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사 안세영의 도서비평] 생명의 역사에서 패자는 승자
상태바
[한의사 안세영의 도서비평] 생명의 역사에서 패자는 승자
  • 승인 2022.08.19 05:2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안세영

안세영

ajhj@unitel.co.kr

1987.02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 졸업 1993. 02 경희대학교 대학원 한의학박사 1996.10-현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 교수 1997.03-2012.02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 신계내과학교실 주임교수 2017.03-2020.02 대한한방내과학회장 저서 남자 그리고 여자, 갑상선클리닉, 몸 한의학으로 다시 태어나다, 성학, 다한증의 이해와 치료 등


도서비평┃패자의 생명사

80년만이라는 기록적인 폭우가 중부지방을 강타했습니다. 마치 하늘에 구멍이 뚫린 듯 엄청나게 퍼붓는 빗줄기가 사흘 내내 이어지더군요. 다행스레 물난리는 겪지 않았기에, 잠시 파란 하늘이 나타났을 때 한강으로 물줄기가 이어지는 탄천 쪽을 둘러보는 여유를 부렸더니…. 맙소사! 뿌리 채 뽑힌 나무들이 여기저기 널부러져 있었습니다. 흙탕물을 뒤집어쓴 잡초들은 멀쩡한 반면, 평소 위풍당당했던 나무들은 둘레길을 가로막으며 맥없이 쓰러져 있더군요. 문득 최근 읽은 『패자의 생명사』에서 “풀이 나무보다 진화된 형태다”라는 구절이 떠올랐습니다.

『패자의 생명사』는 언젠가 『재밌어서 밤새 읽는 식물학 이야기』를 무척 재미있게 읽고서 관심작가 알림신청을 통해 구입한 책입니다. 청소년 추천 과학도서로 분류된 책이었지만, 초로(初老)에 이른 제게도 초중고 시절 아무 생각 없이 외우기 바빴던, 해서 지금은 머릿속에 거의 남아있지 않은 식물 관련 지식들을 새롭게 습득하는 느낌을 주더군요. 이번 신작은 『싸우는 식물』·『전략가, 잡초』를 잇는 저자의 생존 전략 3부작 중 최종결정판인데다가 “38억 년 생명의 역사에서 살아남은 것은 항상 패자였다!”라는 주장을 담았다니 서둘러 구독할 수밖에….

이나가키 히데히로 지음,
박유미 옮김, 더숲 출간

지은이는 시즈오카(靜岡)대학교 농학부 교수인 이나가키 히데히로, (稻垣榮洋; いながきひでひろ)입니다. 잡초생태학을 전공한 그는 이제껏 30여권의 저서를 펴냈다던데, 내용이 좀 중복될지라도 해박한 지식에 바탕으로 한 쉽고도 명확한 내용 전달이 워낙에 뛰어난 탓에 독자 입장에서는 늘 신선하게 느껴지더군요. 이번 책은 유구한 생명의 역사를 진화론적으로 더듬어가며, 약육강식이 판치는 자연계의 혹독한 생존경쟁에서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최종 승리자는 강자가 아니라 한때 패자로 인식되던 약자였다는 아이러니를 흥미진진하게 풀어냅니다.

책은 22억 년 전 우리의 조상 원핵생물이 경쟁보다 공생을 택하며 진핵생물로 진화하는 과정을 설명하는 1장으로부터 시작하여, 최종적으로 진화가 이끌어 낸 해답은 인간은 누구나 세상의 유일무이한 존재라고 역설하는 20장으로 끝납니다. 시대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지만, 크게 보면 연대기 순으로 지구 생물종의 역사를 개략적으로 톺아보는 방식이지요. 까마득한 옛날의 이야기인지라 실감이 잘 나지 않는 게 흠이지만, 유구한 생명의 진화과정을 이토록 명징하게, 그것도 생존경쟁에서 밀려난 패자의 관점에서 정리한 책은 흔치 않을 겁니다. 저는 바다에서 육지로 올라온 민물고기는 염분농도가 낮은 물이 몸속으로 들어오는 걸 막기 위해 비늘을 만들었고, 체내 염분농도 유지를 위해 신장을 발달시켜 담수를 체외로 배출시켰다는 내용이 제일 흥미롭더군요. 한의사인지라 꽁치·고등어의 얇은 껍질·가는 허리를 늘상 붕어·잉어의 두꺼운 비늘·뭉툭한 허리와 비교하며 태소음양(太少陰陽)을 따지곤 했는데, 완전히 다른 시선이잖아요? 더불어 외떡잎·쌍떡잎식물, 겉씨·속씨식물, 침엽수·활엽수, 초본·목본의 차이점 및 어류·양서류·파충류·조류·포유류의 계통발생을 다시금 곱씹어가며 정리해보는 것도 크나큰 즐거움이었습니다.

그나저나 이번 폭우로 피해를 입으신 분들이 하루 빨리 소중한 일상으로 복귀하시면 좋겠습니다.

 

안세영 /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

안세영
1987.02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 졸업 1993. 02 경희대학교 대학원 한의학박사 1996.10-현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 교수 1997.03-2012.02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 신계내과학교실 주임교수 2017.03-2020.02 대한한방내과학회장 저서 남자 그리고 여자, 갑상선클리닉, 몸 한의학으로 다시 태어나다, 성학, 다한증의 이해와 치료 등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