는 한가지 방법이 있다”라고 하였다. 邪氣가 들어온지 이미 오래되었고 正氣는 완전히 허약해졌으니 攻하는 것은 반드시 마땅하지 않으니 이에 桃仁承氣湯에 肉桂, 附子를 가하여 두제를 먹였다.

복용 후에는 건강하게 일어났고 다시 앞의 방법으로 丸을 만들어 10여일 남짓 먹이니 완전히 나았다. 仲景은 結胸證에 附子瀉心湯 한가지 방법이 있다고 하였는데, 원래는 附子와 大黃을 함께 썼다. 그러나 上部의 병증은 氣多하므로 이 방법이 瀉心이다. 그러한즉 下部의 병증은 血多하므로 오직 그 뜻을 모방하지 않더라도 桃仁, 肉桂를 합한 것으로써 腰間에 맺힌 血을 散해야 하지 않겠는가? (『寓意草·治傷寒壞證兩腰루廢治驗』)

■설명 : 本案은 太陽病을 誤治, 失治하여 傷寒壞證이 된 것으로, 양쪽 허리가 굽어 밤새 아파 소리 지르기를 그치지 않는 것이다. 이것은 傷寒에 邪氣가 經에 있었는데 안으로 들어와 양쪽 허리에 閉阻되고 깊이 血絡에 들어오니 다시 나갈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변증분석 : 本案은 腰痛에 腎虛의 증상이 없고 跌撲한 病史도 없으며, 또 痺痛의 범주에 속하지도 않았다. 도리어 허리가 굽어 아프기 전에 傷寒을 앓은 적이 있어 傷寒에 誤治, 失治하여 腰痛이 생긴 것을 알게 되었다. 또한 發病이 신속하고 통증이 송곳으로 찌르는 듯하다는 것은 瘀血로 인해 통증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傷寒의 邪氣가 깊이 血絡으로 들어가 腰部에 瘀血이 閉阻되어 밤새도록 아파소리지르기를 그치지 않게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치료분석 : 『傷寒論』 附子瀉心湯證은 心下비가 있으면서 惡寒汗出하게 되는 證이다. 心下비는 邪實로 인한 증상이고 惡寒汗出은 正虛로 인한 증상이다. 本案은 邪氣가 血絡으로 들어가 허리에 閉阻되어 허리가 굽어 아픈 것으로 邪氣가 實한 것이다. 邪氣가 들어온지 오래되면 正氣는 반드시 虛하게 되는데, 附子瀉心湯은 心下비를 능히 瀉할 수 있지만 양허리가 굽어 아픈 것은 치료할 수 없으므로 단순한 扶正攻邪의 법이 喩氏에게 큰 啓示를 주지 못함으로 인하여 附子瀉心湯의 法을 모방하여 桃仁承氣湯에 附子, 肉桂를 가하여 사용했다. 이는 腎陽을 溫運시키고 腰部의 血結을 攻散시킴으로써 “通則不痛”이라는 이론을 붙인 것이다. 고로 약 두 제를 먹이자 능히 건강하게 일어나고 다시 앞의 방법으로 丸을 만들어 10여일 남짓 먹이니 완전히 나았다. 本案으로 볼 때 喩昌은 『傷寒論』의 기초 위에서 한 귀퉁이를 들면 나머지 세 귀퉁이를 돌이켜 아는 융통성이 있었다.

金 南 一 (경희대 한의대 醫史學敎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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