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사 강솔의 도서비평] 알래스카를 사랑했던 호시노 미치오의 사진과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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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사 강솔의 도서비평] 알래스카를 사랑했던 호시노 미치오의 사진과 글
  • 승인 2023.01.06 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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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솔

강솔

mjmedi@mjmedi.com


도서비평┃영원의 시간을 여행하다, 나는 알래스카에서 죽었다

호시노 미치오는 1952년 일본에서 태어났다. 스무살에 <알래스카>라는 원서를 보고 알래스카에 매료되어 싀스마레프라는 알래스카 마을의 촌장에게 편지를 보냈다. 반년 뒤 답장을 받았고 1973년 여름 그는 쉬스마레프에서 알래스카 부족민으로 3개월을 생활했다. 그는 이 여행에서 ‘세상의 끝인 줄 알았던 곳에도 사람들의 생활이 있었다. 인간의 삶, 살아가는 모습의 다양성에 매혹되었다....누구나 단 한 번뿐인 소중한 인생을 산다는 것이다. 세계는 그런 무수한 점으로 이루어져 있다’ 고 느꼈다. 알래스카의 삶과 자연을 표현할 길이 없을까 생각하던 그는 사진에 관심을 두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2년간 사진작가의 조수로 생활한 뒤, 1978년 알래스카 대학에 입학하였다. 그때부터 알래스카를 담는 사진작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1996년 8월 8일, 러시아 캄차카 반도 쿠릴호숫가에서 취재하던 중, 불곰의 습격으로 사망하였다. 43세였다.

호시노 미치오 지음, 이규원 옮김, 청어람미디어 펴냄

어렸을 때 자주 알래스카에서 오로라를 보고 싶었다. 나이 들며 잊어버리고 살고 있었는데, 어떤 여행작가님이 호시노 미치오의 책을 읽고 알래스카에 가고 싶었다고 말했다. 호시노 미치오가 누구일까 궁금해서 검색해서 산 책이 <영원의 시간을 여행하다>였다.

이 책은 읽는다는 표현보다 <본다>라는 표현이 더 어울리는 책이다. 호시노 미치오의 사진들이 위주인 도록처럼 되어 있다. 카리부, 무스, 그리즐리, 돌산양, 북극곰, 고래등 알래스카의 동물들과 자연들을 거쳐, 극북의 봄, 여름과 가을을 거쳐, 그곳에 사는 사람들과, 그들의 생활을 찍은 사진이 아름답다. 사진과 글이 함께 있지만, 처음엔 글보다 사진을 오래 들여다보았다. 계절이 바뀔 때를 알아차리고 빙하 위로 먹이를 찾아 대이동을 하는 카리부 떼의 사진. 갈색 곰 그리즐리와 하얀 눈과 얼음 위의 북극곰 사진들은 감동적이다. 처음엔 기분이 나쁠 때 이 책을 아무데나 펼쳐서 그 페이지의 사진을 한참 보곤 했다. 사진을 보다 보니 함께 있는 글이 보이고, 그의 글도 마음에 들었다. 수사나 군더더기가 별로 없는 글이었다. 그는 엄혹하고 냉정하고 추운 극북에서 생명을 만날 때마다 <생명력>을 느낀다고 하였다. 인간의 무력감을 느끼기 쉬울 것같아 보이는 그 곳에서 장엄한 자연을 마주칠 때마다 늘 그는 주먹을 불끈 쥐는 생명력을 표현하는 글을 썼다. 추위와 빙하의 대명사인 알래스카에서 그가 찍은 봄과 여름 사진을 보면 싱그러웠고, 그 곳에 살고 있는 어린이의 해맑은 미소와 나이든 이들의 주름진 얼굴 사진들은 맑고 순수하였다. 호시노 미치오의 글과 사진은 자극적이고 강렬한 풍미의 음식이라기보다 담담하고 담백하지만 맑은 된장국 같은 느낌이었다. 그래서 그의 또 다른 책을 읽게 되었다. <나는 알래스카에서 죽었다>라는 책이었다.

호시노 미치오 지음, 임정은 옮김, 다반 펴냄
호시노 미치오 지음, 임정은 옮김, 다반 펴냄

이 책은 호시노 미치오가 1995년 8월부터 월간지에 <숲과 빙하와 고래> 라는 제목으로 연재를 시작했던 글을 모은 책이다. 원래는 12회로 끝날 예정이었으나 17회까지 늘어났다. 연재를 시작하고 첫 번째 취재에서 호시노 미치오는 밥 샘이라는 클링깃족 인디언을 만난다. 알래스카에서 살면서 점점 인디언과 에스키모의 옛 삶을 듣게 되면서 그들이 먼 옛날에 아시아에 살았고, 지금은 베링해협이라 불리는 바다가 육지였던 시절, 아메리카 대륙으로 건너왔다는 이야기에 매료되었다. 그 길을 다시 따라가 보겠다는 생각으로 시베리아 땅을 밟으려고 했다. 그는 신화를 쫓았다. 이 연재는 14회까지 이어졌고, 예정대로라면 3회가 남아 있었다. 시베리아 취재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를 2회차를 쓰고, 마지막 회엔 아메리카 대륙으로 돌아갈 계획이었다고 한다. 이 취재 도중 그는 쿠릴 호숫가에서 불곰에 물려서 사망하였다. 이 마지막 연재가 <나는 알래스카에서 죽었다>라는 제목의 이 책이다.

20년을 알래스카를 기록하던 그가 마지막엔 클링깃족 인디언의 신화, 큰까마귀 전설을 모티브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갔다. 신화의 세계는 여러 상징과 비유들을 담고 있다. 신화는 현실과 현재를 유물론적으로 표현하지 않는 ‘이야기’이지만 현재와 현실을 만드는 근간이며 많은 의미들을 담고 있다. 눈에 보이는 세계를 이루는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가 신화의 세계이다. 신화는 시간을 품고 있고, 그 시간을 따라 전해져 오는 영혼을 품고 있다. 무엇인가를 사랑하는 일은, 그 대상의 보여지는 모습에서 시작하기 쉽지만, 쉽게 보이지 않는 모습까지 보게 되고, 결국은 그 영혼에 닿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호시노 미치오는 알래스카에서 사는 사람들의 영혼에 닿고 싶었던 ‘새로운 여행’을 시작했다. 20여년 이라는 시간 동안 그는 알래스카를 점점 더 사랑하게 되었구나, 깨닫게 해 준 책이었다.

호시노 미치오의 다른 책을 지금 읽고 있다. 며칠 전 눈이 많이 내리고 추운 날, 차를 놔두고 쌓인 눈을 밞으며 출근하면서 그를 떠올렸다. 사진을 보면 그 사진을 찍은 사람이 피사체를 보는 마음이 드러난다고 하던데, 그의 알래스카는 대부분 맑고 따뜻했다. 현재로부터 과거, 현실로부터 신화로 거슬러 올라가는 그의 기록들을 보면서 바로 지금 여기 이 순간의 짧은 찰나와 동시에, 유구한 인간의 역사 그보다도 더 길고 긴 자연의 시간을 생각했다. 현재를 살면서 동시에 기나긴 시간을 이루는 생명과 자연과 영혼에 대해서 생각했다. 이 겨울엔 호시노 미치오를 자주 떠올릴 듯 싶다.

 

강솔 / 소나무한의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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