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읽기] 콘서트가 아니라 대법원에서 만난 오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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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읽기] 콘서트가 아니라 대법원에서 만난 오빠
  • 승인 2022.10.07 0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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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숙현 기자

박숙현 기자

sh8789@mjmedi.com


영화읽기┃성덕
감독: 오세연
감독: 오세연

2019년 한국을 가장 떠들썩하게 했던 연예뉴스를 꼽자면 그건 버닝썬 게이트일 것이다. ‘버닝썬’이라는 클럽에서 벌어졌던 단순폭행사건이 점점 파고들면서 마약과 성매매 알선, 불법촬영물 공유사건 등으로 이어졌고, 경찰과 검찰 고위간부 등이 연계된 것이 아니냐는 의혹까지 제기되었던 사건이었다. 단순한 연예뉴스로 보기 힘들었던 이 사건에는 또 다른 피해자가 있었으니 바로 사건의 중심에 있던 승리, 정준영 등의 팬이었다.

영화 '성덕'은 정준영의 오랜 팬이었고, 정준영의 팬으로 방송까지 출연했던 ‘성공한 덕후’ 였던 감독이 만든 다큐멘터리로 화제가 되었다. 전교 1등을 할 만큼 성적이 우수했던 중학생 소녀는 오빠를 위해서라면 무단결석도 아무것도 아니게 되어버리고, 오빠를 따라 팬사인회에 콘서트, 방송국까지 따라 다니다 결국 대법원까지 따라가게 된다. 대법원 근처에서 설익은 컵라면을 먹는 감독의 심난하고 착잡한 표정은 이 작품을 정의하는 한 장면이라고 할 수 있다.

감독은 정준영처럼 범죄를 저지른 연예인에게 ‘아직도’ 팬이 남아있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느끼면서 이 영화를 제작하게 되었다고 밝혔다. 감독 본인부터가 본인의 십대시절을 다 바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정준영을 사랑했지만, 그가 도무지 용서할 수 없는 범죄를 저지른 이상 더 이상 좋아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 모두가 그럴 것이라 생각했는데, 여전히 그들을 응원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영화는 이 질문에서 출발한다.

원래는 착한 사람이었어서? 너무 많이 좋아했어서? 다른 사람의 범죄까지 억울하게 누명을 쓴 것이라고 생각해서?

여러 가지 질문을 던지면서 감독은 자신처럼 ‘범죄자가 되어버린 오빠’를 사랑했던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있다. 이들은 타인에게 악질적인 행위를 저지른 범죄자에게 분노하면서도 자신이 그를 얼마나 좋아했고 왜 좋아했는지, 자신의 행복했던 지난 추억에 상처만 남긴 그를 향한 원망과 슬픔을 여과 없이 드러낸다.

울분을 토하며 “이제 더 이상 연예인인 누군가를 좋아하기 힘들어졌다”, “인간 자체에 대한 불신이 생긴다”고 고백하는 전직 덕후의 아우성, 누군가를 좋아했다는 이유만으로 자신마저 잘못을 저지른 것만 같은 죄책감, 그 뒤를 이어 “어쩌면 그럴 수도 있는 사람이란 걸 알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고 덤덤하게 고백하는 덕후의 쓰라린 고백이야 말로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라 할 것이다.

누군가의 팬이거나 팬이었던 경험이 있다면 일희일비하며 이 영화 속 ‘덕후’들의 모습에 공감할 수 있을 것이고, 그것이 이 독립영화가 입소문을 타게 된 이유였다.

다만 독특하고 재기발랄한 소재에서 이야기가 더 나아가지 못한 것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범죄자를 응원하는 팬이 되어버린 사람들을 다른 사회현상과 연결시켜보려는 시도는 흥미로웠지만, ‘그것과 비슷하지 않을까?’라는 시도 그 이상으로는 이어지지 않는다. 범죄자의 팬이 되어버린 사람들의 심리상태에 대한 이론적인 분석이나 아주 디테일한 논의는 진행되지 않았다. 날것 그대로의 반응을 고스란히 담아내는 블랙코미디에 충실했을 뿐이었다.

그래서 만약 ‘범죄자의 팬이 되어버린 사람’들에 대한 깊이 있는 분석이나 사회적 영향을 다룬 소재를 기대했다면 아쉬움이 남을 수도 있다. 그보다는 오히려 팬 커뮤니티에 등장하는 팬들의 하소연에 가깝다. 그러나 ‘나의 추억을 더럽혀버린 옛날 오빠’를 하소연하며 훌훌 털어버리고 싶은 사람에게는 한 번 권할 법 하다.

 

박숙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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