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호칼럼](126)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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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호칼럼](126)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겁니다
  • 승인 2023.03.03 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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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호

김영호

doodis@hanmail.net

12년간의 부산한의사회 홍보이사와 8년간의 개원의 생활을 마치고 2년간의 안식년을 가진 후 현재 요양병원에서 근무 겸 요양 중인 글 쓰는 한의사. 최근 기고: 김영호 칼럼


김영호
한의사

회진 때 매일 만나는 50대 남자 환자분이 있다. 이 분의 좌측 다리는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움직인다. 본인의 다리를 쳐다보며 그 분은 이렇게 얘기했다. “선생님, 신경을 죽일 수 있는 방법은 없나요? 이 다리가 내 말을 전혀 듣지 않아요. 제 멋대로 이렇게 움직이니까 미치겠습니다.” 평소에는 회진 중에 긴 얘기를 하지 않는 편이지만, 그날은 왠지 한 말씀 해드리고 싶었다.

“신경을 죽이는 방법도 없지만 말을 안 듣는다고 죽이면 되겠습니까. 다리, 저 녀석도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으니 저러는 거 아닐까요? 제멋대로 움직이는 다리를 보며 화내지 마시고 그냥 내버려 둬 보세요. 다리 이 놈! 지칠 때까지 맘대로 움직여 보라고 해보세요. 억지로 가만히 있게 하려고 힘을 주다가 더 심해질 수도 있답니다.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겠지 하고 신경 쓰는 걸 조금 줄여보면 어떨까요?” 이렇게 위로 아닌 위로로 서로 끄덕거리며 병실 밖으로 나왔다.

“그래~ 이유 없이 일어나는 일은 없지.” 다음 환자에게 향하는 복도에서 마스크 속으로 혼자 중얼거렸다. 그렇다. 이유가 없는 결과는 없다. 지금 경험하고 있는 모든 일에는 원인이 있다. 그 원인을 기억하지 못하거나 혹은 내가 인지하지 못하는 차원의 원인이 존재할 뿐, 모든 것에는 원인이 있다. 불교에서 말하는 연기(緣起)는 산스크리트어 프라티트야 삼무파다(प्रतीत्यसमुत्पाद pratītyasamutpāda)를 뜻에 따라 번역한 것으로 인연에 의해 모든 것이 생겨난다는 것의 줄임말이지만, 꼭 불교적 해석이 아니라도 이유 없이 일어나는 일은 없다는 것이 자연의 이치다.

원치 않는 일과 맞닥뜨리면 제일 먼저 떠오르고 가장 오래 자신을 괴롭히는 것이 ‘왜 하필 나인가?’하는 원인에 대한 억울함이다. 이 때 이유가 있다는 것을 알고, 받아들이면 억울함이 한 풀 꺾인다. 전생을 끌어와도 좋고, 이번 생에서 지은 업보(業報)라고 생각해도 괜찮다. 도구가 무엇이 되었든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거라고 인정하면 ‘울분(鬱憤)’이 2차,3차로 자신을 가해하는 것은 막을 수 있다. 벌어진 일을 수습하는 것도 힘든 와중에 내 생각이 스스로를 괴롭히지만 않아도 우리는 고통에서 조금 더 빨리 벗어날 수 있다.

타인의 이해할 수 없는 언행 앞에서도 이 한 마디는 힘을 발휘한다. <그럴만한 이유가 분명히 있겠지> 이 문장을 계속 읊조리다보면 온전히 그의 행동을 이해하기는 어려워도, 내 마음이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데는 도움이 된다.

 

만약 수많은 사람이 나를 비난하는 상황에 처한다면, 그 순간 어떤 말이 가장 힘이 될까. 나라면 비난하는 사람들을 향해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겁니다.’는 말을 해주는 사람이 곁에 있을 때 가장 큰 위로가 될 것 같다. 화가 머리끝까지 나 있는 사람을 상대할 때도 당신이 화를 내는 이유가 있을 거라며 인정해주면 화는 조금씩 수그러든다. 정확히 이유가 무엇인지 몰라도 된다. 그저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거라고 짐작해주기만 해도 분노는 힘을 잃는다.

우리의 마음도 다르지 않다. 원치 않는 감정들은 하루에도 여러 번 마음에 찾아온다. 행복하고 긍정적인 마음으로 하루를 보내고 싶지만 우리는 그렇지 않은 마음들과도 마주할 수밖에 없다. 그런 감정들을 피하고 싶지만, 피하기만 해서는 더 자주 찾아오는 것이 그 녀석들의 특징이다. 원치 않는 감정들이 나를 찾아 올 때도 ‘좋다! 싫다!’ 판단하지 말고 ‘네가 찾아오는 것도 그럴 만한 이유가 있겠지’ 하며 생각해보는 것은 어떨까. 개인적 경험으로 ‘그럴만한 이유가 있겠지.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거야.’ 라고 했을 때 조금 덜 괴롭고, 조금 더 빨리 그 상황을 벗어날 수 있었던 것 같다. 힘든 감정이 어떤 모습이든 자주 떠오른다면 그 감정들은 깊은 내면에서 보내는 <구조신호>일지 모른다. 그리고 그것이 구조신호라면 우리는 절대 외면해서는 안 된다. 어떤 순간에도 나를 구조해줄 수 있는 존재는 나 자신 뿐이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거라고 진심으로 이해해주는 순간, 마음 저 깊은 곳에서 보내온 구조신호는 나에게 닿게 된다.

앞서 말한 환자분을 오늘 다시 만났다. 마구 날뛰던 다리가 완벽히 잠잠해지진 않았지만 조금 덜 움직이는 듯 했다. 환자분 역시 움직이지 말라고 자신의 다리와 싸우려던 마음을 조금 내려놨다는 말씀을 전해왔다. 그렇게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원인들이 서로 뒤얽혀 몸을 괴롭혔을까. ‘무조건 용서해주라’ ‘무조건 이해해주라’는 말은 납득하기도 어렵고 그렇게 해주기도 쉽지 않다. 하지만 이해할 수 없는 타인의 행동도, 원치 않는 내 마음 속의 감정들도 모두 그럴만한 이유가 있으니 우리 앞에 나타난다는 것만 인정해주면 내 삶이 조금은 가벼워진다. 내 앞에 나타나는 모든 것들에 대하여 속삭여본다.

“그럴만한....이유가....있을 겁니다....그럴...만..한....이유가....분명히....있을 겁니다.....”

김영호
12년간의 부산한의사회 홍보이사와 8년간의 개원의 생활을 마치고 2년간의 안식년을 가진 후 현재 요양병원에서 근무 겸 요양 중인 글 쓰는 한의사. 최근 기고: 김영호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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