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변 약초 기행] 9. 호미꽃, 은방울, 박새, 우엉, 그리고 두만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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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변 약초 기행] 9. 호미꽃, 은방울, 박새, 우엉, 그리고 두만강...
  • 승인 2004.12.10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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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 惠 善 (작가·연변작가협회 주임)

백금령에 이르러 차는 다시 멈춰 섰다. 최진만 노인과 임승춘 노인이 장비를 꺼냈다. 쇠를 갈아 뾰족하게 만들고, 발 힘으로 압력을 가할 수 있도록 십자가모양으로 나래를 만들어 작은 자루에 맞춘 이상한 모양의 장비였다. 나는 호기심이 동해 그 장비를 땅에 대고 발로 나래 부분을 꽉 눌러서 힘주어 팠더니 생각밖에 큰 반경의 흙이 일어나면서 그 복판에 있던 백출이 뿌리 한 가닥 상하지 않고 쉽게 파헤쳐졌다.

백금령에서도 자연은 분에 넘치는 선물을 펼쳐주었다. 진분홍 꽃이 기다랗게 달린 익모초, 노란 호미꽃, 보랏빛의 황금, 초롱같은 꽃이 대룽거리는 사삼 등 약초들이 자태를 뽐내며 서 있다. 누군가 난같이 길고 갸름한 황금의 이파리를 살피며 이 이파리를 한족들이 차로 즐겨 마신다고 했다.

약초들이 많은 중에도 호미꽃의 이름이 참 재미있었다. 호랑이도 들으면 깔깔 웃을 것 같다. 동그스름한 노란 이파리가 술을 중심으로 외겹으로 둥글게 원을 지었다. 이 작은 꽃을 솔잎 같은 잎사귀가 받쳐준다. 그 잎사귀가 호랑이의 눈썹을 닮았다고 그런 이름이 붙었단다.

“요놈을 찍어주지 않으면 안 되지. 내 발에 걸렸어. 안 찍으면 여태 여기 있은 보람이 없잖아. 이렇게 잘 핀 것 첨 봤어.”

신민교 교수(원광대)는 약초와 만나는 방식이 손자라도 만나는 식이다. 항상 약초의 인격을 의인화하여 마치 서로 눈이라도 맞추는 듯, 속을 서로 들여다보는 듯이 대화한다. 지난번에는 원지가 발에 걸렸다 하더니 이번에는 호미꽃이 또 발에 걸렸단다. 우리 같으면 절대로 발에 걸렸다는 표현이 나오지 않을 것이다. 약초와의 만남이 다른 사람과 달랐다. 수십 년을 산과 만나고, 춘하추동의 색다른 모습의 약초와 만나서 정감을 나누며 이런 교감이 자연스레 삶의 방식으로 굳어진 모양이다.

“이 놈은 자연 강장제야. 양지식물인데 잔디밭 제방 쪽에 많이 나거든. 꽃 피기 전의 뿌리는 지혈제고...”

신 교수는 보는 약초마다 그 성능에 따라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렇게 피여 줘서 감사하는 마음이 우러나와 있었다.
한켠에서는 최진만 노인이 백출을 캤다. 모양이 거친 봉오리가 힘있게 맺히고 이파리가 싱싱하고 뿌리가 든든했다.

일행은 길에서 멀지 않은 옅은 숲 속에 들어갔다. 복분자가 보였다. 빨갛고 작은 열매에 씨가 30여 개 달렸다. 열매에 씨가 많아서 정자생성에 도움이 되는 약초라고 했다.
부인병에 좋다는 취나물, 예쁘고 맛있는 멍석딸기, 산머루, 싸리꽃, 검정버섯(黑木耳)이 아기자기 다정한 이웃같이 어우러져 있다. 귀한 버섯이라고 검정버섯은 촬영 뒤에 여럿이 나누어 먹었다. 자연의 보너스였다. 쫄깃쫄깃 귀 맛 좋은 소리가 나고 풋풋한 향이 코와 혀에 오래도록 남아있었다.

숲 속으로 깊이 들어갔다. 누군가 비 온 뒤라서 뱀이 있을 거라고 하여 나는 신경이 곤두섰다. 하얀 버섯이 보였다. 청갈 버섯이다. 일행중의 누군가 이 버섯은 먹어도 된다고 했다.
벌레구멍이 숭숭 났다. 벌레는 독을 안단다. 그래서 독이 없는 버섯은 벌레가 맛을 본 것이란다. 벌레에게 이처럼 감사해본 적은 없다.

감수는 동그스름하고 무늬가 아련하고 입사귀가 두 개씩 예쁘게 피었다. 독이 있는 풀이라고 하면서, 이 약초는 간경화 복수 등에 쓰인다고 했다. 보통의 경우는 뿌리의 즙을 혀에 대기만 해도 복통이 심하다고 한다. 역시 자연은 선생님이다. 자연 앞에서 건방을 떨다가는 코피가 터지는 정도만이 아니고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나는 혼자 진심으로 머리를 끄덕였다.

은방울이라는 약초를 만났다. 머루알 같은 열매 여섯 알, 큰 잎사귀 두 개 옆에 외롭게 달린 열매, 귀한 약초라 암행어사가 머리에 달고 다닌다고 한다. 어찌 타고 날 때부터 귀천이 없다 하랴. 은방울은 타고 날 때부터 양반 약초인 셈이다.

박새는 백금에 도착해서 길섶에서 만났다. 검자주 빛의 꽃에 이파리가 여섯 개 달렸다. 누군가 참 지독하게 생겼다고 말했다. 생김생김과 같이 지독한 약초였다. 그러나 인간이 가장 절절하게 반성할 때 회생의 기회를 주는 약초가 아닐까. 간암에 쓰인다고 한다. 암에 걸린 사람 치고 자신의 삶을 반성하지 않는 사람은 없으니 말이다.

우엉도 만났다. 우방자라고 부른다. 자줏빛 꽃술이 장닭의 볏 같이 생겼다. 뿌리가 강장제라서 대력자(大力子)라고도 한다. 요리로도 맛있다고 한다. 뿌리를 깨끗이 잘라서 닦아 먹으면 쫀득쫀득하고 맛있단다. 열매가 익으면 가시가 땅땅하고 예리하여 가시열매라고도 부른다. 민간에서 암 예방약으로도 쓰이는데, 우방자에 무 잎, 표고버섯을 끓여서 먹는다고 한다.

두만강이 푸르게 흘렀다. 소용돌이가 치는 것을 보면 꽤 깊어 보인다. 대안은 북한 회령군 유선 노동자구이다. 헤엄을 잘 치는 사람은 금방 대안에 이를 것이다. 하지만 이곳은 엄연히 국경이다. 북한 쪽에는 군인초소가 있고 초소 앞에서 군인들이 웃통을 벗고 곡괭이를 휘두르고 있다.

일행은 묵묵히 북한 군인들을 바라보았다. 그 쪽에서도 한국인인줄을 알아보고 바라보고 있었다. 아무 말 하지 않았지만 가슴속에 저 두만강같이 흐르는 소원이 있다. 그것은 7천만의 소원, 하나의 나라, 바로 통일이리라. <계속>

협찬 : 옴니허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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