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3번째 비행기에서 응급처치한 한의사…“하늘의 의료에는 경계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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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3번째 비행기에서 응급처치한 한의사…“하늘의 의료에는 경계가 없다”
  • 승인 2022.10.04 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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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춘호 기자

김춘호 기자

mjmedi@mjmedi.com


▶인터뷰: 비행기내에서 3번 응급처치한 박성운 한의사.

“한의사, 응급상황 대처 모든 것 배워…배운 대로 자신 있게 나서는 것 중요”

[민족의학신문=김춘호 기자] 보통 사람들은 한 차례도 경험하기 힘든 비행기내 닥터콜을 3번이나 받고 그 때 마다 응급처치를 한 박성운 한의사. 그는 한방내과 전문의 수련과정 시절 배웠던 것들이 응급환자 처치에 많은 도움이 됐다고 한다. 한의사들도 이미 응급처치에 대한 모든 것을 배웠고 배운대로만 실행하면 된다는 그에게 당시 상황은 어땠고 어떤 처치를 했는지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간략한 본인 소개를 해달라.
경기도 남양주시 오남읍 100세행복한의원 박성운 원장이다. 한방내과 전문의이고, 동네에서 마을 주민들을 보살피며 1차 의료에 종사하고 있다.

▶닥터콜을 한번 받는 것도 흔치 않은 일인데 세 번이나 비행기내에서 닥터콜을 받고 응급처치를 했다. 각각 어떤 상황이었나.
첫 번째는 2016년 9월 11일 신혼 여행가던 때였다, 그리스 산토리니까지 가는 일정이었는데 인천공항에서 출발해서 경유지 터키 이스탄불로 향하던 비행기에서 닥터콜이 울렸다. 그 당시 레지던트 2년차였는데, 신혼여행마저 이게 뭔가 싶었다(웃음). 가봤더니 한국 중년 여성 분이 어지럽다며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는데, 진단해보니 가벼운 저혈압 증상이었다. 이코노미석에서 프레스티지석으로 이동시키고 눕혀서 안정시키니 금방 활력을 되찾았다. 기내에서 받은 첫 닥터콜이라 어리둥절했지만, 그 때 두 가지 간단한 사실을 깨달았다. ‘승무원에게 혈압을 재달라고 하면 재 준다’, ‘기내에는 환자용 베드는 없지만, 프레스티지석이 환자 베드 기능을 한다’였다. 터키항공(TK89)이었는데 선물은 그냥 간단한 초콜릿, 사탕 등을 받았다.

두 번째는 2019년 8월 18일 시부모님을 모시고 일본 도쿄로 향하던 비행기에서였다<사진>.  첫 번째보다 조금 더 까다로운 상황이었는데, 일본인 중년 남성이었고, 저혈당으로 의식도 떨어지고 힘들어하고 있었다. 아내로 보이는 여성이 어쩔 줄 몰라하고 있었는데 프레스티지석까지 옮길 수도 없었고 그냥 비행기 중간에 있는 출입구 앞에 눕혀서 이불 덮어주고 초콜릿과 사탕을 천천히 녹여먹으라고 하고 경과를 관찰했다. 다행히 금방 좋아졌다. JAL일본항공(JL092)이었는데 우리 집으로 감사 편지와 함께 볼펜 선물을 우편으로 보내줬었다. 

이렇게 두 번 겪고 났더니, 이제는 비행기 탈 때 마음의 준비를 하게 되더라. 지난 추석 연휴 때 남편과 베트남 호치민에 다녀올 일이 있어서 짐을 챙기면서 남편에게 말했다. "여보, 우리 둘이 같이 해외 다녀오면서 닥터콜 안 받은 적이 드물잖아요. 이번에는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 가요. 내가 기내 짐으로 침이랑 사혈총이랑 알콜솜이랑 다 챙길게요"라고 했더니 현재 내과 레지던트 3년차인 남편이 웃으며 대답했다, "걱정 말아요, CPR(심폐소생술) 할 일은 없을 거에요". 하지만 그 이야기를 듣고 동의하지 않았다. 기내 심정지 케이스까지도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평소 워낙 최악의 상황까지 미리 생각해놓는 성격이기 때문이다.

세 번째는 2022년 9월 12일 호치민에서 인천으로 귀국하던 비행기(KE684)에서였다. 비행기가 인천공항에 착륙하기 위해서 고도를 서서히 낮추고 있던 상황이었고, 이번 여행은 무사히 마치나 했더니 닥터콜이 울렸다. 마침 우리가 환자와 같은 칸에 타고 있어서, 웅성웅성하는 장면부터 멀리서나마 즉시 볼 수 있었고 덩치 큰 남성이 의식을 잃은 상태였고 혓바닥은 길게 빠져있었다. 내가 수련할 때 종종 보던 환자군이었다. 늘 하던 습관대로 경동맥부터 확인했는데 느껴지지 않았고, 동공이 열려있었고, 혈압도 체크 되지 않았다. 체중이 100kg는 될 것 같은 거구의 남성이었는데, 식은땀으로 온몸이 축축했다. 응급상황이라는 판단하에 기내 통로로 끌어내어 질질 끌 듯이 옮겨서 이코노미석과 프레스티지석 사이의 승무원용 공간에 눕혀서 빠르게 다시 상태를 파악했는데 경동맥 뿐 아니라 대퇴동맥도 느껴지지 않아 심폐소생술을 시작했다. 흉부 압박을 하면서 승무원에게 AED(자동제세동기)를 요청했다. 패치를 붙이고 심전도 리듬 분석했는데 제세동은 필요 없고 흉부 압박을 지속하라는 메시지가 나와서 지속했다. 다행히 1~2분 만에 환자가 “오, 오, 오”하는 신음소리를 내면서 콜록, 콜록 기침을 하며 의식이 회복됐다. 혈압을 다시 재보니 최고 혈압 100이 넘게 나오는 것을 확인하고 심폐소생술을 중단했고, 혹시나 구토했을 때 기도 흡인을 막기 위해서 회복 자세로 옆으로 눕혀놓았다. 착륙하면 구급차 태워서 바로 병원으로 보내라고 승무원들한테 말했는데, 승무원들이 미리 구급차 연락을 해둔 상태였다.

착륙 직전이어서 비행기가 많이 흔들리고 있었고 모든 승객은 자리에 앉아 안전벨트를 매야했고, 우리도 응급처치를 마친 후 승무원의 지시에 따라 자리로 돌아왔다. 착륙 후 승무원이 우리에게 찾아와서 환자가 의식이 돌아와서 옷이 풀려있는 것을 부끄러워하고 대화도 나눌 정도로 회복되었다는 이야기를 해줬다.

심정지의 원인은 심근경색이나 뇌경색으로 추정되는데, 명확히 파악되지 않은 불안정한 상태이며, 심정지에서 일시적으로 회복됐다가 또 다시 심정지가 오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에 우리는 안심하지 않고 한 번 더 환자분을 보러 갔다. 중국계 미국인이라서 중국어와 영어로, 평소 복용하는 약 등을 파악해보려 했는데, 말이 어눌하고 의사소통이 명확하게 되지 않았다. 아직 상태가 많이 불안정하다고 판단했고, 착륙 후 기내로 들어온 응급구조사에게 상황을 잘 인계해줬다. 짐을 찾아 공항 밖으로 나와 신호를 기다리는데 한 외국인이 우리를 알아보고 “Are you the Doctors on Board?”(당신들이 기내에 있던 의사들입니까?)라고 물었고. 맞다고 간단히 상황 설명을 해주었더니 “You revived him!”(당신들이 그를 소생시켰군요!) 이라고 했는데 굉장히 뿌듯하고 보람되고 기뻤다.

3일 후 대한항공 항공의료센터장으로부터 감사 이메일과 함께 상품교환권을 받았다. 여러 가지 상품 중에서 퍼스트클래스 편의복 세트를 신청해서 받았다.

 

▶한방내과 수련도 받았다. 수련받은 것이 도움이 됐는가. 
많은 도움이 됐다. 나는 경희의료원의 동서협진과라는 곳에서 수련을 받았는데, 한의학과 서양의학의 협진이 이루어지는 곳이다 보니, 중환자 경험을 많이 쌓을 수 있는 독특한 곳이었다. 학부 시절부터 내 꿈은 ‘사람 살리는 의사’ 되는 것이었는데, 정말로 나를 사람 살리는 의사 되도록 만들어준 수련 과정이었다. 특별히 과 과장님이신 류재환 교수님, 그리고 이끌어 주신 많은 선배님들께 이 자리를 통해 존경과 감사 인사를 하고 싶다.

▶처음 닥터콜을 받고 망설여지지는 않았나. 
신혼여행 때 겪었던 첫 닥터콜 때에는 방송 듣고 덜컥 겁이 나기도 했다. 괜히 의료 소송에 휘말리는 것 아닐까 싶기도 했지만 자꾸 나가다보니 지금은 익숙해져 버렸다(웃음). 다음 닥터콜 때에는 기내에 무엇을 들고 타야할까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다. 일단 기존에 챙겼던 침, 사혈총, 알콜솜에 더불어 산소포화도 측정기, 에피네프린 등등을 챙기고 싶다. 

▶기내 혹은 일상생활 등 급작스레 발생하는 응급상황에서 한의사가 할 수 있는 역할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우리 나라는 특이하게 한의사와 의사가 독립된 면허로 되어 있지만, 한의사는 명백하게 의사이며 의료인이다. 이미 우리는 응급상황 대처에 대한 모든 것을 배웠다. 배운 대로 자신 있게 나서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아울러, 한의사들이 의사들에 위축되지 않고 자유롭게 응급처치하고, 당당하게 진료할 수 있도록 법적으로 뒷받침이 되면 좋겠다. 

▶기타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공간은 기내다. 왜냐하면 가장 자유로운 공간이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어떤 나라에도 속해있지 않고, 심지어 시간도 기내에서는 따로 돌아간다. 휴대폰도 비행기모드로 하고 있으면 각종 연락에 시달리지 않아서 좋다. 
특이하게도 내 삶에서 기내 닥터콜을 벌써 세 번이나 겪었는데, 자유롭게 나설 수 있었던 배경은 우리나라 안에서의 한의사의 진료 범위라는 틀을 벗어났기 때문이 아닐까 돌아본다. 한의사라는 틀에 얽매이지 않고, 사람을 구하기만 하면 되는 그 상황이 내게는 참 즐겁기까지 하다.
우리나라의 국민들에게는 희한하게도 한의사는 의사가 아니라는 인식이 지배적인 것 같아 너무도 안타깝다. 우리나라 한의사들은 최고의 두뇌, 성품을 가진 사람들이고, 나는 그 중에서 그다지 잘난 것도 아니다. 나처럼 젊은 한의사들이 더욱 노력해서 사회적으로 국민들에게 선(善)을 행할 때, 한의사들이 국민들에게 더욱 인정받고, 한의사의 진료 범위가 넓어지고, 더 많은 생명이 살아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각종 검사기기, 수액 주사 등등이 현재는 한의사가 사용할 수 없도록 막혀있는데, 한의사 중에서 원하는 사람들은 사용할 수 있도록 허용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내가 BLS provider(Basic Life Support) 자격증이 있는데, 내과 수련하면서 내용을 다 배웠음에도 불구하고 ACLS(Advanced Cardiovascular Life Support) 자격증을 따지 못했다. 한의사는 딸 수가 없도록 막혀 있어서 참으로 답답한 것들이 많다.

나 자신은 전혀 잘난 사람이 아니고, 그냥 평범한 한의사들과 조금 다른 길을 걷다보니 특별한 경험이 쌓이는 것 같고, 내 경험들을 녹여서 기내 한의사 매뉴얼 같은 걸 펴내고 싶고, 한의사들 대상으로 강의도 해보고 싶다. 기내에 들고 탈만한 가벼운 기내진료키트 같은 것도 만들어보고 싶고 나와 남편이 한 팀을 이루어서 서로 많이 의지가 되고 있다. 혼자였다면 저렇게 잘 해낼 수 없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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