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반적으로 이 문제의 당사자인 대한한의학회와 대한한의사협회 간에 상호 이해와 협조를 촉구하는 분위기여서 극단적인 마찰은 일지 않을 것으로 전망되어 다행이지만 아직도 이해의 폭과 깊이가 달라 불신과 대립의 소지는 남아 있는 듯하다. 한의협 전국이사회와 학회 평의원총회가 어떤 식으로 결론을 내릴지 두고 봐야겠지만 학회장이 “본가의 축복을 받으면서 분가하고 싶다”고 분명하게 밝혔고 본가격인 한의협도 이 문제를 유연하게 대처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어 상황이 극단적으로까지는 가지 않을 것으로 전망하는 분위기가 우세한 편이다.
그러나 독립문제는 분위기가 완화되었다고 해서 그냥 지나치기에는 사안 자체가 중대하다. 1만 한의사의 학술단체가 어떤 형태를 유지하는 게 적정한지 제대로 생각해보지도 않고 일사천리로 진행시킬 수는 없는 일 아닌가 생각된다.
매사가 그렇듯이 ‘독립’이라는 용어 자체는 긍정적인 뜻을 내포하고 있다. 그것도 학술활동을 자유롭게 하고자 독립한다는데 반대할 사람도 많을 것 같지 않다. 다만 한의계는 정치단체가 아닌 바에야 독립을 하려면 필연성과 절차적 타당성, 대내외적 명분을 얻어야 한다. 그 결과가 善이어야 전체적 동의를 구할 수 있는 것이지 단순히 허깨비 같은 ‘독립’이란 이름 하나로 한의학의 판을 바꿀 수는 없다.
상대방을 설득하는 자세도 한의계가 갖춰야 할 미덕의 하나다. 무슨 일만 발생하면 정관을 들이대는 것도 설득력이 떨어지지만 반대로 정관을 간과하는 처사도 바람직하지 않다. 상식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데도 일방적으로 결정하고 통보하고 감정을 상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이번 사태의 이면에 상대방의 호소를 외면한 측면이 분명히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모두 한의학을 발전시키자는 데 이론의 여지가 없는 사람들이 대화로 안될 일이 뭐가 있겠는가?
이번 사태의 와중에서 일선 한의사는 완전히 배제되어 있음을 본다. 하다 못해 한의사전용통신망인 AKOM에도 이 문제에 대한 언급이 거의 없다. 한의사가 이 문제에 관심이 없다는 뜻은 아닐텐데 침묵으로 일관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지도부가 회원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절차를 생략하고 있기 때문이다. 회원들은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고 있는 경우가 태반이다. 이렇듯 회원들의 의견을 배제하면 소수의 의견에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고 종국에는 정략적이라는 오해를 받게 돼 애초의 순수한 의도가 훼손되는 결과를 초래한다.
그래서 일을 도모하는 지도자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원칙과 절차를 지키고, 여기에 덧붙여 이해와 설득으로 한 발 한 발 나아가는 진득한 면모를 갖출 필요가 있다. 醫道를 실천하는 한의사인 바에야 더 말할 나위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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