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의 주역] 산천대축 – 무엇을 쌓을 것인가
상태바
[모두의 주역] 산천대축 – 무엇을 쌓을 것인가
  • 승인 2022.04.15 06:0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박혜원

박혜원

mjmedi@mjmedi.com


박혜원
장기한의원장

무언가를 모아 큰 것으로 만드는 것을 흔히 ‘쌓는다’고 한다. 업을 쌓는다, 덕을 쌓는다, 부를 쌓는다와 같이 무형의 셀 수 없는 개념들도 마치 그 부피가 있는 것처럼 여겨지게 하고 그 막대함을 느낄 수 있게 하는 마법의 단어가 아닐 수 없다.

실질적인 무엇을 쌓아 올리려면 보통 쌓을 만한 무언가가 충분한 것이 전제 조건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쌓아 놓을 장소다. 적재할 물건은 10톤이 넘는데 땅은 고작 두 평 남짓하다면 제 아무리 높게 쌓아 올린다고 한들 위험할 수밖에 없다. 쌓을 곳이 충분한 대지와 거기에 쌓아 둘 것들, 그것을 옳게 쌓아 올리는 과정이 있어야 큰 것을 만들어낼 수 있다.

주역의 대축 괘도 그렇게 무언가를 높이 쌓아 올리는 모양새다. 대축 괘의 괘사는 다음과 같다.

大畜 利貞 不家食吉 利涉大川

彖曰 大畜 剛健篤實輝光 日新其德 剛上而尙賢 能止健大正也 不家食吉 養賢也 利涉大川 應乎天也

대축의 공간은 편협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혼자서는 절대로 높게 쌓아올릴 수 없다. 그러니 함께 쌓아 올릴 사람이 있어야 하는데, 그 사람을 찾으려면 집 안에서 그치면 안 된다. 밖으로 나가 어질고 현명한 사람을 찾아 함께 해야 한다. 그 일이 끝난 후에는 함께 한 사람들에게 골고루 그 혜택이 미쳐야 하며, 더 나아가서는 그 쌓아 올린 것으로 널리 사람들을 이롭게 해야 한다.

初九 有厲 利已

가장 아래쪽에 있는 양효인 초구는 그 성질 자체로 흔들거린다. 위에 산을 이고 있으려면 굳건해야 하는데 어린 양기이니 가만히 있을 수 있을 리가 없다. 그러나 토대가 되려면 그 성질을 죽이고 자기 위에 쌓인 것들을 밀어 올리는 것에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 위에 무엇을 쌓을 수도 없을뿐더러 이미 쌓아 놓은 것들을 전부 무너뜨리게 된다.

九二 輿說輹

구이는 음의 자리에 있는 양효이다. 아래의 초구도 흔들거리는데, 그 위에 있는 구이도 제 자리가 아니니 덩달아 흔들릴 수밖에 없다. 그러나 상전에 輿說輹 中无尤也라고 했다. 가운데 자리를 지키고 있으니 허물이 없다는 것은 구이가 육오와 음양응이 되는 제 짝이고 육오의 통제에 순응하기 때문이다. 수레는 바퀴살이 없으면 굴러갈 수 없다. 쓸모가 없어지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나 지금의 이 수레는 움직이는 것으로 자기 쓸모를 주장해서는 안되는 시기다. 수레는 무거운 것을 지어 나르는 역할도 한다. 지금의 이 수레는 적절한 때가 올 때까지 임시로 물건을 적재해놓는 장소와 같은 역할을 한다. 쌓아두었지만 움직일 때는 아닌 것이다.

九三 良馬逐 利艱貞 日閑輿衛 利有攸往

구삼은 내괘에서 외괘로 넘어가는 자리에 있다. 그야말로 큰 내를 건너는 것이다. 양효가 양의 자리에 있으니 기운도 세다. 그러니 좋은 말로 쫓아가는 것과 같다. 그러나 큰 일을 도모하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 게다가 지금 구삼이 끌고 건너야 하는 것은 잔뜩 쌓여 있는 중요한 것들이다. 그것이 가는 동안 망가지거나 누군가에게 빼앗기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창고가 비워지지 않은 상태에서 또다시 적재 물량이 오면 곤란하다. 구삼이 움직이는 것은 쌓을 곳이 준비가 되었다는 것이고, 그래서 上合志也라고 한 것이다.

六四 童牛之梏 元吉

梏는 수갑, 빗장이라는 뜻이 있는 단어이다. 소는 뿔이 있으면 상당히 위협적이다. 투우를 하는 소 외의 가축들에게서 뿔을 잘라주는 작업을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어린 소는 예민하고 쉽게 날뛴다. 미리부터 사람을 들이받지 않도록 뿔을 단속해 주어야 화를 면한다. 육사의 역할은 길들이기 힘든 어린 소와 같은 초구를 얌전히 만드는 것이다. 서로 음양응을 이루는 제 짝이기에 육사는 그 역할을 제대로 해내며 결국 이 괘 전체의 밑바탕과 기둥을 완성하는 주체가 된다. 크게 도모한 일이 잘되었을 때의 기쁨을 느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六五 豶豕之牙 吉

수컷 돼지는 이빨이 밖으로 길게 자란다. 그것은 다른 개체를 공격하기 위한 수단 중의 하나이기에 보통 가축으로 기르는 돼지는 어릴 때 그 이빨을 제거한다. 수퇘지를 거세하는 것은 육질의 문제도 있지만 몸집을 빠르게 불리고 위와 같이 다른 동성 개체와의 싸움을 피하게 하려는 목적도 있다. 육오는 다섯 번째 자리를 차지하고 있지만 음효라 힘이 없다. 그러나 육오가 가진 능력은 구이를 얌전하게 만드는 것이다. 식량이며 재산인 돼지의 공격성을 제거하고 얌전한 가축으로 만들어 그것을 불리는 것이 육오의 일이다. 아무리 보잘것없는 재주라도 적절한 때에 잘만 쓰면 남부럽지 않은 효과를 발휘할 때가 있다. 그것이 힘없는 육오가 그득하게 쌓아 올린 것 위에 앉아 있을 수 있는 이유다.

上九 何天之衢 亨

하늘 꼭대기에 올라 앉은 느낌이 들 정도로 가득 쌓인 것 위에 있는 느낌은 어떨까. 뿌듯하고 행복한 마음도 들 것이고, 아래를 내려다보면 아찔한 느낌도 들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상구가 형통한 이유는 따로 있다. 상전에는 何天之衢 道大行也라 하였다. 도가 크게 행해짐에 형통하게 되는 것이지, 상구가 그 쌓아 올린 것을 독식하고 마음대로 휘두르려고 들면 그렇게 될 수가 없다.

커다란 건물을 지을 때는 무엇보다 토대가 중요하다. 지반이 약한 곳에는 높고 큰 건물을 지어서는 안 된다. 만약 그렇게 되면 짓는 도중에도, 다 지어지고 난 다음에도 언제고 무너져 버린다. 무형의 것들도 마찬가지다. 초등학교 교육과정을 겨우 이해한 사람에게 갑자기 대학 교육을 시킨다고 이해할 수 있을 리가 없다. 어떤 분야의 이해가 전혀 없는 사람에게 갑자기 그 임무를 맡기면 제대로 해낼 수 있을 리 없다. 만약 내가 그 상황에 놓였다면 일단 기반이 될 수 있는 정보들을 모으고 그것을 바탕으로 하여 실제 일을 맡아 줄 현명한 측근을 구해야 한다. 일의 범위가 커지면 나의 역량만으로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 그리고 모든 일들은 그 일을 같이하는 사람들의 면면을 보면 그 끝을 짐작할 수 있기 마련이다. 모든 것은 뚜껑을 열어 봐야 안다지만, 완성물은 그 재료의 한계를 벗어날 수 없다. 일류 셰프라 한들 상한 식재료로 고급 요리를 만들어낼 수는 없다. 뚜껑을 열었을 때 그 속에 든 것이 그저 음식 쓰레기에 불과하다면, 재료든 만든 사람이든 잘못된 것이다. 그러니 뭔가 일이 크게 잘못된 것 같다면 다시 한번 돌아보자. 내가 그동안 쌓아온 것이 무엇이었는지를.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