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최근 참으로 어이가 없는 사건이 터졌다. 양약학과 출신자들이 국시원을 상대로 제기한 한약사시험 응시자격 기준의 취소를 요구하는 행정심판에서 서울행정법원은 원고인 양약학과졸업생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복지부가 응시자격 기준으로 제시한 ‘한약관련과목 이수인정기준’ 이 약사법과 동시행령의 위임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위법이라는 게 행정법원의 판단이다. 동시에 한의계가 강력히 요구해온 20개의 과목이 법정과목이 아니고 그야말로 하나의 예시과목에 불과하다고 해석해 변수로 작용할 것이 예상되고 있다. 더욱이 복지부는 ‘승소 확률이 낮아 항소를 포기했다’고 말해 ‘양약사는 한약을 취급할 수 없다’는 애초의 약사법 개정정신이 실종될 위기에 처한 것이다.
이 시점에서 보건복지부에 묻고 싶다. 법원이 ‘한약관련과목 이수 인정기준’이 약사법과 동시행령의 위임을 받지 않았다고 판단하여 동 기준이 위법이라고 판시하도록 지금까지 뭘 했는가? 우여곡절 끝에 국민적 합의를 모아 한약분리원칙에 따라 법을 개정하기는 했는데 하위법령을 만드는 일은 왜 그리도 더디고 불철저했는지 원망스럽다. 또 모르고 그랬으면 모를까 한의계가 그토록 촉구해마지 않았는데도 ‘관련과목’이니 ‘등’이니 ‘경과조치’니 하면서 교묘하게 법조문을 작성하여 끊임없는 분란을 조장해왔다.
이번 판결 내용도 결국은 잘못된 법률제정의 결과다. 설마 그럴 리는 없겠지만 혹시 이런 결과를 기대하고 법을 만들지 않았는지 의구심마저 든다. 이토록 엉성한 법으로 보건의료계의 질서를 잡겠다는 발상이 순진한지 어리석은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그러나 결과는 결과다. 다시는 이런 전철을 밟지 않도록 단단한 조치가 있어야겠다. 말로만 ‘한약과 양약의 분리’를 백번 외쳐도 아무런 쓸모가 없다는 사실이 확인된 바에는 소 잃고 외양간을 고치는 한이 있더라도 후속조치가 수반되어야 한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 서두르면 피해를 최소화시킬 수 있다. 한의계가 요구하고 있는 한의약관리법이나 한약관리법의 조속한 제정도 좋은 사후대책이 될 수 있다.
복지부는 이번 사태에 책임을 통감해야 할 것이다. 복지부는 표리부동한 자세를 탈피하여 진정으로 국민의 공복으로서, 국익에 기여하는 한의학 여건을 조성해야 할 것이다. 아울러 한의약법이 제정되기 이전이라도 약사법을 적용함에 있어 자구해석을 넘어 법의 취지를 충분히 살려 적용하길 기대한다. 법원에게도 유추해석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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