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계가 외형적으로 컸다는 느낌이 부쩍부쩍 든다. 한의협과 한의정회가 공동 주최한 신년교례회 참석자 면면을 봐도 그렇고, 한의학산업이 날로 늘어가는 모습이라든지, 한의학에 대한 국제적인 관심도, 정부에서 한의학을 바라보는 시각에서도 한의학의 성장은 의심할 여지가 없어 보인다.

이런 성과는 많은 부분 대외적 상황의 변화에 힘입은 탓도 있지만 1차적으로는 한의계 내부구성원의 노력이 제일 커다란 요인일 것이다. 구성원의 우수한 자질은 그 어떤 조건보다 원천적인 힘이 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한의계가 지금까지 얻은 성과에만 만족할 수 없다. 한의협의 경우 최환영 집행부 재임기간 4년은 大過가 없었다는 평가를 받는 측면이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언제 어떤 일이 어떤 모습으로 터져나올지는 아무도 모른다. 한의계의 일이란 것이 언제나 그렇듯이 휴화산 같아 외부의 작은 변화에도 운명이 뒤바뀔 정도로 기반이 취약한 게 현실이기 때문이다.

이제 송년 분위기로 들떴던 연말도 지났고 시무식이다 신년회다 하는 의례적인 행사도 끝났다. 1월도 중순을 넘겼으면 1년 계획도 어느 정도 세워졌을 텐데 지금부터는 느슨해졌던 허리띠를 졸라매고 말 그대로 ‘민족의학을 꽃피우는 한 해’가 되기 위해 마음가짐부터 다시 가다듬어야 할 것이다.

어떤 마음가짐을 가져야 하느냐에 대해서는 다양하겠지만 큰 줄기부터 말한다면 우선 實事求是정신의 구현을 지적하고자 한다. 무엇이 안 되었다고 말하기 전에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풍토를 조성해야 생산적일 것이다. 부정적 사고보다는 긍정적 사고가, 추상적 당위적 주장보다는 구체적 실천적 대안이 현실적이기 때문이다.

둘째는 나부터 실천해야 한다는 점이다. 신년교례회에서 최환영 회장이 인용한 어느 노 독립운동가의 말처럼 우리는 나 자신을 위해 눈물을 흘려보았는지 성찰해 봐야 한다. 매사를 한의계는 뭐하고 있느냐고 맹목적으로 비난하기 이전에 나는 한의계를 위해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되돌아보자는 것이다. 장기적으로 한의계는 회장단 한두 사람이 뛰는 구조에서 벗어나 1만 한의사가 다 제몫 하는 시스템으로 환골탈태해야 할 것이다.

한의계는 능력이 있다. 아니 능력이 있다 못해 무궁무진하다. 한의사 한 사람 한 사람이 다 최고급의 의료인이요, 철학자이며 발명가이다. 내가 서 있는 점을 선으로, 면으로, 공간으로 확대하고, 최종적으로는 각각의 공간을 重重無盡으로 네트워크화하면 폭발적인 힘을 발휘하는 게 한의사요 한의계라고 확신한다.

1만 한의사가 빚어내는 시스템 그것은 2002년 1월이 끝나 가는 시점에서 우리의 화두가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