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변 약초 기행] 8. 무도 머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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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변 약초 기행] 8. 무도 머리가 있다
  • 승인 2004.12.03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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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선

이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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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 惠 善
작가·연변작가협회 주임

7월 26일은 날씨가 화창하게 개였다. 땅은 비에 젖어 축축한데 하늘은 푸르고 햇빛이 투명했다. 일행의 표정이 무척 밝다. 이제 여름은 8월 중순까지 이어진다. 연변에서는 가장 좋은 여름 날씨다.

연변은 봄, 여름, 가을이 짧고 겨울이 길다. 짧은 여름에도 비가 많아서 무더운 날씨는 얼마 되지 않는다. 몸짱을 자랑하고 싶은 여성들에게는 참으로 유감스러운 기후이다. 금방 팔을 드러낸 적삼을 입었는데 어느새 8월 중순 마늘장아찌를 절이는 냄새가 가을을 알릴 때면 무척 서운하다. 지구의 온도가 높아지면서 지금은 그래도 여름이 많이 길어진 편이다.

차는 용정을 지나서 대성에서 백금방향으로 굽어들었다. 대신에 이르러 일행은 차를 멈추고 저수지 쪽을 바라보았다. 저수지의 물결이 은어의 등처럼 예리한 햇빛을 반사하여 눈이 시고 부셨다. 국도로부터 경사지게 저수지까지 뻗은 풀밭에는 분홍색의 달구지 꽃, 보랏빛의 갈퀴 덩쿨, 하얀 개망초, 노란 달맞이꽃이 가득 피었다. 그야말로 가지각색 약초가 뽐내는 풍경이다.

“이 꽃은 밤이면 피고 해가 나오면 오므리는 꽃이어서 달맞이 꽃이라고 하는 겁니다.”
달맞이꽃에 렌즈를 들이대며 정종길 교수(동신대)가 설명했다.
달맞이꽃은 꽃이 노랗고 작고 잎사귀도 모양이 특별하지 않지만 여느 풀과는 다르게 자기 주장이 분명하다. 일편단심 한 님만 모시는 충성의 꽃이니 말이다. 고지식한 성미는 태양만 에워싸고 도는 해바라기와 비슷하다.

자연에 있어 그러한 의지는 어떤 의미가 되는 것일까, 라고 식물학에 문외한인 나는 식물의 의지를 인간의 사고방식으로 생각해보았다. 생각으로 살아가는 인간은 한 순간에도 변화가 심하지만, 자연과 본능의 화합에 충성하며 사는 식물은 인간의 요상한 생각이야말로 위험한 것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인간의 생존의식과 지혜는 끝없이 문명을 만들고, 문명은 우주에서의 인간의 자리를 빠른 속도로 좁혀가고, 인간이 만들어낸 쓰레기의 자리를 빠른 속도로 늘여주고 있다. 이 이율배반의 악성순환에서 인간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인간세상에서 답이 없는 이 문제를 저 달맞이꽃은 간단하게 풀어나갈지도 모른다.

이 때 신민교 교수(원광대)가 달맞이꽃(월견초)에 대해 설명했다.
“일년생이면 뿌리가 있고 이듬해에는 없어요. 종자번식을 위해 뿌리를 키운 거지만, 이듬해에는 그 뿌리가 썩어버리는 거요.”
익모초도 그렇고, 백지, 당귀도 그렇단다. 이듬해에 꽃이 피면 곧 죽어버리는 것은 종자를 남기는 사명을 완수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즉 약초의 인생과 인격으로는 하나의 완성이라는 것이다.

“무도 머리가 있는 거요!”
신 교수의 말씀에 모두들 폭소를 터뜨렸다. 무는 당해 10월에 심어야 무가 나오고 이듬해에 심으면 쫑대(장다리)만 나온단다. 즉 씨만 난다는 것이다.
“시간 없어, 무는 그렇게 생각하는 거요. 너무 급해서 씨만 만든 거요. 이것이 번식 본능인 거지. 무를 우습게 보지 말아요. 무도 머리가 있어요.”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리면서도 그 깊은 뜻에 대해 찬찬히 음미했다.

그렇게 보면 정말로 달맞이꽃이며 무며 백지, 당귀 등 자연의 모든 것이 머리가 있는 것이다. 자연이 춘하추동을 되풀이하는 것을 절대로 무심하다고 볼 수는 없는 것이다.
신 교수는 종자번식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인간도 마찬가지인데 지금 암이 많은 것도 자연을 어기기 때문이라고 했다. 제왕절개는 아기를 꺼내는 것이지 아이를 낳은 것은 아니란다.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자연분만은 자연의 순리에 의한 하나의 완성이지만, 인공분만은 인간의 의지의 완성일 뿐 자연의 완성은 아니다. 아기는 나왔지만 인간의 번식과정에 논리적으로 전개되었던 생리의 프로그램은 완성이 되지 못한 채 강제로 닫히게 된 것이다.

인간은 점점 더 향수욕에 젖어 번식본능의 자연을 따르려고 하지 않는다. 나부터도 그렇지만 아이를 하나만 낳는 것은 인간의 자연을 어기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 세상에는 지금 점점 더 암이 기승을 부리고 소염제의 발전을 뛰어넘는 빠른 속도로 사스를 망라한 이름 모를 병독이 쏟아져 나온다. 무도 머리가 있는데 하물며 무의 자궁인 자연임에야. 자연의 순리를 어기는 인간이 자연의 벌을 어찌 피할 수가 있을까.

신 교수는, 아기에게 모유를 먹이지 않기 때문에 지금의 아이들이 다소곳하지 않고 쉽게 뜬다는 것, 그것은 젖을 먹이는 엄마는 아기의 머리를 어루만지며 인간의 사랑을 먹이기 때문에 아이들이 머리를 수그리지만, 우유를 먹는 아이는 자연스레 뿔로 들이박는 소를 닮게 된다는 것이다. 그 말에 일행 모두가 웃었지만, 참으로 심사숙고할만한 부분이었다. 모유를 먹이느냐 우유를 먹이느냐에 따라 인성이 변할 수도 있음을 엄마들을 포함한 모든 사람들이 알아야 할 것 같다. <계속>

협찬 : 옴니허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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