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사 김린애의 도서비평] 알고 있다는 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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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사 김린애의 도서비평] 알고 있다는 오만
  • 승인 2022.09.02 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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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린애

김린애

mjmedi@mjmedi.com


도서비평┃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분류를 한다는 것은 생존에 중요한 일이다. 곰처럼 생긴 동물이 있다면 접근하지 않아야 한다. 개처럼 생긴 동물에게 양파를 주면 안 된다. 가짓과 식물들은 조심해서 먹어야 한다. 솔라닌이라는 독이 포함되어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익숙하거나 남이 먹을 수 있는 것이라고 알려주는 것만 먹어도 풍족하고 안전하게 살 수 있게 되기까지-적어도 수렵 채취를 하지 않아도 먹고 살 수 있게 되기까지- 인류는 위험한 혼돈 속에 살면서 필사적으로 분류를 해왔고, 우리는 그 중 분류를 잘 해내던 이들의 후손이다.

룰루 밀러 지음, 정지인 옮김, 곰출판 펴냄

어떤 이들은 분류를 통해 창조주의 뜻을 살피고자 했다. 피조물을 위계에 따라 제대로 된 순서에 따라 “신성한 사다리”로 배치하면 창조주의 의도와, 인류가 진보할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또 어떤 이들은 생명의 나무-지금까지 지구에 살았던 모든 생물 종의 진화계통을 나타낸 계통수-의 형태를 밝혀 자연에 숨겨진 청사진을 알고자 했다.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 바로 이런 이였다.

별을 사랑하여 별자리를 잇고 들꽃을 사랑하여 동정해내는데 몰두하며 자라난 데이비드는 어류학이 ‘불완전하고 부정확하고 비교연구가 적다’고 보고 인생을 투신했다. 미국 전역과 한국, 사모아, 파나마, 멕시코, 스위스에 이르렀던 어류 수집 원정의 결과는 번개로 인한 화재로 한번, 샌프란시스코의 대지진으로 다시 한 번 파괴되었다. 깨어진 유리 파편에 덮인 물고기의 표본 주변에는 표본의 학명이 적힌 종이들이 나뒹굴었다. 지진의 여파 속에서 데이비드와 동료들은 쉼 없이 표본들을 부패로부터 지키며 동정해나갔다. 이름표를 직접 표본에 한 땀 한 땀 바느질해가며 많은 표본을 살려냈고 그의 표본은 현재까지도 수천 개가 남아있다. 데이비드 스타 조던은 불굴의 의지, 패배하지 않는 자라고 볼 수 있다.

작가인 룰루 밀러가 데이비드 스타 조던에게 몰두한 것은 자신에게 찾아온 혼돈 때문이었다. 어린 시절 아버지에게 인생의 의미를 물었을 때 작가의 아버지는 “넌 중요하지 않아.”, ”그러니 너 좋은 대로 살아”라는 대답을 들었다. 정작 아버지는 쾌락주의자였고 낙천주의자였지만 작가에게는 “나는 중요하지 않다”는 전반부만이 전해졌다. 우울과 혼란을 느껴 청소년기에는 약물과용으로 응급실행을 하고 성인이 되어서는 7년이나 사귀던 연인과 자기 잘못으로 헤어졌다. 이때를 작가는 “내 손으로 직접 내 인생을 난파시킨 뒤 그 잔해를 다시 이어 붙여보려 시도”했다고 회상한다. 데이비드 스타 조던은 혼돈에서 희망을 찾을 처방전을 발견한 것이 아닐까?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책에서, 망해버린 사명을 계속 밀고 나아가는 일을 정당화하는 그 정확한 문장을 찾아내는 것”이 작가에게 중요한 작업이 되었다.

하지만 그렇게 몰입한 데이비드는 불굴의 영웅이기만 한 이가 아니었다. 데이비드는 자신을 퇴진시키려던 이사장 제인 스탠퍼드를 독살했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 데이비드가 이사장 제인 스탠퍼드를 싫어한 까닭에는 그녀가 영매술이나 강신술 같은 데 관심을 가진 ‘헛된 희망을 품는 뇌, 상상의 비약에 취약한 뇌, 악의 도구가 될 수 있는 뇌’를 가졌기 때문도 있다. 자신이 판단하기에 어리석은 것은 배제해야 한다는 오만한 생각은 개인적인 범주에서 끝나지 않았다. 그는 우생학에 몰두하여 자선과 호의는 “부적합자 생존”을 초래한다, 인류의 쇠퇴를 예방하려면 “백치들”을 몰살해야 한다며 사회적으로 취약한 집단을 몰살시킬 것을 촉구하며 전국을 누비게 되었다. “그 어떤 불운이 자기 앞에 닥쳐와도 주저앉기를 거부하던 그 투지 넘치는 결연함. 하지만 그 정도로 자기 확신을 품으면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인가?” 개인적인 문제뿐 아니라 학술적인 업적도 현대에 와서는 그 근간이 흔들린다. 그가 평생을 몰두해온 어류라는 범주 그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육기어류인 폐어와 조기어류인 연어는 폐어와 사람보다도 큰 차이가 난다. 폐어와 연어를 함께 묶을 수 있을 만큼 큰 범주에는 개구리도, 소도, 인간도, 새도 들어간다. 데이비드가 불굴의 의지로 연구해온 “어류”는 존재하지 않는다. 우생학을 통해 숱한 사람에게 붙인 “부적합한 인간”이라는 분류도 존재하지 않는다.

작가는 물고기를 포기했다. “내가 보고 있는 그 모든 대상, 내가 한 번도 진정으로 의문을 가져 본적 없는 그 대상들의 질서가 완전히 틀렸다는 의식”을 가졌다. 작가는 기존에 자신이 세웠던 “짝”의 기준에서 벗어나는 사람과 사랑에 빠졌다. 혼돈을 받아들이면서도 좋은 것들이 기다리고 있다는 희망을 얻었다. 좋은 것들 역시 혼돈의 일부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김린애 / 상쾌한의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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