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에서 인류학하기](4) 자발성 치킨 한정 식욕 감퇴증
상태바
[시골에서 인류학하기](4) 자발성 치킨 한정 식욕 감퇴증
  • 승인 2022.08.12 05:5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신유정

신유정

mjmedi@mjmedi.com


구례에 온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양계장을 하시는 이웃 할머니께서 아이 동무 삼으라며 병아리 세 마리를 선물해 주셨다. 병아리라고는 했지만 삐약삐약 조그맣고 귀여운 노랑이들이 아니라 너끈히 중닭은 되는 짐승들이었다. 각각 초복이, 중복이, 말복이라는 이름을 갖게 된 이 아이들은 분명히 닭인데도 하는 짓이 희한했다. 일단 마당에 지렁이가 다녀도 먹을 생각은 하지 않고 멀뚱하게 구경만 했다. 하루 중 대부분의 시간은 그냥 앉아 지냈고, 문이 열려있어도 나가 돌아다닐 생각조차 없었다. 대신 먹는 일에는 열심이었다. 하지만 양계장 할머니가 갖다 두신 사료에만 열정이 넘쳤다. 온종일 쪼그리고 앉아 사료를 먹고 똥을 싸는 것 외에는 도통 다른 것에 관심이 없어 보였다. 한 마리당 A4 한 장 정도의 공간만이 허용된다고 하는 닭장에서의 삶이 그랬을 것이다. 그러다 보니 과연 양계장 병아리답게 먹는 족족 투실투실하게 살만 쪘다.

◇초복, 중복, 말복이의 생전 모습. 사진 – 신유정
◇초복, 중복, 말복이의 생전 모습. 사진 – 신유정

얼마 후 견딜 수 없는 닭똥 냄새 때문에 결국 지인에게 입양 보내며 이별했지만, 그 후에도 ‘일인일닭’에는 전혀 문제없었다. 그러니까 최근 갑자기 나에게 발생한 “치킨 한정 식욕 감퇴증”이 저 삼복이때문은 아닌 셈이다. 짐작 가는 대목은 있다. 얼마 전 직장을 옮긴 후 출퇴근길 도로에서 거의 매일같이 보게 되는 광경이 내 식욕을 떨어뜨리는 듯하다. 당장 며칠 전에도 닭장차에서 떨어진 닭이 아직 숨 붙어 있는 상태로 도로에 들러붙어 있는 모습을 봤는데, 주변 지역에 양계농가가 많다 보니 이런 일이 특별할 것도 없다.

사실 아침마다 출근길에 닭장차를 뒤따라가는 건 썩 유쾌한 경험이 아니다. 영문도 모른 채 실려서 닭장 여기저기에 몸을 기대고 있는 닭들이 꼭 우리 삼복이들과 닮아서, 닭들과 눈이 마주칠까봐 마음이 불편해진다. 게다가 닭장차는 대부분 더럽고 낡은 데다 잠금장치가 허술해서 종종 닭장 속 닭들이 도로에 떨어지곤 한다. 몸의 일부가 차바퀴에 깔린 상태로 단말마의 고통에 몸부림치는 닭들을 보면서 운전해야 하는 것은 솔직히 끔찍한 일이다. 운 좋게 갓길에 떨어진 후 다친 곳도 없어 보이는데 그냥 그대로 돌부처처럼 앉아있는 닭들을 보기도 한다. 십중팔구 그 자세 그대로 2-3일 후에는 죽어있는데, 아마 예전 우리 닭들처럼 오히려 사방이 열려있는 곳에서 대체 뭘 해야할지 몰라 넋이 나갔을 것이라 짐작해본다. 때로는 다행히 닭들을 직접 보지 않고 닭털과 낭자한 핏자국만 발견할 때도 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알지만, 그래도 도로에 나뒹구는 죽은 닭, 괴로워하는 닭, 공황 상태의 닭들을 내 눈으로 보는 것보다는 맘이 편하다.

도시의 소비자들은 굳이 지금 내가 앓고 있는 병에 걸릴 일은 없을 것 같다. 마트에 가면 냉장 코너에 다듬어진 생닭들이 부위별로, 브랜드별로 잘 전시되어 있다. 푸드코트에는 튀긴 닭, 냉동 코너에는 즉석요리 형태의 닭들이 각각 진열되어 있다. HACCP, 무항생제 혹은 동물복지 인증 등을 꼼꼼하게 따져 카트에 담으면 끝. 닭장차는 어떻게 생겼는지, 거기에 실려 있는 닭들은 어떤 모습인지, 도로에서 닭장차를 따라가면 어떤 일을 겪게 되는지, 닭똥 냄새가 얼마나 고약한지 그런 일들은 사실 직접 겪어보지 않으면 좀처럼 상상하기 힘들다. 식품매장에서의 ‘치킨’과 양계장에서의 닭, 도계를 위해 이동하는 닭은 전혀 다른 존재이기 때문이다.

병아리가 치킨이 되는 과정은 정은정의 <대한민국치킨전>이란 책에 좀 더 자세히 실려있다. 놀라운 대목은, 농가에서 닭을 키워 도계장으로 보내면 받는 돈이 마리당 400원(2014년 기준)이란 사실이다. 이제 농민들은 닭을 키워 시장에서 파는 사람들이 아니라, 대기업 상품 – 치킨 - 의 원재료 일부를 납품하는 하청(혹은 용역, 지입) 업자가 되었다. 마리당 400원은 사육수수료로 지급된다. 물론 양계농가 역시, 하청이나 지입의 뻔한 운명을 피해갈 수는 없다. 조류독감과 같은 재난 상황에서 리스크를 감당하는 것도, 낡은 축사를 신식으로 바꾸는 비용도 오롯이 농가의 몫이다. 지난주에 아이 친구들에게 시켜준 **치킨 허니콤보는 2만 원이 넘었는데 생각할수록 치킨의 가격책정은 신기할 따름이다.

사족이지만, 병아리가 치킨용 생닭이 되기 위해 차에 실려 보내기까지의 기간은 겨우 35일이라고 한다. 초복, 중복, 말복이는 우리 집에서 두 달가량 살았고 입양 간 집에서 물난리 통에 자연사했다. 그나마 아이들이 양계장 동기들과 달리 장수했다는 사실은 괴로운 출근길 도로 위에서 큰 위로가 된다. 

 

신유정 / 한의사, 인류학박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