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의서산책244] 醫鑑抄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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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의서산책244] 醫鑑抄集
  • 승인 2005.05.07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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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과 땅, 사람이 하나 되어

이 책은 주변에서 흔히 마주칠 수 있는 『東醫寶鑑』요약본과는 의미가 사뭇 다르다. 대부분의 필사본이 그렇듯이 이 책 역시 저술연대나 작성자가 명확하지 않다. 그러나 어엿한 자작 서문이 붙어있고 집필동기를 자세히 설명하고 있어 제대로 맘먹고 집필한 원고본임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작성자의 이름이나 인적사항이 밝혀져 있지 않고 작성연대도 표기되어 있지 않다.

서문을 보면 “우리 동국에 뛰어난 명의가 끊이질 않았고 神方秘術이 헤아릴 수 없이 많지만 분량이 너무 많고 識見이 서로 달라 적합한 처방을 찾기 어렵다. …… 이에 고금의 遺書를 모아 긴요한 처방을 골라내고 간혹 나의 견해를 섞어 책 하나를 지어『古今要訣』이라 이름 붙였다”라고 하였다. 또 말미에는 “의술은 생각하기에 달렸으니 특별히 요령을 적었을 뿐이다. 臨病試藥에 경중을 감안하지 않고 한결같이 책에 쓰인 대로만 고집한다면 줄기둥을 바닥에 붙여놓고 거문고를 뜯는 것(膠柱鼓瑟)과 다를 바가 없다. …… 정교한 이치는 책 밖에 있으니 배우는 자가 조심할 일이다”라는 문구로 끝을 맺었다. 다소 수사적인 표현이지만 경험에서 우러나지 않은 고식적인 처치법을 경계한 것이리라.

별도의 목차가 없어서 전체적인 윤곽을 그려보기가 용이하지 않으나 대략 診病과 辨證의 요지를 맨 먼저 배치하고 그 다음에 신형, 정, 기, 신으로부터 혈, 몽, 성음, 언어, 진액, 담음과 오장, 육부, 삼초, 포, 충, 소변까지의 순서로 구성되어 있다. 따라서 수록내용으로는 내경편의 내용만을 抄集한 것이어서 아마도 저자가 맘먹은 전체를 모두 담아놓지 못했던 것 같다.

醫規常習이라고 이름 붙여놓은 첫 머리의 개요부를 보면 診病提綱, 雜病論, 占病新久可治難治, 辨氣血痰火, 病愈日時與死候, 五實五虛, 陰陽虛盛, 百病始生, …… 用藥凡例 등의 항목이 이어지고 있다.

대개 『동의보감』잡병편에서 천지운기를 제외하고 審病, 辨證, 診脈, 用藥 부분에서 초록하거나 몇 가지 항목을 축합하여 재구성하는 방식으로 집필한 듯하다. 그렇지만 저자가 원서의 내용을 숙지하고 요지만을 채록하여 조합하였기 때문에 문맥이 자연스럽고 구성에도 무리가 없다.

내경편에 해당하는 부분은 ‘天地人爲一氣’라는 멋진 소제를 붙여 시작하는데, 이것은 身形藏府圖 옆에 적혀있는 글을 요약해 놓고 붙인 이름이다. 아마도 『동의보감』 첫머리의 “天地之內, 以人爲貴, 頭圓象天, 足方象地 ……” 운운하는 孫眞人의 말씀을 기억하는 독자들은 하늘과 땅과 사람이 하나의 기운으로 통한다는 이 글의 의미도 뇌리에 떠올릴 수 있을 것으로 여겨진다.

또 한 가지 주의를 기울일 곳은 養性延年藥餌 앞에 실려 있는 身形(藏府圖)이다. 그림의 위치가 달라진 것이야 별달리 특이할 것 없다손 치더라도 내용이 사뭇 달라져 있다. 실제 제목 아래에도 “與醫鑑圖, 形小異焉”이라고 밝혀져 있어 저자가 새로 보완하여 다시 작성한 것임을 알 수 있다. 기본 골격은 『동의보감』을 토대로 하였지만 『만병회춘』과 『의학입문』이나 더 후대의 장부도나 해부도를 참조하여 다시 그린 것이 여실히 나타나있다.

우선 咽과 喉로 막연히 표시해 놓았던 것이 ‘胃管通食’, ‘肺管通氣’로 나누어 분명하게 구분되어 있고 肝葉 사이에 매달린 담낭의 위치도 한결 명료하게 그려져 있다. 또 대장에서 아래로 直行하는 直腸을 표시하고 항문으로 연결해 놓았고 방광은 앞쪽으로 배치해 ‘尿之所出, 精之所施’라고 부기해 놓았다. 아울러 膈膜 아래 비와 위 사이에 만(月+曼)<肝간+慢만>脂라는 이름을 달아 놓았는데, 이것이 위나 장을 둘러싼 장간막을 뜻하는지 단순히 비장 아래의 지방층을 말하는지는 소상하지 않지만 상당히 해부학적 소견을 갖고 접근한 것이 분명하다. 여하튼 조선 후기 『동의보감』의 정수만을 집약해 보고자 했던 이름 모를 의인의 고심한 흔적을 엿볼 수 있다.

한국한의학연구원 안 상 우
(042)868-9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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