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사 김린애의 도서비평] 소중한 이는 잃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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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사 김린애의 도서비평] 소중한 이는 잃지 않는다
  • 승인 2022.05.06 0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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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린애

김린애

mjmedi@mjmedi.com


도서비평┃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죽음을 앞두고 남긴 작품이란 왜 특별할까? 젊은 나이에 암으로 세상을 떠나게 된 신경외과 의사폴 칼라니티 책 <숨결이 바람 될 때>는 죽음이 갑자기 다가왔을 때 겪은 현실과 가족, 삶, 일에 대한 사랑이 담긴 책이다. 신경의학자 올리버 색스의 <온 더 무브>는 다른 사람들을 애정으로 지켜보고 기록한 이가 자신의 인생을 기록한, 카메라의 시선이 갑자기 180도 돌아가 촬영자를 찍은 듯 한 책이다. 이런 책들이 특별한 것은 인생에서 가장 경험이 쌓인 순간의 작품이라 그런 것일까,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투자해서 쓴 소중한 작품이기 때문일까?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도 그런 특별한 책이다.

김지수 지음, 열림원 출간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은 생각에 부지런한 이와의 대화이다. 즐거운 대화가 그렇듯이 화제가 끊임없이 변화하고 이어진다. 운이나 외로움, 과학과 예술의 차이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재능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다양한 책과 지식과 오랜 공부라는 배경이 대화를 살찌우고 있지만 그 배경을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도 산뜻하게 와 닿는 균형이 신기하고 매력적이다. 왜 많은 사람이 이어령 교수님에게 귀를 기울였는지, 저자가 얼마나 좋은 인터뷰어인지 느껴진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어렸을 때 엉엉 울면서 “엄마 죽으면 안 돼”라고 조르던 일이 떠올랐다. 엄마는 밑도 끝도 없이 “응 엄마 안 죽어”라면서 안아주시곤 했다. 그런 날은 엄마 옆에서 자다가 중간중간 깨어서는 엄마 코 밑에 손가락을 갖다 대고는 엄마의 숨을 확인했다. 왜 그렇게까지 필사적이었는지, 어떻게 그렇게 불가능한 일을 졸랐는지, 그리고 엄마의 대답에 어떻게 그렇게까지 안심했던 건지 종종 회상하곤 했다. 사실 지금도 가끔은 그러고 싶다고 내심 생각한다.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을 읽으며 그런 기억이 나만의 것이 아니란 것을 알았다. “한 존재에 깊이 의지하면 ‘이 사람이 이 세계에서 사라지면 어쩌나’ 더럭 겁이 나거든.” “그 때 어머니가 뭐라고 그래? ‘엄마 안 죽어. 너 두고 절대 안 죽어.’ 그러면 마음이 풀리고 안심이 되지. 아무리 어린애라도 죽는다는 걸 왜 몰라. 그런데 엄마가 ‘너 두고 절대 안 죽는다’ 그러면 그 순간 우리에게 죽음이란 없는 거야. 우리가 죽음을 이기는 거라네.” 이렇게 이 이야기는 어린 날의 마음에 공감해주고, 스스로는 이해할 수 없던 마음까지 읽어주면서 내게 ‘소중해졌다.’ 마치 내가 직접 대화를 나누기라도 한 것처럼.

그간 피상적으로만 알고 있던 이와의 대화가 소중하게 느껴지고, 그를 여의었다는 감정이 뭉클하게 든다는 것은 얼핏 이상하다. 심지어 그리고 여읜 이에게서 직접 위로를 받는다니. 대체 나는 이분이 언제 소중해졌고 언제 잃은 걸까? 이에 대한 대화도 있다. “고려청자는 무덤 속에 있었어. 이걸 5백년 후에 발굴했다면, 내 눈 앞에 없었어도 고려청자는 5백년을 존재한 거야. 그런데 이게 깨지면? 그 순간 ‘아이고 이걸 어째’ 한탄을 하지. 그런데 그 청자는 무덤 속에 있을 때, 이미 우리 앞에 없었던 것 아닌가?”

얼핏 현실도피나 선문답으로 느껴질 수도 있는 상실에 대한 대화가 그렇게 느껴지지 않고 위로로 느껴진 것은 이어령 교수님이 이르게 잃은 어머니와 딸에 대한 오랜 생각이 담겨있기 때문인 것 같다. 소중한 이가 얼마나 소중했으며, 어떻게 영혼에 새겨졌으며, 그들을 먼저 떠나 보내는 게 어땠는지 대화속에 담겨있다. 또 자신을 잃기 싫어하는 남을 이들의 마음도, 그리고 그 남을 이가 어떻게 해야 할지도 담겨있다. “딸을 먼저 저 세상으로 보내고 나니 가장 아쉬운 게 뭔 줄 아나? ‘살아 있을 때 그 말을 해 줄 걸’이야.” “지금도 보면 눈물이 핑 도는 것은 죽음이나 슬픔이 아니라네. 그때 그 말을 못 한 거야. 그 생각을 하면 눈물이 흘러.” 이런 대화를 통해 지난 헤어짐을 이해하고, 앞으로 겪을 헤어짐에 대해 준비하게 된다. 그리고 이 대화가 없었더라면 없었을 헤어짐, 이어령 교수님이라는 사람과의 헤어짐을 내게 덧붙인다.

 

김린애 / 상쾌한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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