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茶와 茶文化] 8. 茶와 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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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茶와 茶文化] 8. 茶와 酒
  • 승인 2005.05.07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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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동 곤 (쌍계제다 대표)

♣ 茶와 酒

중국의 의적(義狄)이란 사람이 처음으로 술을 만들어 우왕(禹王·夏나라의 시조)에게 바쳤다.
술을 만들게 된 연유인즉, 죽어가는 아버지를 위한 처방을 얻었는데 하루에 세 사람의 간을 얻어 누룩에 버무려 두었다가 그 즙(즉 술)을 먹이라는 것이었다.
효심이 깊은 이 사람은 활을 메고 산 속의 오솔길에서 숨어 기다렸다. 첫 번째 사람은 소복의 청상과부였고, 두 번째 사람은 사냥꾼이었으나 세 번째 사람은 나타나지 않고 해가 기울었다.
저자거리로 내려와 처음 만난 것이 미친 개였는데 급한 김에 시위를 당겨 처방대로 아버지께 술을 해드렸다.
그래서 술에는 청상과부의 애잔한 슬픔과 사냥꾼의 혈기방장함, 미친개의 광기가 함께 들어 있게 되었다.

인도 향지국(香至國)의 왕자 달마(達磨)는 중국의 소림굴에서 9년간 면벽 참선 후 선종불교의 초조(初祖)가 되었다. 신광(神光)이 찾아와 제자되기를 청하나 거절하자, 밤사이 허리까지 눈이 차도록 움직이지 않으며 왼팔을 잘라 바쳤다.
드디어 입실(入室)을 허락 받았는데, 이 사람이 선종의 2조가 된 혜가(慧可)이다. 달마가 정진 중 가장 참기 어려운 것이 수마(睡魔)였는데 잠을 쫓기 위해 눈꺼풀을 떼어 뜰에 던졌더니 그 곳에서 나무가 자라났다.
그것이 차나무였다. 때문에 차에는 눈꺼풀을 잘라낸 깨달음에의 간절함과 벽을 뚫을 것 같은 달마의 안광(眼光), 팔을 자르는 처절한 수행에의 아픔이 있게 되었다.

이상은 술과 차가 생기게 된 전설들 중의 하나이다.
하느님은 물을 만드셨고, 인간은 술과 차를 발명하였다고 한다. 차와 술은 가장 문화적인 물이며 물의 정수이고 사람의 물이다.
술에는 화기애애한 즐거움과 방만함, 시끌한 소란과 평안한 이완, 그리고 모든 것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흐려지는 눈이 있다. 차에는 조용한 관조와 정진을 위한 자기성찰의 긴장, 그리고 오관을 통해 내밀하게 퍼지는 즐거움과 맑아지는 눈이 있다. 또한 술은 즐거운 축제를 위한 음료이고, 차는 깨어있기 위한 음료이다.

술과 차는 인간의 영원한 사랑의 물이면서도 상반의 물이다. 어떤 중국인은, 차를 무척 사랑하는 사람은 술에 취미가 없고, 주당은 차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 茶酒論 - 당나라의 왕부(王敷)

당나라 향공진사(鄕貢進士)를 지낸 왕부가 지은 ‘茶酒論’에는 차와 술이 서로의 공덕을 자랑하며 다투자 제3자인 물이 나서서 서로 화합할 것을 강조한 재미있는 내용이 있다.
차가 말했다. “차는 백초의 우두머리로서 만목(萬木)의 정화이다. 귀하게 여기어 따서 약으로 쓰며, 중하게 여기어 싹을 따서 명초(名草)라 부르고 ‘차 만들기’라고 이름 한다. 다섯 제후의 저택에 바쳐지고, 제왕의 집에도 진상되어 온 세상의 영화로움과 명예로움에 찬양되어 자연히 존귀하게 된 것이니 어찌 자랑삼지 않을 손가!”
술이 대꾸한다. “가소로운 말이로군. 예로부터 지금까지 차는 천하고 술이 귀하다네. 술이 있는 곳에 인의예지(仁義禮智)의 덕이 생겨나기에 존귀한 것이니 어찌 다른 것과 애써 비교하겠는가?”

물이 등장하여 둘에게 공덕을 다툴 것이 아니라 화합을 권한다.
“인생은 땅, 물, 불, 바람으로 성립된다오. 차나 술도 물이 없이는 본색을 드러낼 수 없는 것이지만, 스스로 겸손하여 그 성스러운 공덕을 내세우지 않을 뿐이지요. 그대들 서로의 공덕을 다툴 것이 아니라 앞으로 화합하면 술집도 부자가 되고 찻집도 가난하지 않을 것이요.”
일본의 란슈규(蘭敍 1576년)의 茶酒論에도 비슷한 내용이 있다. 술을 마시면 근심을 잊는다하여 망우군(忘憂君)이라하고 차는 번민을 없앤다는 뜻으로 척번자(滌煩子)라고 한다. 망우군과 척번자가 서로의 우열을 다투자 한인(閑人)이 나타나 술과 차의 공덕은 같다고 화해시킨다는 내용이다.

♣ 화왕계(花王戒) - 설총(薛聰 692?~746?)

이두문을 만들었다는 설총은 원효대사와 요석공주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신라 10현(賢)의 한사람으로 추앙 받았다.
신문왕(681~692년)에게 의인화된 꽃들이 등장하여 도덕정치를 권하는 ‘화왕계’라는 우화를 들려주었다고 전한다. 화랑은 모란, 충신은 할미꽃, 간신은 장미꽃으로 그려진다.
화왕이 화려하게 치장하고 요염한 장미의 유혹에 넘어가려하자 할미꽃인 백두옹(白頭翁)이 화왕에게 아뢴다.

“비록 좌우의 공급이 풍족하여 기름진 음식으로 배를 채운다고 할지라도 차와 술로써 정신을 맑게 해야 합니다. … 그러므로 옛 말에 생사와 삼베 같은 좋은 물건이 있다 할지라도 왕골과 띠풀 같은 천한 물건도 버리지 말아야 합니다.”
화왕이 백두옹의 말도 일리는 있으나 어여쁜 여인은 얻기가 어렵다고 장미를 선택하려 한다. 백두옹이 임금 된 자는 간사한 자를 멀리하고 정직한 자를 가까이해야 한다며 왕을 설득하고 왕이 잘못을 뉘우친다는 내용이다.
화왕계는 중국이나 일본의 茶酒論 같이 차와 술이 서로의 공덕을 다투는 것이 아니라 차와 술의 공덕을 함께 이야기하는 것이 다르다.

술이 얼큰하매 낮잠이 달콤하니
어이 차 달여 부질없이 물 허비할 손가.
만취한 얼굴에 찬 물 뿌린 듯 하여라.
차 대하여 술 찾음이 미치광이 같으니
차들고 술마시며 평생을 보내면서
오락가락 풍류(風流)놀이 시작해 보세.

고려시대 문장가인 이규보(李奎報·1168~1241년)선생의 시이다. 차와 술은 우열의 것이 아니고 함께하는, 같이 즐기는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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