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의서산책/ 1032> - 里鄕見聞錄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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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의서산책/ 1032> - 里鄕見聞錄③
  • 승인 2022.11.05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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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우

안상우

answer@kiom.re.kr

한국한의학연구원에서 동의보감사업단 단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동의보감사업단에서는 동의보감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하고 이를 홍보하기 위한 사업을 진행해왔다. 최근기고: 고의서산책


魚蟹圖로 들여다보는 본초그림

이 책이 대개 양반 사대부가 아닌 중인계층 이하 인물들에 대한 간략한 小傳 형식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조선 시대 후기인물들에 대한 인물지로 부각되어 있다. 하지만 제대로 인물전의 형식을 갖춘 것도 드물고 그저 저자 거리에서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이야기를 채록한 형식에 가깝기에, 오히려 민간풍속이나 기이담 같이 서민들이 좋아하는 이야기가 많이 담긴 것도 특징이다.

◇ 『이향견문록』

양예수나 허준 같이 명성 높은 太醫들의 위업이 기재되어 있고 유상이나 백광현 같이 의학사에 기록된 명인들도 있다. 또 申鍼醫, 老學究, 崔老人과 같이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의인들에 대한 숨은 일화들을 찾아보는 것도 재미있지만 오늘은 이와는 좀 다른 시각에서 이 책 안에 담겨진 각별한 의미를 곱씹어 보고자 한다.

다름 아닌 畫師 張漢宗(1768~1815)의 이야기를 통해서이다. 그는 인동 장씨 화원 집안에서 태어났기에, 대를 이어 도화서화원으로 활약하였다. 1795년(정조 19) 김득신, 이인문 등 당대 최고의 화가들과 함께 『園幸乙卯整理儀軌』제작에 참여하였다. 특히 魚蟹畵를 잘 그렸는데, 이 분야에선 당대 최고라고 첫손 꼽혔다.

이 책에서 저자 유재건은 장한종의 그림 실력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술했다. “그는 소년시절부터 숭어, 잉어, 게, 자라 등을 사다가 그 비늘과 껍질을 자세히 살펴보고 模寫(사물을 형체 그대로 그림)하였다. 매번 그림이 완성되었을 때마다 생긴 것과 너무나 닮아있기에 감탄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또 그의 아들 駿良도 어해도를 잘 그렸기에 집안에서 배워 얻은 솜씨라고 찬탄했다.

특별히 이 대목을 들추는 것은 중앙박물관에 그가 그린 『魚介畫帖』속 꽃게 형상이 너무나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등딱지에 삐죽삐죽 솟아오른 가시와 다리마디에 붙어있는 털 뭉치까지 그려 섬세하기 이를 데 없고 채색 또한 그대로 남아있다.

필자가 감탄한 것은 이 그림 속 게가 실물과 너무 흡사하게 꼭 닮아서 이기도 하지만 500년 조선의학사 본초서에 그림 한 장 남아있지 않은 실정인지라 아쉬움을 금할 수 없는 탓이기도 하다. 조선 전기 성종대 향약본초를 정리하고 언해하면서 그림을 남겼다는 말이 있으나 실물이 전해지지 않고 흔적을 찾아보기 어렵다.

조선산 약재를 그린 그림으로 전해지는 것은 1721년 도쿠가와 막부 본초학에 각별한 관심을 지녔던 요시무네 장군의 명령(朝鮮國鳥獸草木吟味)으로 對馬藩에서 그려 전해진 것이 거의 유일하지 않나 싶다. 애초 이 일은 『동의보감』탕액편에 수록된 약재 가운데 일본산 약재와 일치여부를 고증하기 위한 선행 작업으로 시작된 것이다. 조사대상은 178종에 달해 보고서 제2권인 ‘物名之帳面’에 따로 정리되었고 동식물 그림 56장이 함께 제출되었다.

이 본초도는 현재 도쿄대학 사료보관소에 44종 47장이 보관되어있고 나머지 9장은 나가사키 현립 쓰시마 역사민속자료관에 소장중이다. 조선산 약재조사과정에 대한 내용이나 그림은 동의보감문화총서 가운데 하나 『에도, 조선의학을 학습하다』(요시무라 미카, 2021.)에 제법 자세하게 소개되어 있으니 살펴봄 직하다.

『동의보감』탕액편에서 게(蟹)는 “매년 늦여름에서 초가을 무렵이 되면 매미가 허물을 벗듯이 때에 맞춰 껍질을 벗는다는 뜻에서 그런 이름을 얻은 것이다.”라고 하였고 또한 “요즘 사람들은 이것을 맛좋은 먹거리로 여긴다.”고 했으니 약성이나 효능이 아니라도 매우 자세히 살펴본 것이 분명한데, 정약전의『玆山魚譜』에 조차 그림을 그려 넣질 않았으니 안타까울 뿐이다. 장한종이 터득한 묘사력이면 정밀한 본초도를 그리고도 남았을 것이니 말이다.

 

안상우 / 한국한의학연구원 동의보감사업단

안상우
한국한의학연구원에서 동의보감사업단 단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동의보감사업단에서는 동의보감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하고 이를 홍보하기 위한 사업을 진행해왔다. 최근기고: 고의서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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