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의 주역] 풍수환 – 재난 발생시 리더의 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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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의 주역] 풍수환 – 재난 발생시 리더의 자세
  • 승인 2022.08.19 0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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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원

박혜원

mjmedi@mjmedi.com


박혜원장기한의원장
박혜원
장기한의원장

8월 8일 서울과 경기, 인천 지역에 폭우가 내렸다. 이미 인천 지역은 낮부터 도로가 물에 잠기고 시민들이 차를 두고 대피하는 일이 벌어졌고, 강풍으로 가로수가 뽑히는 사건도 있었다. 어린 학생들이 있던 태권도장에 물이 차 긴급 대피하는 일도 벌어졌다. 배수 관련 지원 요청이 속출해 시청과 구청 공무원들이 현장에서 쉴 새 없이 일을 처리하느라 뜬 눈으로 새운 밤이 지나갔다.

물은 그렇게 무섭다. 불이 쓸고 간 자리도 무섭지만, 불은 작은 단계에서도 경각심을 불러 일으킨다. 순식간에 타오르는 것이 아니면 누구나 초동 대응의 기본적인 원칙을 알고 있고, 최소한 ‘불이야!’ 하고 소리라도 질러 도움을 요청할 수 있다. 그러나 물은 다르다. 발목까지 찼다 싶을 때, 사람들은 대부분 그게 몇 분 사이에 무릎과 허리까지 차오를 것이라는 생각을 못 한다. ‘이러다 말겠지’ 하고 생각하는 것이다. ‘불이야!’ 하는 소리는 들어봤어도, ‘물이야!’ 하는 소리는 못 들어본 것이 이유다. 물은 그렇게 조용히 불어나 많은 것들을 쓸어내고 간다.

주역에는 ‘큰 내를 건넌다’는 표현이 많이 등장한다. 카이사르가 루비콘 강을 건너기 전에 심사숙고 했던 것처럼, 주역에서도 큰일을 도모하는 것을 그렇게 표현한다. 주역의 괘 중에서 환(渙)은 그 자체로 큰 내를 건넌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는 괘이다. 풍수환 괘의 괘사는 다음과 같다.

渙 亨 王假有廟 利涉大川 利 貞

彖曰 渙亨 剛 來而不窮 柔 得位乎外而上同 王假有廟 王乃在中也 利涉大川 乘木有功也

물 위에 바람이 분다. 어쩌면 이것은 홍수를 일으킨 태풍의 괘일 수도 있고, 순풍을 탄 범선의 쾌속질주를 나타낸 괘일 수도 있다. 그 차이를 가르는 것은 왕이다. 주어진 상황을 어떻게 통제하고 이용하느냐에 따라서 달라지는 것이다. 그러니 왕이 지극한 마음으로 해야 하며, 바르게 해야 이롭다.

初六 用拯 馬 壯 吉

가장 아래에 있는 초육은 양효의 자리에 있는 음효이며 자기 짝인 육사와 음양응도 되지 않는다. 그러니 제일 약한 존재다. 그야말로 구원의 대상이다. 가장 저지대의 반지하에 사는, 침수 위험 지역의 주민인 것이다. 이런 재난 상황이 닥친다면 위에서 빨리 강하게 손을 써야 한다. 그래야 목숨도 건지고 재산도 지킬 수 있다.

九二 渙 奔其机 悔亡

구이는 그래도 물이 차오르는 와중에도 올라갈 높은 곳이 있는 사람이다. 그러니 자기 몸쯤은 피신시킬 수 있다. 내괘인 수괘에서 유일한 양효이기도 하고 가운데에 있는 위치지만 양효로 음효의 자리에 있고 역시 자기 짝인 구오와 음양응이 되지 않는 상태다. 지금의 구이는 자기 몸 하나 보존하는 것도 버겁다. 그러니 책상으로 도망간 것은 得願也, 즉 원하는 것을 얻기는 했지만 길한 것도 형통한 것도 바른 것도 아니다. 그러나 잘못된 것은 아니니 반성할 필요는 없다. 구이는 그 자리에서 자기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기 때문이다.

六三 渙其躬 无悔

육삼도 양효의 자리에 있는 음효이다. 그러나 유일하게 상구와 음양응이 되는 자리에 있다. 내괘에서 외괘로 넘어가는 자리에 있는 육삼은 과감히 이 상황을 탈출하기로 결심한다. 보통 다른 괘에서는 이런 위치에 있는 육삼은 흉하다고 보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환괘의 상황은 다르다. 그의 빠른 결정이 그의 목숨도 구함과 동시에 육삼은 내괘의 상황을 외괘에 전달할 수 있는 전령이 된다. 志在外也라 한 것은 이미 내괘에서는 자체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선을 넘어섰기 때문이며, 그렇기 때문에 육삼이 외괘로 넘어가는 것이 허용된다.

六四 渙其群 元吉 渙有丘 匪夷所思

육사는 물난리를 벗어난 높은 지대에 있다. 그 육사는 내괘의 이재민들을 모으고 돌보는 역할을 하고 있다. 육사가 만약 자기만 살겠다며 저지대의 이재민들을 오지 못하게 막거나, 그 사람들이 각자 흩어져 우왕좌왕하게 놔둔다면 재난의 피해는 더 커진다. 그러나 육사는 그들을 대피시키고 모아 질서를 유지시킨다. 여러 사람의 목숨을 구한 것이므로 크게 길하지만 이것은 육사가 마땅히 생각해서 행동했어야 하는 일이다. 육사는 왕의 자리에 있는 구오의 측근이며 실무자다. 그러므로 그의 역할은 재난에 대처하고 다음을 대비하는 것이다. 그 역할을 잘 해내는 경우에 길하고 크게 빛난다.

九五 渙汗其大號 渙王居 无咎

구오는 자기 자리에 있는 양효다. 이 재난 상황의 컨트롤 타워여야 하며, 초육을 구원할 말을 보내도록 육사를 쓰고 가장 높은 곳에서 내려다볼 수 있는 상구에게 피해 상황을 보고받고 인명 피해가 심각해지지 않도록 빠른 결정을 내려야 하는 사람이다. 크게 부르짖음을 땀나듯이 한다는 것은 그 누구 하나 그 목소리가 닿지 않아 해를 입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육사와 상구가 구오를 보좌하여 한치의 어긋남 없이 움직일 수 있도록 해뒀어야 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이 상황을 주재해야 하는 본인의 의무와 위치를 망각해서는 안 된다. 재난 상황에 자기 몸 먼저 대피하는 것은 힘도 의무도 없는 초육이나 구이가 할 일이다. 구오는 그래서는 안 된다. 재난은 사람의 뜻과는 아예 상관없이 벌어진다. 그러나 그 대처와 수습은 모두 사람이 하는 일이다. 그러니 구오가 제 역할을 잘 해야만 겨우 허물이라도 벗을 수 있다.

上九 渙其血去 逖出 无咎

상구는 육삼과 음양응을 이루는 제 짝이고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는 양효이다. 그렇다면 상구가 해야 할 일은 자기 짝과 힘을 합쳐 구오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다. 육삼은 물난리에서 벗어나 상구에게 왔고 상구는 그 사실을 구오에게 전해야 한다. 그러나 여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상황이 일단락되고 난 다음의 수습도 해야 하는 것이다. 상전에는 渙其血은 遠害也라 하였다. 상구는 자기 혼자 해로운 것으로부터 멀찍이 떨어져 강건너 불구경이나 하고 있어도 되는 자리가 아니다. 높은 자리에 있다는 것은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챙길 의무가 있다는 뜻이며 그들을 위험한 곳에서 피신시키고 후속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그가 할 일이라는 뜻이다. 그것조차 다 해야 겨우 허물이 없다.

집중호우를 결정하는 기준은 3시간 안에 60mm 이상의 비가 내릴 때다. 2022년 8월 8일의 비는 지역에 따라 100mm를 훌쩍 넘긴 곳이 많았고, 200~300mm를 기록한 곳도 있었다. 그 결과 서울과 경기, 인천에서만 13명이 사망하고 실종됐다. 시민들은 실시간으로 물에 잠긴 도로의 사진을 SNS에 게재했고 피해 상황을 알렸다. 도로에 물이 차자 맨손으로 하수도 뚜껑을 열어 그 안의 오물과 쓰레기를 치워내 배수를 시킨 시민 영웅의 사진도 등장했다. 이미 8일 오전부터 강풍과 비 피해에 80여건 이상의 출동 요청을 받은 인천의 공무원들도 새벽까지 집에 가지 못한 채로 수습에 힘썼다. 우리의 초육과 구이와 육삼은 제 자리에서 최선을 다 했다. 시민의 안전을 걱정하는 일부의 육사들도 밤새 관할 지역 공무원들과 함께 했다.

그러나 우리의 구오는 어디에 있었나. 가장 큰 목소리로 부르짖어 위험을 알리고 이 모든 것들을 지시하고 결정하고 감시했어야 했던 구오는 내내 부재 상태였다. 이미 침수로 큰 피해를 입은 적이 있던 서울과 인천의 상황을 계속 인식하고 대책을 마련했어야 했던 상구들은 관련 예산을 크게 삭감했다. 피해를 미처 수습하기도 전에 다시 비가 오고 있다. 큰물이 고여 있는 곳 위에 바람이 분다. 사람들의 마음이 다른 곳으로 건너가게 하는 거센 바람이. 이 바람은 대한민국이라는 배를 어디로 밀어낼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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