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사 김린애의 도서비평] 삶을 날아오르게 하는 꿈
상태바
[한의사 김린애의 도서비평] 삶을 날아오르게 하는 꿈
  • 승인 2023.03.03 05:0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린애

김린애

mjmedi@mjmedi.com


도서비평┃나빌레라

70세를 앞둔 심덕출씨는 가족들에게 발레를 하는 것이 오랜 세월 꿈이었다고 선언한다. 어차피 수십 년을 담아뒀던 소망을 그대로 묻어 놓고 “내가 요새처럼 여건만 좋았더라면, 20년만 젊었다면 날아다녔을 거야!”라고 큰소리치는 대신에 작은 발레단을 직접 찾아가 직접 바를 잡는다.

채록은 꿈을 말하지 않는다. 이런저런 운동을 떠돌아다니다가 고등학생이 되어서야 돌아가신 어머니가 결혼 전에 했던 발레를 시작한다. 연습에 집중하지 못할 거면 그만두라고 스승에게 혼나기도 하고 아버지에게도 어머니 때문에 하는 거라면 그만두라는 얘기를 듣는다. 발레와 생활에 필요한 돈을 모으려 아등바등 배달 일을 하고(발레에 집중하지 못한다고 스승에게 혼나는 주된 이유이다), 부상 후 재도전을 위해 그야말로 피땀을 흘리는 모습을 보면 분명 발레를 소망하건만 정작 발레에 임할 때는 “알았다구요, 그만 하세요!”라는 분노와 짜증이 담겨있다.

이 두 사람이 만난 꿈만 같은 시절을 그린 작품이 웹툰 <나빌레라>이다.

HUN‧지민 지음, 위즈덤하우스 펴냄

덕출이 담아만 두었던 소중한 꿈은 덕출의 삶을 흔든다. 외부에서 보기로는 주로 나쁜 쪽으로 흔든다. 나이에 비해 젊게 관리했다고는 해도 어디까지나 나이에 비해서일 뿐 몸은 무겁다. 다른 이들과 함께 도약하고 떨어져도 혼자 석고 고정이 필요할 정도로 실금이 간다. 가족들은 왜 하필 발레냐며 달갑지 않아 한다. 심지어 방송국의 무신경한 취재로 망신살이 뻗치기도 한다. 스스로 생각해도 자기 모습이 아름답다고 느껴지지는 않는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실력과 체력이 서서히 좋아지지만, 노화의 영향 쪽이 잔인하게 더 빠르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덕출에게 포기할 이유가 되지 않는다. “내게 하루의 시간만 남았다 해도 행복해지려고 최선을 다하고 싶다.” “내일이 되면 오늘 조금 더 못한 것을 후회하고 있을 수도 있는데…”

이를 지켜보는 채록의 마음은 편치 않다. 덕출을 보며 답답해하고, 걱정하고, 때로는 화를 내고, 의문을 가진다. 끝이 분명 보이는데 왜 계속 버티는 건지, 덕출이 보는 길은 어떻게 해야 보이는 건지. 자신과 타인의 마음에 민감하고 솔직한 덕출과 함께 하는 시간이 길어지며 점차 채록은 자신의 마음을 보일 수 있게 된다. 아버지에게 자신은 발레를 어머니 때문에 하는 것이 아니라 하고 싶어서 하는 것이라고 전한다. 배달 아르바이트를 한다며 무시하는 고등학교 동창 앞에서도 자신은 발레리노가 될 거라고 당당히 밝힌다. 덕출이 걱정될 때 버럭거리며 밀쳐내는 대신 다니는 길을 살피고 배려하며 안무를 짜게 된다. 이렇게 자신의 마음을 타인에게 보이게 된 채록은 자신의 마음도 들여다본다. 힘들고 때로는 분노를 일으키던 발레가 자신의 꿈이고 소망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게 된다. “즐겁고 행복하지만, 무섭고 긴장되고... 실패하면 아쉽고 분하고 화나는 건, 그건 꿈이라서 그렇대.”

어떤 꿈은 스스로 포기하게 되고, 어떤 꿈은 꿈이 아니게 된다. 덕출에게는 사진작가를 꿈꾸었으나 가족의 생계를 위해 포기하고 먼저 세상을 등진 벗 만석이 있었다. 채록의 곁에는 발레리노를 꿈꾸었지만, 자신의 한계를 느끼고 발레를 취미로 갈무리한 발레 선배 정환이 있다. 이 두 사람의 꿈은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가족에 대한 사랑과 의지를 새기는 힘이 되었고 스스로 바라는 것과 아닌 것을 가름하는 지혜를 주었다. 어떤 꿈은 계속 살아남아 삶과 마음을 흔들고 끌어가는 힘을 가지게 된다. 무엇을 꿈꾸는지를 명징하게 알게 되면 삶은 움직인다. 덕출은 그렇게 하루하루 움직이는 삶을 살아가며 이렇게 말한다 “오늘도 날이 새롭다.”

덧. 대여권을 세 번이나 사서 읽게 될 줄 알았더라면 구매를 했을 텐데……

 

김린애 / 한의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