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좁은 진료실에 있는 한의사에게 독서란 사고 지평 넓혀주는 습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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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 진료실에 있는 한의사에게 독서란 사고 지평 넓혀주는 습관”
  • 승인 2022.06.09 0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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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숙현 기자

박숙현 기자

sh8789@mjmedi.com


책, 사람을 잇다(20) 김나희 한의사

중학생 시절 읽은 책으로 환경 관심 가져…스위스 생활하며 비건 정체성 확립
인생의 책, 모유수유 A to Z-노화의 종말-어떻게 죽을 것인가?-바람계곡의 나우시카

[민족의학신문=박숙현 기자] 김나희 한의사를 만난 곳은 경기도 광명시의 광명도서관이었다. 한의사 특성상 대다수가 한의원에서 진료를 하는 개원의였기 때문에 그동안 ‘책, 사람을 잇다’ 인터뷰를 하는 다독가 역시 한의원 진료실에서 만나는 경우가 많았는데, 김나희 원장은 “책의 느낌을 살려보자”며 도서관을 만남 장소로 제안했다.

멀리서 자전거를 타고 온 그는 에코백에 책을 주섬주섬 들고 와 반겨주었다. 김나희 한의사는 대한모유수유한의학회 교육이사로, 지난 2018년 본지에 모유수유 관련 칼럼을 기고한 바 있다. 이외에도 동물성 식품을 소비하지 않는 채식주의자 비건(vegan)으로 활동하며, 환경과 인권문제 등에도 관심을 보였다. 또한 얼마 전까지는 스위스 제네바에서 외국인학생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쳤다고 한다. 한국으로 돌아온 현재는 봉직의로 지내면서 앞으로의 방향을 모색하는 중이라고 했다.

김나희 한의사가 환경에 관심을 가지게 되며 비건을 결심하게 되기까지의 시작에는 특이한 책이 한 권 있었다. 고도 벤의 ‘노스트라다무스 최후의 대예언’으로, 1999년에 지구가 멸망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고 한다.

김나희 원장은 “부끄럽지만 그 때 당시에는 이 책을 읽고 나름 심각하게 고민했었다. 책에는 여러 가지 지구멸망이론이 있는데, 화산폭발이나 다른 이야기는 허무맹랑해보였다. 그런데 환경오염으로 인한 지구멸망이론은 이론적으로 말이 되더라”며 “그래서 지구가 멸망하기 전에 과학자가 되어서 환경오염을 막아야겠다는 생각에 과학고등학교를 진학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이어 “그런 과정에서 환경운동에 점차 참여하게 되었는데, 그래도 초반에는 채식주의에 관심이 없었다”며 “채식주의자인 친구와 함께 어울리다가 영향을 받은 것 같다. 환경오염 탓에 저탄소 정책을 많이 시행하고 있는데, 이러한 탄소의 상당수는 육류 생산에서 나온다. 뿐만 아니라 영양 측면에서도 채소를 택하는 편이 낫다는 연구결과가 많고, 무엇보다 포유류와 인간이 크게 다를 것이 없는데 단지 지능이 높다는 이유만으로 동물을 폭력적으로 대한다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한국에서는 회식이나 여러 가지 이유로 채식을 하기 힘들었는데 스위스에서 채식친화적인 환경을 접하면서 비건으로 정체성을 공고히 하게 되었다. 지키기 힘들 때도 있지만 더 이상 고기는 먹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이에 김나희 한의사에게 채식주의 관련 책을 추천해달라고 이야기하자 그는 배스킨라빈스31의 상속자였던 존 로빈스의 ‘육식혁명’, 조너선 사프란 포어의 ‘동물을 먹는다는 것에 대하여’, 향기‧은영‧섬나리의 ‘훔친 돼지만이 살아남았다’ 등을 소개해주기도 했다.

그는 임상의가 대부분인 한의사가 책을 읽는 습관을 가지는 것이 정신적으로도 이로울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는 “매일 좁은 진료실에만 있다 보면 우울할 때가 있는데, 예를 들어 빅뱅을 다룬 책을 읽다보면 내가 겪는 어려움은 드넓은 우주의 관점에서 볼 때 작은 것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고 사고의 지평이 넓어지는 것을 느끼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평소 “내가 가지고 있던 편견을 깨뜨리고 새로운 지평을 열게 해주는 책을 좋아한다”고 전했다.

그러다보니 장르적으로는 환경 관련 책 뿐 아니라, 소설도 좋아하고, 과학책과 SF소설을 즐기며, 만화도 자주 읽었다고 한다. 또 최근에는 여러 가지 언어를 사용하는 스위스에서 한국어 교사로 지내면서 언어학에도 관심이 생겼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보니 그의 독특한 메모습관도 이해가 갔다.

김나희 한의사는 “평소에 책을 지저분하게 보는 편이다. 책을 읽으면서 공감되는 부분에 밑줄도 긋거나 감상을 적기도 하고, 이를 바탕으로 서평도 쓰려고 노력한다”며 “번역이 잘못된 부분은 옆에 정정해서 적어둔다. 가끔 원문이 궁금할 때는 원문을 찾아보는 경우도 있다. 한 번은 테드 창의 ‘당신 인생의 이야기’에서 번역 오류를 찾아서 출판사에 알린 적도 있다”고 말했다.

이토록 다양한 이야기를 전해준 김나희 한의사의 인생의 책은 무엇일까?

그는 레베카 마넬‧패트리샤 마틴스‧마샤 워커의 ‘모유수유 A to Z’, 데이비드 싱클레어‧매슈 러플랜트의 ‘노화의 종말’, 아툴 가완디의 ‘어떻게 죽을 것인가?’, 미야자키 하야오의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등의 책을 언급했다.

‘모유수유 A to Z’는 대한모유수유한의학회에서 번역을 맡은 책으로, 의료인을 위한 모유수유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김나희 한의사는 “개인적으로 한의대를 간 것 만큼 잘 했다고 생각하는 일이 국제수유상담가(IBCLC) 자격증을 딴 일이다. 모유수유한의학회에서 열정 넘치는 사람들을 많이 만났고, 많은 것을 배웠다”며 이 책을 추천했다.

또한 ‘노화의 종말’에 대해서는 “노화가 어쩌면 치료의 대상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한의학에 관한 책은 아니지만 한의사들이 꼭 읽어보면 좋은 책이라고 생각한다. 한약과 침이 어떤 기전으로 치료효과를 내는지 설명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전했다.

 

김나희 한의사는 아툴 가완디의 ‘어떻게 죽을 것인가’ 역시 강력하게 추천했다. 그는 “죽음이라는 상황에 맞닥드린 환자에게 단순히 생명을 연명하게 해주는 치료는 누구도 원치 않는다. 이를 방지하려면 상황에 닥쳐서 생각하기보다는 미리 고민해봐야 한다. 한의사의 입장에서 죽음에 이른 사람에게 어떻게 도움을 줄 수 있을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 영화로 유명한 만화책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는 “총 7권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애니메이션은 약 2권까지의 내용에서 끝이 난다. 꼭 전 권을 보았으면 좋겠다. 거장이란 이런 사람이라는 걸 느낀 작품이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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