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재의 임상8체질] 인식의 도약과 전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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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재의 임상8체질] 인식의 도약과 전환
  • 승인 2022.04.30 0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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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재

이강재

mjmedi@mjmedi.com


8체질의학을 어떻게 공부할 것인가_50

오늘 아침에 손녀가 태어났다.1) 손녀는 한살이고 나는 예순이다. 사람은 저마다 자신의 말을 하기 위해서 세상에 온다. 정치가는 선전하며 학자는 논문으로 예술가는 작품을 발표하고 운동선수는 몸으로 잔혹한 범죄자는 악()을 통해서 말한다. 글자가 없던 민족의 이야기꾼처럼 나는 내 시대를 이 아이에게 전하고 싶다. 꿈같은 생각이지만 온()이 된다면 이 아이가 세상을 향해 외치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한다.

수세보원
동무 이제마(1837~1900) 공은 동의수세보원사상인변증론말미에 이 책의 후기처럼 쓴 문장에서, “만 호 정도가 되는 고을에 옹기장이가 한 명뿐이라면 그릇이 부족할 것이다. 백 호가 사는 마을에 의사가 한 명뿐이라면 사람을 살리기에 부족할 것이다. 반드시 의학을 널리 밝혀서 집집마다 치료법을 알고 사람마다 질병을 알게 된 연후에 세상 사람이 장수하고 근원을 보존할 수 있을 것이다.”2)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이 저마다 질병을 알고 집집마다 치료법이 있는 세상이라니, 그리하여 모두가 근원을 보존하면서 장수할 수 있다니 얼마나 이상적인 사회인가. 동무 공은 자신의 수세보원이 그런 세상을 여는 기초라고 생각했고, 그것이 실현되리라고 믿었다. 아마도.

집집마다 치료법을 알고 사람마다 질병을 안다는 구절을 허술하게 넘기면 안 된다. 수세보원천기유사(天機有四)’로부터 이 문장의 앞까지 진행되어 왔으니, ‘사람마다 앓게 되는 질병의 양상이 다르며 그것을 사람들이 저마다 알게 되고 그에 따라 집집마다 치료법이 다를 것이라는, 그 다름의 이치를 세상 사람들이 깨우치게 되리라는 기대감을 이 구절에 담아 넣은 것이다. 그러나 동무 공이 지녔던 기대만큼 수세보원에 대한 세상의 반응과 이해는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New Medicine
새로운 체계나 물건을 만드는 창시자나 발명가는 그것이 세상에서 보편성을 얻기를 바랄 것이다. 즉 그것이 세상의 주류로서 받아들여지기를 희망할 것이다.

동무 공도 자신의 사상인론이 의학의 세상을 널리 밝힐 거라고 믿고 기대했다. 나는, 동무 공의 사상인론으로부터 발상(發祥)한 체질의학(體質醫學)이 전통적인 동서양의 의학을 잇는 최후의 의학(New Medicine)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체질의학은 의학의 새로운 세계를 밝힐 자격과 가치를 충분히 지니고 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아직 이 세계가 체질의학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3) 그리고 동무 공과 수세보원에도 일부 책임이 있다.

동무 공의 사상인론과 사상의학은 매우 어렵다. 동의수세보원이 세상에 나오고 120년이 더 넘었지만, 권지일(卷之一) 네 논편4)에 담긴 동무 공의 생각은 정확하고 상세하며 평이하게 해석되어 알려지지 못했다. 또한 사상의학의 출발은 사상인의 감별인데 책 속에 든 내용만으로는 감별이 쉽게 되지 않는다. 거기에다 태음인과 태양인의 병증론과 용약법은 미완성이다.

나는 동무 공이 쓴 후기가 동무 공이 지녔던 판타지라고 생각한다.

 

판타지

()에서 광()은 찰나(刹那)인 것 같다. 광으로 넘어 서는 그 찰나를 당사자는 알아채지 못하니 바로 병이다. 넘어가면 되돌아오기 어렵다.
현실과 판타지(fantasy)5)의 사이도 그렇다. 금양체질(Pulmotonia)6)은 근본적으로 판타지적 성향을 지니고 있고, 자신이 현실에서 판타지로 넘어가는 것을 잘 알지 못한다. 판타지란, 해리 포터 시리즈나 반지의 제왕을 떠올려 보면 무슨 뜻인지 짐작이 올 것이다. 그리고 판타지를 구현한 수많은 영화와 컴퓨터 게임들이 있다.

 

보편성
체질은 과연 존재하는가. 그렇다면 체질의 존재를 어떻게 객관적으로 증명할 수 있는가. 이 과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체질의학은 결코 세상에서 보편성을 얻을 수 없다.

8체질론과 8체질의학의 창시자 동호 권도원 선생은 이 과제의 중요성을 일찍 깨달았다. 동무 공은 자신의 이론체계가 어렵다고 직접 말하지는 않았지만, 동호 선생은 8체질의학이 매우 어렵다는 것을 평생 자각하고 있었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체질의학은 체질감별이 제1의 과제이다. 그리고 체계화된 8체질의 감별도구는 체질맥진이다.

체질맥의 발견자이기도 한 동호 선생은 체질맥진의 어려움에 대해서 여러 번 강조했는데, 20115월에 나온 월간조선과의 인터뷰에서 체질맥진의 숙련도에 대해서 말하면서 “8체질은 맥을 짚기가 정말 어렵습니다. 20만 번은 해봐야 겨우 감이 와요.”라고 말했다. 발견자이자 창시자가 20만 번은 해봐야 겨우 조금 알게 된다고 고백했던 것이다. 체질맥진을 숙련되게 습득하는 일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 전수하는 것 모두가 어렵다. 이것이 현실이고 팩트다.

그래서 권도원 선생은 이 문제를 해결할 돌파구가 체질맥진의 기계화라고 믿었고, 이에 평생을 몰두하고 매달렸다. 국내외 유수한 대학의 학자들에게 의뢰하여 다양한 시도를 했다. 맥박측정기, 맥진검출센서, 맥진검출센서 누름장치, 8체질의학에 의거한 체질감별 맥진기 등의 실용신안과 특허가 출원되었으나, 체질맥진에 실제로 적용하는 단계로 나아갈 수 있는 뚜렷한 성과는 없었다.

 

체질맥진의 기계화
사람의 요골동맥이 지나는 손목 환경은 아주 다양하다. 심하게 표현한다면 사람마다 거의 다를 것이다. 그러니 이런 손목 환경에 적용할 수 있는 적합한 기계를 개발한다는 것은 애초부터 출발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권도원 선생은 공식적인 석상이나 기고를 통해서 그동안 꾸준하게 체질맥진 기계화의 필요성을 역설해왔고 그 실현을 믿는다고 주장해 왔다. 그동안 개발하려고 시도했던 맥진 기계는 고정된 장치이다. 하지만 사람의 손가락은 변화무쌍하다. 체질맥진 기계가 성공하려면 그 기계가 사람의 손과 동일한 수준에 도달해야만 한다. 나는 미래에 인간의 기술이 아무리 발달한다고 해도 체질맥진의 기계화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만약에 맥진 기계에 매달리기 전에 다른 쪽으로 빨리 눈을 돌렸더라면 혹시라도 다른 분야에서 체질을 감별할 수 있는 실마리를 찾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체질침의 운용
8체질의학의 또 다른 어려움은 체질침의 운용이다. 체질침은 사람과 질병에 고정된 처방이 없다. 백 명의 환자가 있다면 백 개의 다른 처방이 필요하다. 침 처방의 선택과 성패는 오로지 8체질 임상을 하는 의사의 경험과 숙련도에 따라 좌우된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팀인 맨체스터 시티 FC에서 뛰는 라힘 스털링(Raheem Sterling)은 스피드와 드리블 돌파가 뛰어나고 골도 많이 넣는 공격수이다. 그런데 종종 골문 앞에서 결정적인 슛을 공중으로 날리곤 한다. 그의 독특한 엉덩이 움직임과 함께 그런 장면만 모은 동영상이 유튜브에서 조회수를 늘려가고 있다.

축구에서 골(goal)은 마지막 패스라고 한다. 체질침을 운용하는 스킬은 축구에서 골을 넣는 것과 같다.
 

인식의 도약과 전환
우리 동양의학자들은 서구를 향해서 아직 경락을 증명해보이지 못했다. 체질의 존재를 입증하는 것 또한 실현될 수 있을지 예측할 수 없는 일이다. , 아이템을 잡아서 논문을 쓰고 또 쓰고 하면서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서 체질을 증명하겠다고 꿈꾸는 진지한 학자나 임상가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사실 경락이나 체질은 증명의 대상이 아닐 수도 있다.

나는, 체질이 존재한다는 보편성의 획득을 원한다면 체질의 직접적인 증명보다는 다른 쪽으로 발상을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전 세계적으로 획기적인 인식의 도약과 전환이 되는 순간과 사건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코로나19 시국이, 회사의 소유주나 경영진이 재택근무에 대해서 가졌던 쓸데없는 우려를 날려버렸듯이 말이다.

다운증이 있다. 다운증은 후천적인 질병이 아니라 염색체 이상에 의한 선천적인 장애이다. 다운증은 인종에 관계없이 특징적인 신체특성을 보여준다. 생애를 통해서 드러나는 공통적인 질병 패턴도 있다. 나는 2002년부터 다운증과 8체질을 연결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품었다. 근래에는 다운증은 8체질 중에 어떤 체질이라는 혼자만의 짐작과 신념도 생겼다. 로컬 임상의 한 사람의 처지로서 연구를 수행하기에는 한계가 뚜렷하다. 그래서 국내의 한 대학 연구실에 이와 관련한 연구제안을 해보기도 했다. 다운증이, 체질에 관한 세계인의 인식을 한 순간에 도약시키고 전환시킬 수 있는 중요한 아이템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이강재 / 임상8체질연구회

각주

1) 2022년 4월 20일

2) 萬室之邑 一人陶則器不足也 百家之村 一人醫則活人不足也 必廣明醫學 家家知醫 人人知病 然後可以壽世保元

3) 한의사 집단과 한의학계조차도 그렇다.

4)「성명론」 「사단론」 「확충론」 「장부론」

5)  幻想

6) 사상인의 구분에서는 태양인(太陽人)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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