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의서산책/ 1011> - 『病占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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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의서산책/ 1011> - 『病占冊』    
  • 승인 2022.05.21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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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우

안상우

answer@kiom.re.kr

한국한의학연구원에서 동의보감사업단 단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동의보감사업단에서는 동의보감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하고 이를 홍보하기 위한 사업을 진행해왔다. 최근기고: 고의서산책


暗雲에 가린 帝國의 불치병을 점치다

 

  전근대시기 난치질환이나 돌림병의 예후를 점쳐보려 했던 특이한 의료민속이 담긴 책 하나를 들여다보기로 하자. 비교적 작은 크기의 얇은 책자인데, 묵서로 필사된 선장본이다. 표지에는 ‘병점책’이란 책 제목과 함께 ‘乙巳三月初二日 成冊’이란 명문이 적혀있다. 또 이제면에는 ‘乙巳二月初五日 抄’라고 적은 필사기가 기재되어 있어, 이 책이 대략 1905년경에 작성된 것으로 보인다.

 ◇ 『병점책』
 ◇ 『병점책』

 이 시기는 한일합병에 앞서 을사조약으로 외교와 국방권이 박탈되어 허울뿐인 대한제국의 국운이 기울어가는 시점인지라 짙은 암운이 드리워지는 무렵이다. 1905년 일본이 한국의 외교권을 빼앗기 위해 한일협상이 이루어졌는데, 을사5조약이라고 부르며, 위계에 의해 강압적으로 체결되었다 해서 乙巳勒約이라고도 불린다.

  당시 정황을 알기위해 을사조약이 이뤄지는 과정을 약술하면 다음과 같다. 일제는 러일전쟁을 승리로 이끌어 1904년 한일의정서를 강제로 체결하고, 곧이어 한일외국인고문용빙에 관한 한일협약을 체결, 재정과 외교 분야 실권을 박탈하여 국정을 좌지우지하게 되었다. 뒤이은 이 조약에 찬동했던 박제순, 이지용, 이근택, 이완용, 권중현 5명의 대신들을 이른바 ‘乙巳五賊’이라고 부른다.

  이 조약에 의하면 일본정부가 한국의 대외관계 및 사무를 監理하고 지휘하며, 이에 따라 한국정부는 일본정부의 중개를 거치지 않고는 국제적 성질을 가진 어떤 조약이나 약속도 하지 않기로 서로 약정한다는 내용이 주요 골자를 이루고 있어 국제적으로 사실상 주권을 잃어버린 유명무실한 나라가 되고 말았던 것이다.

  이에 따라 대한제국의 외국 주재 공관들이 폐쇄되었고 영국·미국·청국·독일·벨기에의 주한공사들이 자국으로 돌아갔다. 이듬해 일제통감부가 설치되고, 조약 체결을 주도한 이토 히로부미가 초대통감으로 부임하였다. 통감부는 외교 뿐 만 아니라 내정까지 한국정부에 직접 명령해 집행하도록 하는 권한을 행사하게 되었다.

  이에 대해 당시 황성신문 주필이었던 張志淵은 11월20일자 신문에 「是日也放聲大哭」이란 사설을 발표하여 일본의 침략성을 규탄하고 조약체결에 찬성한 친일 대신들을 공박하자, 조선인들이 일제히 궐기하여 조약의 무효화를 주장하면서 반대투쟁에 나섰다.

  고종은 조약이 체결된 지 며칠 뒤, 미국에 체재 중이었던 황실고문 헐버트(Hulburt)에게 “짐은 총칼의 위협과 강요 아래 최근 양국 사이에 체결된 보호조약이 무효임을 선언한다.”라고 통보하였으며, 이를 미국정부에 알리고 세계만방에 선포하도록 하였다.

  한편 유생과 전직 관리들은 상소투쟁을 벌였으나 실효를 거두지 못했고 시종무관장 민영환을 비롯해 조병세, 송병찬, 홍만식, 이상설 등 관원들과 주영공사 이한응, 학부주사 이상철, 병정 전봉학과 윤두병, 송병선, 이건석이 자결로써 항거의 뜻을 밝혔다.

  다른 한편, 충청도에서 전 참판 민종식, 전라도에서 전 참찬 최익현, 경상도에서 신돌석, 강원도에서 유생 유인석 등이 각각 의병을 모집해 무장봉기를 일으켜, 적극적인 투쟁에 나섰다. 나아가 혹자는 이근택·권중현 등 친일파 인사에 대한 암살을 시도하였다.

  본문에는 목차나 범례가 없으나 크게 보아 전반부에는 월중 30일병과 十干病에 대해 다루었고 후반부는 病占卷으로 12支日病에 대해 기술하였다. 예컨대, “초사흘병은 북방객귀가 왕래하여 생긴 것이니 수족대통하고 몸의 전면과 가슴이 아프다. 북방으로 9걸음 물러서 보낸다.” 또 “辰日병은 색정을 밝힌 죄이니 이 병은 친한 사람의 귀신이나 혹은 술과 음식으로 생긴 것이니 두통, 한열왕래…”운운하였다. 나라는 국권을 잃고 백성은 병들어 신음했다.

 

안상우 / 한국한의학연구원 동의보감사업단

안상우
한국한의학연구원에서 동의보감사업단 단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동의보감사업단에서는 동의보감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하고 이를 홍보하기 위한 사업을 진행해왔다. 최근기고: 고의서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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