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사 박히준의 도서비평] 임상 한의사들의 집념, 어의 황도순을 다시 살려내다
상태바
[한의사 박히준의 도서비평] 임상 한의사들의 집념, 어의 황도순을 다시 살려내다
  • 승인 2022.05.13 07:2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박히준

박히준

mjmedi@mjmedi.com


도서비평┃방약합편과 어의 황도순

“띠링띠링”

어느 날 대학원생 때 연구실에서 함께 연구하던 선배로부터 반가운 전화를 받았다. 지금은 임상 한의사로서 멋지게 환자를 진료하고 있지만, 당시 연구실에서는 그 누구보다 한 주제를 깊이 있게 연구해 내는 타고난 연구자였다. 선배는 그동안 연구한 내용을 담아 책을 한 권 출간하게 되어 보내준다고 했다. 바로 “방약합편과 어의 황도순”이라는 책이었다.

 한기춘 서정철 최순화 지음,
퍼플 출간

혜암(惠庵) 황도순은 철종에서 고종까지 어의로 활동한 분으로, 벼슬에서 물러날 무렵 “의종손익(醫宗損益)”과 “의방활투(醫方活套)”를 저술하였고, 후에 “의방활투”를 증보하여 사후에 아들을 통해 발간된 책이 “방약합편(方藥合編)”이다. 방약합편은 임상에서 활용하기 쉽게 되어 있어, 지금도 인기가 많은 임상 서적이지만, 인기만큼이나 여러 판본이 혼재되어 혼란을 주는 면도 존재해 왔다. 이에 고서에 관심이 많던 세 명의 한의사가 의기투합하여, 방약합편을 중심으로 책의 여러 간행 판본들을 모두 모으고 그 차이를 분석하고 계통적으로 정리하는 판본학적인 연구를 수행하였다. 바쁜 임상의로서의 시간을 쪼개어 쉽게 구할 수 없는 자료까지 직접 찾아다니면서 모아 서지학적 전문가조차 인정할만한 자료를 만들어 내었다니 참으로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저자들은 연구 과정에서 어의 황도순이 황도연으로 개명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고, 그 동안 잘 알지 못했던 혜암 선생에 대한 생애, 의학적 성과 등을 재조명하였을 뿐 아니라, 혜암 선생의 초상화를 발굴하고 방약합편의 초간본을 찾아내는 등 의사학적으로 의미 있는 성과를 내게 되었다. 그야말로 잊혀질 뻔했던 어의 황도순 선생의 자취를 지금 우리가 가까이 느낄 수 있도록, 의미있는 자료를 마련해 주었다고 생각한다.

학문은 아는 것이 아는 것이 아니며, 내가 믿는 것이 사실이 아닐 수 있다는 질문에서 시작된다. 저자들은 한의학 서적을 임상에 적용하는 것에 급급하지 않고, 원형을 찾아내어 좀 더 본원적인 근거를 마련하고자 하는 여정을 수행해 왔다. 이러한 방법론 또한 한의학의 근거를 단단히 하고자 하는 다른 연구자들과 같은 마음이 아닐까?

저자들은 이 책의 결과에 머물지 않고 지금도 또 다른 근본을 다지는 작업을 진행 중이라고 한다. 나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작업을 해낸 선배와 저자분들의 열정과 노력에 경의를 표하며, 연구하는 한의사들에게 무한한 애정을 담아 응원을 전하고 싶다.

 

박히준 / 경희대 침구경락융합연구센터 소장, 경희대 한의대 교수, 장-뇌축기반 맞춤형 침치료기전 연구실 PI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