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사 정유옹의 도서비평] 역사를 캐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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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사 정유옹의 도서비평] 역사를 캐는 사람들
  • 승인 2022.05.20 0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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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옹

정유옹

mjmedi@mjmedi.com


도서비평┃국보를 캐는 사람들

1964년 따뜻한 봄날, 미국인 대학원생 앨버트 모어(Albert Mohr)는 그의 부인과 함께 공주 석장리 금강 변을 거닐고 있었다. 이 지역에서 큰 홍수가 난 적이 있었는데 일부 단층이 무너져 옛 쌓임 층이 드러난 상태였다. 모어 부부는 이곳에서 뗀석기를 발견하였다. 그들은 이전에 부산 영도 동삼리에서 신석기시대 조개무덤을 조사한 적이 있었기 때문에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앨버트는 선사 유적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서둘러 이 사실을 연세대학교 손보기 교수에게 알렸다. 손보기 교수와 함께 1964년 5월 21일 답사하였고, 그해 11월 11일부터 연세대학교 대학원 사학과에서 발굴을 시작하게 되었다.

김상운 지음, 글항아리 출간

이 이야기는 충남 공주시 석장리의 구석기 유적을 소개하는 안내판에서 본 것을 각색하여 옮긴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구석기 유적이 최초로 발견된 큰 사건이었다. 이전까지만 해도 일제강점기 일본학자들에 의해 우리나라에서 선사시대의 역사는 없는 것으로 왜곡되어 있었다. 이 유적의 발견으로 한반도에서 구석기 역사가 최초로 확인되었다. 이 유적을 시작으로 경기도 연천 전곡리, 충북 단양 수양개, 평남 상원 검은모루 동굴 등 전국 120여 곳에서 구석기 유적이 나왔다고 한다. 유물의 발견으로 한반도의 역사가 바로 세워지게 된 것이다.

유적이나 유물 발굴에는 우여곡절의 이야기가 있다. 유물 발굴의 역사를 재미있게 정리한 책이 있다. 신문기자 출신의 김상운이 쓴 『국보를 캐는 사람들』이란 책에서는 앞서 이야기한 석장리 유적 발굴 이야기와 같은 국내 유적 20곳의 발굴 역사를 소개하고 있다. 구석기 시대 연천 전곡리부터 신석기 시대 여주 혼암리, 가야의 김해 대성동 그리고 삼국시대 유적인 경주 황남대총, 공주 공산성, 부여 백제금동대향로, 익산의 미륵사지, 서울의 아차산 등 유적과 유물의 발굴 과정에 대한 사연을 흥미진진하게 소개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뛰어난 유물 중 하나인 백제금동대향로를 발굴하는 과정은 손에 땀을 쥐게 한다. 1993년 부여군이 나성(羅城)과 능산리 고분군 사이에 관람객 주차장을 짓기로 하면서 마지막으로 발굴했다고 한다. 군청의 공사 독촉에 서둘러야 했지만, 발굴 책임자였던 신광섭(당시 부여박물관장)은 부여 토박이였기에 뭔가 중요한 시설이 있었을 것이라고 예감했다. 발굴 전날 부인이 꾼 용꿈을 듣고 나서 역사에 남은 유물이 나올 거라는 생각도 못 한 채 늦둥이를 보겠다는 해몽만 농담으로 했다.

1993년 12월 12일 오후 4시 물웅덩이에서 흙 밖으로 나온 쇠붙이 조각을 처음 발견하고 불상의 광배(光背) 정도로 생각했다. 인부들을 퇴근시키고 신광섭은 혹시라도 유물이 상할까 봐 직접 혼자 맨손으로 물을 퍼내면서 작업을 하였다. 추운 겨울날이라 손이 얼어 감각이 없었지만, 저녁 8시 반 드디어 향로 뚜껑과 받침의 윤곽이 드러나는 것을 보고 탄성이 흘러나왔다고 한다. 기쁨도 잠시 중국의 유물이라고 폄훼하여 허탈한 적도 있었다. 출토 후 김영삼 정부는 우루과이 라운드 협상 타결로 농민들의 반발이 막기 위해 언론에 1면 머리기사로 장식하라는 특별지시가 내려졌다. 이에 문체부 장관이 직접 내려와 공개했다고 한다.

20개의 스토리를 읽고 나니 하나하나의 유물이 모두 소중하게 보이고 발굴에 참여한 역사학자들과 박물관 학예사, 직원들의 노력이 느껴진다. 그리고 학자들이 발굴하면서 알게 된 사실을 통해 유적에서 있었던 사건을 짐작할 수 있다. 아차산 보루에서 고구려 병사들이 한강에서 올라오는 적들을 살피고, 보루의 물자가 떨어지면 구의동에 있는 후방기지에 봉화나 깃발로 연락하고, 백제가 침략해오자 밥솥도 못 챙기고 도망하는 장면 등등 유적을 발굴하고 해석한 그들의 노력으로 상상의 나래를 펼 수 있다.

또한, 역사적인 유적과 유물을 잘 보존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춘천의 중도 유적에서는 청동기 유물과 함께 도시 유적이 발견되었지만, 그 자리에 세계적인 놀이공원이 들어서고 개장하였다. 외국의 놀이동산을 유치하여 관광지를 만드는 것도 좋지만, 우리의 역사를 발굴하고 연구하여 스토리를 입혀서 역사가 살아있는 놀이동산을 만들어도 좋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코로나도 잠잠해졌으니 유물을 감상할 수 있는 박물관을 추천하면서 마칠까 한다. 며칠 전 찾은 국립공주박물관에는 무려 20여 개의 국보급 문화재가 전시되어 있다. 왕릉을 지키는 돼지 모양에 녹용 모양의 뿔이 달린 진묘수(鎭墓獸), 황금으로 만든 왕관 장식물, 팔찌, 귀걸이, 목걸이 등등. 너무 화려하고 지금 봐도 고급스러운 것이 당시 세공기술에 입이 딱 벌어진다. 당장이라도 모방해서 팔아도 손색이 없을 만한 정말 값비싼 명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이 모든 부장물이 삼국시대 왕릉 중에서 유일하게 주인을 알 수 있는 무령왕릉에서만 출토가 된 것이라고 한다.

따뜻한 봄날 공주를 찾아 무령왕릉도 구경하고 바로 옆에 있는 국립공주박물관도 들려보자. 그리고 시간이 난다면 아름다운 금강 변에 있는 공주 석장리 구석기 유적에서 선조들의 숨결을 느껴보자.

 

정유옹 / 사암침법학회, 한국전통의학史 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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