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사 박히준의 도서비평] 달리기를 말할 때 우리가 하고 싶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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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사 박히준의 도서비평] 달리기를 말할 때 우리가 하고 싶은 이야기
  • 승인 2022.07.15 0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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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히준

박히준

mjmedi@mjmedi.com


도서비평┃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나는 런린이(러닝+어린이)다. 1분 달리기를 시작으로 이제 겨우 10km 내외를 몇 번 달려본 적 있는, 달리기를 시작한 지 이제 겨우 1년을 막 넘긴 초보 중에 왕초보다. 잘하지 못하니 소문 없이 조용히 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달리기의 재미를 감추기에는 역부족이었을까? 이번 스승의 날에 우리 연구실원들에게 아주 큰 선물을 받게 되었다. 자발적으로 “박히준과 아이들”이라는 러닝크루(running crew)를 만들어 나를 초대해 준 것이다. 그동안 받은 선물 중 평생 잊을 수 없는, 또한 영광스러운 것으로 기억될 만한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최근에는 화요일 저녁마다 시간이 되는 크루들이 모여, 짧은 시간이지만 달리는 모임이 생겼다. 물론 달리기 후에 보상으로 먹는 저녁이 더 중요하지만 말이다. 가끔 마음이 동하면 치맥으로 마무리하기도 한다. 실제 사용한 칼로리 대비 손해인 것도 같지만, 어쨌든 정한 목표를 완주하고 난 뒤 먹는 저녁은 0칼로리 아니겠는가? 그러나 사실 달리기에 대한 더 중요한 보상은, 다른 누구도 아닌 나 스스로 몸을 움직여 이루어낸 성취감이리라.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임홍빈 옮김, 문학사상 출간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임홍빈 옮김, 문학사상 출간

늦은 나이에 달리기를 시작하려고 하니, 달리기 자세부터 방법까지 막막하기만 했다. 부상에 대한 두려움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기왕 시작한 것이니, 아쉬운 대로 서점에서 “달리기”라는 키워드로 검색되는 책을 닥치는 대로 주문해서 읽기 시작했다. 물론 몸으로 배워야 할 달리기를 글로 배우려 하다니 어리석기 그지없는 일이지만 어쩌겠는가, 몸보다 글이 쉬운 사람인 것을. 그러나, 책을 한 권 두 권 읽다 보니 달리기 방법보다 더 큰 화두가 눈에 들어왔다. “사람들은 힘든 달리기를 왜 하려고 하는가?”

이러한 질문에 대해, 자신의 일과 삶 관점에서 아주 담담하게, 그러나 아주 명쾌하게 적어 보여주는 책이 있어 소개한다. 바로 세계적인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 선생의 “내가 달리기를 말할 때 하고 싶은 이야기 (What I talk about when I talk about running)”이다. 이 책은 2007년 출간되어, 이미 러너(runner)들 사이에서는 널리 알려진 책인데, 처음 접한 나에게는 올해 잊히지 않는 책 중에 하나로 꼽을 만하다.

하루키 선생은 동양인 작가로서 40년이 넘도록 40여개국이 넘는 나라에 번역된 소설과 수필을 쓴 작가로, 이분처럼 많은 국제적인 독자를 갖고 있는 작가는 흔치 않다. 물론 긴 과정에서 많은 고비가 있었겠지만, 어떻게 그리 긴 시간 동안 꾸준히 글을 써올 수 있었던 비결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30세에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로 문단에 등단한 하루키 선생은, 3번째 책을 준비하며 식당을 접고, 본격적으로 소설을 쓰기로 결심했다. 장편소설은 매우 길고 힘든 장거리 여정이기에, 글쓰기 위한 체력을 위해 달리기를 시작했다고 한다. 매일 아침 달리는 일은 일종의 매일 글쓰기를 위한 페이스메이커가 되었다. 정말 놀라운 것은 70세가 넘은 그는 지금도 계속 달리기를 하고 또 소설을 쓰고 있다고 한다.

그렇게 오랫동안 수많은 유명 소설을 써온 작가가 과연 “달리기를 말할 때 하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이었을까? 달리기라는 주제를 통해 이야기하지만, 저자는 달리면 건강해지니 함께 달리자라는 얘기를 하기 위한 책이 아님을 전제한다. “어디까지나 나라는 인간에게 있어 계속 달린다는 것이 어떤 의미였을까”를 생각하며 글을 썼다고 했다. “달리기 이야기를 통해 어떤 경위로” 저자가 “소설을 쓰기 시작해서, 어떤 상태로 살아 왔는가”를 담담히 얘기한다. 이 책은 성공한 작가가 자신의 업적을 드러내고자 하는 의도도, 화려함도 없다. 달리기의 유용성에 대한 예찬도 없다. 달리기라는 행위를 중심으로 소설가인 저자가 어떻게 꾸준히 좋은 작품을 쓰기 위해 하루하루를 살아왔는지, 무엇인가 의미 있는 일을 이루는 과정이 얼마나 오랜 기간의 꾸준함과 치열함의 결과인지를 그저 옆에서 바라보듯 느낄 수 있다. 소설 쓰기는 육체노동과 다르지 않기에, “선택사항으로서의 고통”인 달리기를 통해 인생의 페이스를 유지했다고 했다. 저자는 “(...마라톤 단련은 전혀 피로감을 느끼지 않고 매일매일 집필 생활을 계속할 수 있는 힘을 지탱해 주었을 뿐 아니라) 나 자신에 대해 말한다면, 나는 소설 쓰기의 많은 것을 매일 아침 이 길 위를 달리면서 배웠다.”라고 말한다. 소설 쓰기와 마라톤 단련이 모두 하루키 삶의 중심에 있었다.

작가는 자신의 묘비명에 “작가 겸 러너”로서 “적고 싶다며, ”최후까지 걷지는 않았다.”고 남기고 싶다고 했다. 달리기가 좋은 또 다른 이유는 남과 비교할 필요가 없다는 점이다. 내가 선수가 아닌 이상 경쟁도 필요 없다. 그저 어제보다 좀 더 나은 나를 위한 목표를 스스로 정하고, 속도가 느리더라도 내 페이스대로 달리면 그뿐이다. “최후까지 걷지는 않았다.”라는 작가의 말은 절대로 걷지 말아야 한다는 금지의 의미라기 보다, 적어도 포기하지 않으려고 애쓰는 작가의 모습이 눈에 그려질 뿐이다.

왜 사람들은 계속 달리는가? 아마도 달리는 동안 맞닥뜨리게 되는 자신의 나약함과 한계를 극복하고자 노력하는 과정에서 얻게 되는 경험과, 목표를 결국 이루어냈을 때의 성취감 때문이 아닐까? 이러한 경험은 결국 각자의 삶으로 돌아와 때때로 만나게 되는 힘듦을 버티며 흔들리더라도 결국은 다시 돌아올 수 있도록 힘을 주는 페이스메이커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함께 연구하고 달리는 젊은 러닝크루들 중 누군가 인생의 목표를 위해 어떤 삶의 태도가 필요한지 묻는다면, 나의 부족한 말솜씨로 미처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하루키 선생의 “달리기를 말할 때 하고 싶은 이야기”를 통해 대신 전하고 싶다. 다른 건 몰라도 적어도 이 책을 읽으면 달리고 싶은 마음이 꿈틀거리지 않을까.

 

박히준 / 경희대 침구경락융합연구센터 소장, 경희대 한의대 교수, 장-뇌축기반 맞춤형 침치료기전 연구실 P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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