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의 취득 후 남미에서의 경험이 인류학 관심 계기 되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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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의 취득 후 남미에서의 경험이 인류학 관심 계기 되었죠”
  • 승인 2022.04.21 0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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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숙현 기자

박숙현 기자

sh8789@mjmedi.com


▶인터뷰: 인류학 기고 연재하게 된 신유정 박사

‘농촌 지역 주민의 고통 경험’ 등 관심…본지에 ‘시골생활 엿보기’ 글 연재 예정
◇신유정 박사(가운데)가 지역청소년들과 4.16재단에서 지원받은 연구를 진행하는 모습.

[민족의학신문=박숙현 기자] 전남 구례군에서 인류학을 연구하고 있는 신유정 박사. 그는 사실 한의대를 졸업한 한의사이기도 하다. 전문의 취득 후 브라질에서의 경험을 계기로 인류학 연구자의 길을 택하게 된 그는 매달 본지에 ‘시골에서 인류학하기(가제)’ 기고를 연재할 예정이다. 한의사 출신 인류학자의 삶은 어떠할지, 앞으로 연재될 기고는 어떤 내용이 진행될지, 신유정 박사에게 이야기를 들어봤다.

 

▶간단한 자기소개를 부탁한다.

현재 전라남도 구례군에서 가족과 함께 살고 있고 있으며, 99학번으로 한의대에 입학했다. 스스로 한의사인지 아닌지 잘 모르겠지만 생계유지용으로 직장을 다니고 있기는 하다. 솔직히 일할 때 잠깐을 제외하고는 거의 대부분 인류학 연구자라는 정체성으로 살고 있다. 최근 모 기업조직에 대한 비판적 연구를 했었는데 특히 이 논문의 투고 이후의 과정이 좀 시끄러웠다. 그 때 한의사로서의 내 직업이, 자본이나 권력에 별로 휘둘릴 필요 없이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연구를 할 수 있도록 해주는구나 싶어 처음으로 뿌듯했다.

 

▶한의대를 졸업한 한의사가 인류학이라는 학문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전문의 자격을 취득한 후에 남미에서 대략 2년 동안 지냈었다. 브라질에서 당시 소아과 의사였던 현지 친구의 도움으로 연방 대학병원에서 열대의학 대학원 과정을 수료할 수 있었다. 열대의학은 감염내과와 유사한데, 말라리아, 한센병, 에이즈, 피부결핵 등 주로 따뜻하고 가난한 나라들에서 많이 걸리는 감염병을 다루고 있었다. 그 때 진료실에서 교수님을 기다리고 있던 한 환자가 아직도 많이 기억난다. 누구와도 눈을 마주치지 않은 채 굉장히 위축되고 불안하고, 그런데 내가 본 적 없는 깊은 절망에 빠져있던 깡마른 중년 남자였다. 그분은 폐가 거의 기능을 하지 못하는 상태가 되도록 병원에 오지 못했는데, 이유를 들어보면 다 이해가 됐다. 브라질 중부 내륙 지방 소 농장의 일꾼이었고 인가도 드문 곳이니 근처에 병원이 없는 게 당연했고, 또 가난해서 엄두를 내지도 못했다. 광활한 내륙 벌판에서 가축만 돌보던 사람이었는데 검사를 하려면 도시로 나왔어야 했고, 교통비와 검사받는 동안 감당해야 할 숙박비, 그리고 일을 못하는 기간의 생활비 등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학교를 다닌 적이 없으니 이럴 때 어떻게 공적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지도 전혀 몰랐다. 그 때 진료실에서 마주친 그런 환자들의 이야기 때문에 질병과 고통을 구조화하는 사회와 문화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마침 그 때 폴 파머라는 의료인류학자의 MIT 공개 강연을 들었던 것이 인류학 대학원 진학의 계기가 되었다.

 

▶농촌, 지역공동체, 공공성 연구 등에 관심이 있는 것으로 안다. 그러한 관점에서 지자체의 한의건강증진사업의 의의나 보완해야 할 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생각해 본 적 없는 질문이기는 하다. 구례군 보건소에서 찾아보니 구례군의 건강증진사업 중 한방공공보건사업으로는 ‘경로당 순회 의료 서비스’라는 것이 있었다. 일단 홈페이지에서 찾을 수 있는 건 이 사업 하나다. 매우 ‘전통적인’ 방식의 한방공공보건사업이라는 생각이 든다. 해당 정책에 대해 잘 알지 못해 평가를 할 만한 위치에 있지는 않은 것 같지만, 이런 사업을 실제로 진행할 때 사업 대상인 경로당의 노인들에게 피드백을 어떻게 받는지가 궁금하다. 의외로 지역에서 하는 대중 대상 공공사업이 정작 주민들의 의견을 청취하지 않고 기획, 추진되어 마무리까지 되는 경우가 많았다. 제대로 이야기를 들어본 바가 없으니 그 사업 그대로 그 다음 해에도, 그 다음 해에도 관성적으로 하는 것이다. 주민들 의견을 듣는 것이 굉장히 번거롭고 무슨 연구용역 시켜서 해야 하는 것처럼 생각하는 관공서 내부 인식도 있는 것 같다. 공무원들이 조금만 더 의지를 갖고 사업 기획 단계에서 제도적으로 그런 대목을 보완한다면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닐 텐데. 박사논문으로 기초생활수급자들의 빈곤 경험에 관해 썼었는데, 당시 수급자 관련 정책도 피드백 절차는 생략되고 오롯이 정부 기관이나 지자체의 시선에서 만들어지고 있구나 하는 아쉬움을 많이 느꼈다. 나랏돈 ‘써 주는’ 거니까 대상 주민 측에서는 하고 싶은 말을 다 할 수가 없는 구조랄까. 말해도 듣는 사람도 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본지에 매달 ‘시골에서 인류학하기(가제)’ 기고를 연재할 예정인데, 이 기고는 어떤 내용을 담을 예정인가.

요새 사람들은 대부분 도시에 살고 있다 보니 도시인을 위해 시골에서 일상을 산다는 게 어떤 건지 엿보는 느낌의 글이 될 것 같다. 아직 써보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 시골에 사는 농촌 주민으로서, 또 인류학 전공자로서 현상을 낯설게 보거나 뾰족하게 바라볼 수 있을 테니 그런 소소한 내용들을 쓰면 되지 않을까 생각해봤다.

인류학을 낯설어 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 같다. 인류학의 정의를 위키백과에 검색해보면 ‘인간에 관한 모든 것을 연구하는 학문’이라고 나온다. 인류학은 사회과학이지만 추상적인 인간 집단보다는 구체적인 개인 인간의 이야기에 좀 더 많은 주의를 기울인다는 특이점이 있다. 그 개인 인간의 이야기 이면에 어떤 사회문화적, 정치경제적 힘과 맥락들이 개입하고 있나를 분석한다. 내가 관심 있는 분야도 ‘농촌 지역 주민들은 어떻게 고통을 경험하는가’, ‘농촌 사람들이 경험하는 고통의 문제가 왜 한국 사회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가’ 등이다.

 

▶민족의학신문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특별히 없다. 앞으로의 연재를 위해 글을 잘 쓰는 것이 더 중요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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