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재의 임상8체질]전구 갓 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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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재의 임상8체질]전구 갓 전기
  • 승인 2023.03.04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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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재

이강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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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체질의학을 어떻게 공부할 것인가_69

키노시타 하루토1)는 권도원 선생이 체질침의 1차 논문2)을 발표3)했던 국제침구학회4)에서 조직위원장을 맡았고, 일본침구치료학회의 이사장이었다. 대한한의사협회로서는 첫 국제학회 참가였는데, 대표단으로 파견된 배원식5) 권도원 진태준6) 세 명 중 배원식 선생과 권도원 선생이 당시에 경희대 의대 소속이었다. 이때의 인연으로 키노시타는 경희대학교의 초청을 받아 19715월에 한국에 와서 경희대학교 의과대학에서 강연을 한 후에 한의계를 탐방한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권도원 선생의 진료실도 방문하게 되었는데, 대원한의원에서는 마침 간경변 환자를 치료하는 현장을 참관하였다. 키노시타는 그때의 상황을 상세하게 기록하였다.7)

이번에 방문하여 견학했던 환자는 간경변의 중년남자이고 진단은 소양인(토상인)이라고 결정되었다. 치료는 오른쪽 태백, 태계, 부류, 태연8)의 경혈에 영 또는 수로 단자 5회를 반복했다. 이것은 병이 왼쪽에 있기 때문에 오른쪽만 취혈하는 것이라고 한다. 이 환자는 중증이기 때문에 다시 상양, 지음, 삼리, 위중, 대도, 해계, 신문, 소해 등의 경혈에 여러 번의 단자가 반복되었다. 이 취혈은 오행법칙에 따라 결정되고 있는 것이다.”9)

키노시타가 보았던 간경변 환자는 토양체질이다. 키노시타의 기록에서 영(, -)과 수(, +)를 추정하여 체질침 처방을 복원해 보았다. 이 간경변 처방은 구조로 보면 네 가지의 처방으로 조직된 이른바 ‘4단방이다. 체질침은 1973년에 2차 논문을 통해서 2단방 치료체계가 정식으로 발표되었다. 그리고 이후에는 체질침의 처방 구성원리가 공식적으로 발표된 적이 없다. 그런데 1971년에 벌써 4단방이라니.

처방의 구성을 보면 1단은 토양체질의 병근을 조절하는 신보방이다. 장부혈의 구성은 허즉보기모 억기관(虛則補其母 抑其官)’의 방식이다. 2단은 병근장기인 신과 표리관계로 조절하는 방광보방이다. 2차 논문10)에 보면 병근장기와 표리가 되는 장기를 함께 조절하는 방식으로 구성된 처방이 있다. 바로 마비방이다. 뇌졸중이나 안면신경마비 등 마비성 질환에 효과가 있다고 하였다.

오수혈을 이용하는 여러 가지 침법 중에서 체질침이 가진 특징을 말하라면, 그 중 하나는 단위 처방의 조합이다. 체질침의 역사는, 기본적으로는 송혈과 수혈로 조직한 장부혈의 적절한 자침 순서를 찾아내는 것으로부터 출발해서, 치료하려는 대상에 적용할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처방 배합을 구성하고 시도해 나가는 노력의 연속이었다고 할 수 있다. 병근이 되는 장부를 조절하는 처방을 앞뒤에 연속으로 배치하는 방법도 다른 목표를 가지고 시도되었던 것이다. 2차 논문에는 뇌출혈 환자에게 기본방을 6회 반복하여 시술하는 치료법이 있는데, 이것은 나중에 1단방 지혈방으로 변화되어 성립하기도 하였다.11)

키노시타가 남긴 자료에서 흥미로운 것은, 3단에 온 처방으로 대도와 해계가 사용된 부분이다. 이것은 일단 실즉사기자(實則瀉其子)’ 하는 방법은 아니다. 두 혈은 모두 화혈(火穴)이다. 두 혈을 함께 쓴 것은 해당 체질에서 최강장부인 췌(, )와 위(, )에 대한 공통적인 조치라는 뜻이며, 그리고 화혈을 함께 영(-)한 것은 아래 4단에 온 자율신경조절처방인 심사방과도 연관 지어 생각해 볼 수 있다. 3단과 4단 모두 송혈(送穴)은 사용되지 않았다. , 췌경과 위경의 화혈을 함께 영(-)하므로써 보수(補水)의 효과를 극대화시키려는 시도라고 생각한다. 환자는 간(, )에 병이 있는 상태이니, 신보방과 방광보방에 토(-)가 쓰인 것도 그렇고, 신보에 집중하면서 결과적으로는 간보(肝補)하려는 것이라고 분석할 수 있다.

 

송광수

키노시타의 기록이 시사하는 것은, 권도원 선생이 2차 논문을 통해서 체질침의 2단방 체계를 정식으로 보고하기 이전부터, 단위 처방을 3개나 4개로 조합해서 치료하는 방식들이 활발하게 시도되고 실험되어 있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체질침은 출발에서부터 2단방의 요소를 내포하고 있었다. 심경 소장경 심포경 삼초경을 이용하는 자율신경조절법이 62 논문12) 시기에 이미 있었다.13) 그래서 이것을 주증(主證) 치료법에 부가하여 부증(副證) 치료법으로 운용했다. 주증 치료처방에 부증 치료처방이 더해지면 2단방이 되는 것이다.

간경변 치료 처방에서 4단에 온 처방은 신경방이다. 이 처방 자료가 체질침의 역사에서 중요한 점이 바로 이 처방이다. 그리고 그 위치이다. 어느날 갑자기 정형화된 처방 체계가 하고 등장하는 것은 아니다. 단위 처방을 3개나 4개를 조합하는데 그 중에 신경방 즉 자율신경조절처방을 어떤 위치에 넣는다. 이런 아이디어 아래 다양한 실험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한국체질침학회에서 활동했을 거라고 추정하는 송광수가 지은 체질침의학14)이 있다. 이 책은 1975616일에 초판이 나왔다. 송광수는 이 책에 체질별 식이표를 소개하고 있는데, 그 내용이 명대 논문15)에 실린 것보다는 부족하다. 그래서 이 책을 쓰면서 참고한 자료들은 1974년이 시작되기 이전에 수집되었을 것이라고 짐작한다. 그는 ‘1971년에서 1973년말 사이16)에 권도원 선생의 대원한의원에서 어떤 처방이 시술되는 장면을 목격한다. 그리고 그것을 기록했다. 그때 그가 보았던 것은 마치 화석과도 같이 그의 책 속에 남았다.

20083월에 이 책을 보다가 159페이지에 있는 침치방의 표에서 기본방이라고 되어 있는 것이, 언뜻 보기에 체질침의 3단방 구조라고 판단하고 아주 놀랐다. 이것을 세 줄로 배열하면 마치 아래와 같았기 때문이다. 마지막에 두 혈로만 구성한 심방(心方)이 위치해 있어서 더욱 그랬다.

중봉c 곡천p 경거c 음곡p

태계c 부류p 척택c 어제p

신문c 소해p

그리고 이런 경우를 두 군데17) 더 발견했다. 하지만 책의 내용을 좀 더 자세히 검토해본 결과 나의 첫 판단이 틀렸다는 것을 알았다. 저 처방은 간보, 신보, 폐사, 심사의 4단 구조였다. 하지만 중요한 단서가 있다. 송광수도 키노시타처럼 송혈 없이 수혈(受穴)로만 운용된 심방(心方)을 보았다. 그리고 소장방(小腸方)도 보았던 것이다.

 

전구 갓 전기

권도원 선생은 1970년대 초반부터 송혈은 없이 수혈 두 개로만 구성된 자율신경조절방(신경방), 몇 단계로 조직된 치료처방의 후미에 넣는 실험을 계속 했던 것이다. 2차 논문을 통해 보고한 2단방인 정신방 뿐만 아니라 여타의 다른 배합 처방에서도 자율신경조절방을 넣어보는 실험이었다. 2단방의 공식 보고 이전에 3단방 혹은 4단방 형식의 처방들이 시도되었고, 그런 실험 과정 중에 1973년의 어느날 특별한 깨달음을 얻는 계기가 찾아온다. 이것은 체질침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이었다고 평가할 만하다.

선생은 닫힌 공간 안에서 홀로 빛을 내는 전등을 보고 있었다. 전구는 소켓에 끼워져 있고, 소켓 위에 갓이 있으며, 소켓으로부터 천정까지 전선이 이어지며 전등이 매달려 있다. 어두운 공간인데 전구에 불이 들어오면 불이 켜진 곳으로 집중하게 된다. 그리고 소켓 위에 갓을 씌우면 원하는 방향으로만 전구의 빛을 보낼 수 있다. 이 전등 빛은 전구의 용량에 맞는 적당한 전압의 전기가 지속적으로 공급되어야만 유지된다. 그런데 그 전기는 전선을 통해서 먼 곳으로부터 온다. ‘먼 곳으로부터 온다가 이 아이디어의 포인트이고, 권도원 선생이 그런 깨달음을 그때 그곳에서 얻었으리라고 추측한다. 전등을 켜는 사람이 전기가 오는 곳을 통제할 수는 없다. 다만 스위치를 통해서 전기를 받을지 말지를 선택하는 것이다.

체질침 3단방은 기본방, 치료목표방, 신경방으로 구성된다. 기본방은 전구, 치료목표방은 갓, 신경방은 전기이다. 신경방은 자화 또는 상화를 조절하는 처방이다. 송혈이 없이 두 개의 수혈로만 구성된다.

이강재 / 임상8체질연구회

 
각주
 


1) 木下晴都(Kinoshita Haruto, 1915~1997)

2) Dowon Kuan, 「A Study of Constitution-Acupuncture」 『國際鍼灸學會誌』 
   醫道の日本社 1966. 6. p.149~167

3) 국제침구학회(國際鍼灸學會)에서 권도원 선생은 1965년 10월 20일 오전 9시부터 진행된 ‘외국인 초대강좌’에서 두 번째 순서로 자신의 체질침 논문을 구두(口頭)로 발표하였다.

4) 일본침구치료학회(日本鍼灸治療學會/JAMS)가 주최하여 1965년 10월 18일부터 20일까지 도쿄에서 열림. 

5) 裵元植(1914~2006)

6) 秦泰俊(1925~2015)

7) ‘韓國의 鍼灸’ 木下晴都, 『日本鍼灸治療學會誌』 21권 1호 1972. 1. 15.

8) ‘태연’이라고 적은 것은 경거에 시술한 것을 착각한 것이라고 판단한다. 

9) 일어 원본을 번역한 것임.

10) Dowon Kuan, 「Studies on Constitution-Acupuncture Therapy」 『中央醫學』 1973. 9. 

11) 그런데 이후에 마비방은 2단방의 목록에서 삭제되었다. 

12) Dowon Gwon, 「The Constitutional Acupuncture」 1962. 9. 7.

13) 그리고 이후에 자화와 상화을 조절하는 이른바 ‘화조절법’에 관한 다양한 궁리와 시도가 있었다. 

14) 宋珖秀, 『體質鍼醫學』 1981. 3.

15) Dowon Kuan, 「Studies on Constitution - Acupuncture Therapy」 
    權度沅, 「體質針 治療에 關한 硏究」 (國譯文) 『明大論文集』 제7집 1974. 1. 

16) ‘체질침 3단방의 성립에 관한 궁리’ 이강재, 『학습 8체질의학 Ⅱ』 행림서원 2013. 10. p.35~49

17) 宋珖秀, 『體質鍼醫學』 p. 168, 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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