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에서 인류학하기](6) 故 홍정운 학생을 기억하고 애도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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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에서 인류학하기](6) 故 홍정운 학생을 기억하고 애도하며
  • 승인 2022.11.18 0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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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유정

신유정

mjmedi@mjmedi.com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읍내에 일 보러 나갔다가 청소년 쉼터 맞은편에 걸린 현수막을 봤다. 故 홍정운 학생 사망사고 1주년을 맞아 그를 추모하는 내용이었다. 특성화고 3학년, 물을 많이 무서워해서 수영도 못 했다던 홍 군은 2021년 10월 6일 요트 현장실습을 나갔다. 그리고 여수 웅천 아름답고 맑은 바다에서, 잠수장비를 달고 요트 하부의 따개비를 따다가 장비를 풀지 못한 채 익사했다. 그게 벌써 1년 전이다. 구례에서는 인근 지역 특성화고로 아이들을 유학 보내는 일이 많다 보니 당시 홍 군의 사망 소식은 지역 주민들에게 충격적인 것이었다.

사고 당시 따개비는 원래 요트를 육상으로 옮겨 작업하는 것이 루틴이었지만, 민원이 발생할까봐 사람이 잠수장비를 차고 배 밑에 들어가 작업하는 것으로 바뀌었다고 했다. 2인 1조라는 안전 수칙이 있기는 했지만 현장에서는 무용지물이었다. 인문계도 아닌 특성화고의 현장실습생. 이들은 그저 싸게 부려먹을 수 있는 인력, 정규직도 계약직도 아닌 그냥 아무렇게나 사용해도 되는 노동력 정도로나 취급된다. 미성년의 직업계고 현장실습생은 현장에서 실습하며 교육받는 사람이 전혀 아니다. 성인 노동자조차 좀처럼 사람값으로 쳐주지 않는 한국 사회에서 이들 미성년의 현장실습생은, 그 노동시장의 피라미드에서도 가장 말단에 있어 잘 보이지도 않고 이들의 이야기는 잘 들리지도 않는다.

게다가 현장에서 부당한 요구가 있었다 하더라도 학생들이 이를 단호하게 거부할 용기를 낼 수 있었을까 생각해보면 더 아득하다. 우리 모두 잘 아다시피 한국의 학교에서는 그런 대담한 학생들을 키워내지 않기 때문이다. 어른들은 젊은 세대더러 “싸가지없다”고들 하지만 실상 아직도 십대들은 어른들이 하는 말에 대차게 반론하고 자기 의견을 피력하는 법을 제대로 교육받지 못한다. 심지어 인문계도 아닌 직업계고 학생들에게, 어른들의 말을 의심하고 비판하고 반론하도록 하는 교육이 이루어질 리가 없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이런 엉망진창같은 사회에서의 현장실습 제도란 (좀 거칠게 말하자면), 학교가 학생들을 싸게 막 부려먹어도 되는 비숙련 단기 저임금 노동자로 노동시장에 제공하는 제도나 다름없게 되고 말았다. 그날 작업을 지시한 사람에게 홍정운 학생은, 그저 아무것도 아닌/따개비 따는 허드렛일을 해줄/저렴한 일회용 인력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던 셈이다.

홍정운 학생뿐 아니라 우리 주변에 실업계 고교 현장실습생들은 그간 쭉 있어왔다. 삼성전자 기흥 반도체공장에서 일하다 백혈병으로 돌아가신 고 황유미 씨도 속초여상 학생 때부터 삼성전자의 현장실습생으로 일을 시작했다. 2020년 오리온 제과에서 직장 내 괴롭힘과 성추행으로 자살했던 고 서지현 씨도 현장실습생 출신이었다. 2005년 여수에서 엘리베이터 점검 작업을 하던 광주숭신공고 김 모군은 안전 장비도 없이 작업하다 4층에서 지하 1층으로 추락해 사망했고, 2011년 광주기아차 영광실고 현장실습생은 하루 10 시간 이상 정규직이 기피하는 유해 페인트 작업장에서 일하다 쓰러져 뇌사상태에 빠졌다. 2012년에 순천효산고 학생은 울산에서 현장실습 중 작업선 전복으로 익사했다. 2016년 구의역에서 스크린 도어를 고치다 전동차에 치여 숨졌던 김 모 씨도 현장실습 졸업생이었다.

청소년 노동 인권을 주장하는 이들의 요구는 단순하다. 직업계고 현장실습은 학습도 교육도 아닌 청소년 노동착취일 뿐이므로, 이 제도를 폐지하고 학생들의 수업권을 보장해달라는 것이다. 3학년 2학기까지 정규 교육과정을 충실히 이수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것, 고졸 학생들의 취업 준비기간을 3학년 12월부터로 삼자는 것이다. 1970년대 산업화 과정에서 활용했던 현장실습제도를 이제 폐지할 때도 되었다는 것이 이들의 이야기다. 이게 어려운 이야기도 아닌 것 같은데 왜 아직도 미성년의 고등학생들이 어른도 하기 싫은 일들을 하며 죽어나가야 하는지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다.

아마도 이유는 딱 한 가지인 것 같다. 추측이긴 하지만 틀림없다. 교육 정책을 결정하는 이들 중 자기 자식들이 현장실습생으로 나갈 사람은 한 사람도 없기 때문일 것이다. 현장실습제도 폐지하라고 백날 얘기해봐도 교육당국에서 관심조차 없는 이유도 결국은 그것뿐이다. 정책결정권자들 중 어느 누구도 직업계고 현장실습생 자식을 두어본 적이 없을 것이다. 자신들과 상관없는 세계의 일. 어찌 되어도 그 순간만 모면하면 관심조차 둘 필요없는 일일 테니 말이다. 그러니 다시 한번 그의 죽음을 기억하고 애도한다. 당신들은 관심 없더라도 여기 관심갖는 사람들이 있다고 말해주고 싶어서다.

그 사건이 있기 전 여수 웅천 바다는 우리 가족이 참 좋아하는 곳이었다. 단정하게 꾸며진 백사장과 해변에서 아이가 안전하게 놀기가 좋고, 세련된 도시 한 가운데서 바닷바람 쐬며 앉아 있는 기분을 즐기기에 딱 안성맞춤인 곳이다. 그래서 더 끔찍한 사고였다.

그 바닷가 수면 바깥에서 누군가는 삶의 여유를 즐길 때, 그 수면 아래에서 한 고등학생이 따개비를 뜯다가 물 밖으로 나오지 못한 채 별이 되었다. 그러니 그의 죽음을 이렇게 또 한 번 기억하고 애도한다. 수면 위의 세계와 수면 아래의 세계가 서로 단절되어 있지 않다고 말하고 싶어서. 물 밖에 있던 우리는 물속에 네가 있다는 걸 그저 몰랐을 뿐, 결코 너의 죽음과 너의 고통을 당연한 것이라 생각한 적 없다고 말해주고 싶어서.

 

신유정 / 한의사, 인류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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