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재의 임상8체질] 죽음의 傳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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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재의 임상8체질] 죽음의 傳令
  • 승인 2022.03.12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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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재

이강재

mjmedi@mjmedi.com


8체질의학을 어떻게 공부할 것인가_47

삶에는 수많은 선택과 결정, 외면과 포기의 순간이 있다. 그런 순간들을 거쳐서 삶은 이어진다. 늘 다니던 익숙한 길로 향하다가 문득 다른 길을 따라가고 싶어진다. 그러다가 새로 선택한 그 길이 기존의 길보다 훨씬 여유롭고 수월하다는 것을 알게 되기도 한다. 하지만 반대의 경우가 되는 때도 많다.

어제 퇴근길에 늘 다니던 양재대로가 꽉 막혔다. 라디오에서, 구룡마을에서 발생한 화재 때문이라고 알려준다. 그래서 남부순환로 쪽으로 우회해서 집에 갔다. 공부가 심하게 막힐 때, 노력에 비해서 성과가 지지부진할 때도 우회로를 생각한다. 퇴근길에선 집이라는 목표점이 정해져 있지만 공부에서는 미래와 결과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다. 거기다 나는 이십오년째 독학 중이다. 오로지 나 혼자 선택하고 또 결정해서 타개해야 한다. 근래 석 달 정도 8체질론을 공부한 이래로 처음 맞는 슬럼프인 것 같다.

 

사람이 태어나서 평생 밟고 경험에 가는 길은 오로지 하나다. 그 길에서 사람의 몸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일정한 시기부터는 누구든지 늙는다. 질병이 생기는 것과 별개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늙어 간다. 늙음의 내리막길을 되돌아 오를 수는 없다. 또 내리막길에서는 점점 가속된다. 그리고 그 끝에 죽음이 있다.

질병이란 건강하던 삶의 행로에서 보면 잘못 들어선 곁길 같은 것이다. 곁길로 샜다가 금방 바로 잡히기도 하고 어쩌면 영영 수많은 곁길로만 헤맬 수도 있다. 암(癌)은 삶의 강력한 장애물인데 내가 알게 모르게 선택한 곁길에 있다. 암은 내 몸으로 내가 가는 길의 밖에서 온 것이 아니다. 내 길의 끝에 있는 ‘내 죽음’이 미리 보낸 전령이라고 할 수 있다. 내 삶을 죽음으로 이끄는 것이 암의 임무이기 때문이다.

 

죽음의 전령

삶과 죽음이 싸움의 상대라면 최후의 승자는 죽음이다. 삶과 죽음의 대결은, 전후반 내내 높은 점유율을 유지하면서도 골은 넣지 못하다 추가시간에 역습 한 번으로 한 골을 먹고 지는 축구 경기와 같다. 암이 죽음의 전령이라면 암은 우리 편 내부에 이미 그렇게 도사리고 있었을 것이다.

암세포의 세력이 커지면 암세포에게 면역세포를 죽일 수 있는 특별한 방어능력이 생긴다고 한다. 면역세포가 암세포를 공격할 때 암세포와 밀착 결합한 후 암세포 쪽으로 죽음의 신호체계를 활성화시켜 암세포를 죽이는 방법이 정상적인 현상인데, 암조직의 세력이 왕성한 경우 역으로 암세포 쪽에서 죽음의 신호전달체계를 면역세포에게 내보내 오히려 면역세포가 죽게 된다는 것이다. 즉 암세포를 공격해야 할 면역세포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태세의 전환’이 일어나는 순간이 있다는 것이다. 삶의 바통(baton)이 죽음에게 넘겨지는 순간 말이다.

 

명운

생명체의 삶이 오직 한 길인 것이 바로 명운(命運)이다. 그렇게 명령을 받은 대로(命) 살아가야(運) 한다. 명운 속에 체질이 있다. 체질은 부모로부터 유전되고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변하지 않으며 삶 전체를 지배한다. 그래서 체질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반복하여 강조하는 것이다.

암의 치료 처방

2002년 10월에 조재의 씨가 엮은 책을 통해서 권도원 선생이 암 치료에 대해서 남긴 글을 접했다.

“암 치료는 일반 병과 완전히 달라 체질별과 병별뿐만 아니고, 세포별로 치료법이 다르고, 장기별로 다르며, 내장과 체부 암으로 구분되고, 몸의 상.중.하의 위치적으로 구분되며, 수술의 여부와 전이 여하에 따라서도 구분되어, 한 체질에는 64처방이 형성되고 8체질의 도합은 768처방이 된다. 인간의 암은 무슨 암이든지 이 512처방 중의 하나이다. 그것이 바로 찾아짐으로만 암의 치료는 착수된다.” 이렇게 말했다.

나는 768처방과 512처방이 언급된 연유를 짐작도 추리도 할 수 없었지만, ‘마침내 권도원 선생이 암 치료법의 체계를 세웠다’고 믿었다.

조재의 씨의 그 책에, 1999년 6월 10일에 상지대학교에서 열린 강연에서 권도원 선생은 강연을 들은 한의사가 암에 대해서 질문한 것에 대답하면서, “지금까지 연구를 한 것이 상당히 오래되었는데, 지금 결론이라고 어떻게 낸 고 하니, 772개의 처방 가운데 하나가, 그 사람의 암에 해당하는 것이 하나뿐이에요. ~ 중략 ~ 그 중에 772개 가운데 두 개도 없어요. 그 사람의 암은 하나 밖에 없어요. 그 사람의 체질이 제일 처음에 계산이 돼야 되고, 그 암의 조직이 무엇이냐가 계산이 돼야 되고, 그 사람의 암이 무슨 장기에 있느냐가 계산이 돼야 되고, 그 사람의 암의 위치가 상부냐 하부냐 중부냐에 따라 달라져야 하고, 그것이 건너가서 어디에 건너가 있느냐 이런 등등의 여러 가지를 계산해서 전부 달리 취급해야 되는 병이 바로 암입니다. 그래서 그 세계 속에 들어가 보면요, 우리가 이 세상은 암 아닌 보통 병 속에서 생각하는 것과는 완전히 생각을 바꾸어야 합니다. ~ 중략 ~ 그래서 아직도 더 연구가 창창히 남았습니다만 거기까지는 내가 해 가지고 있어서”라고 한 것도 보았다.

1999년 6월에는 772처방이었던 것이 2002년 10월에는 768처방이 된 셈인데 그것은 당시의 내가 상상할 수 있는 영역은 아니었다. 숫자가 변했다는 것은 연구가 계속 진행되고 있으며 진전이 있다는 의미가 아닌가 생각했다. 이때 이후로 지금까지 나는 권도원 선생의 20년이 무척 궁금하다. 상지대학교의 강연 내용을 알고 있고 또 조재의 씨의 책을 통해서 권도원 선생의 자신감을 접한 사람이라면, 이전에 8체질의학에 별 관심이 없었다고 해도 그의 암 치료 연구에 대해 궁금증과 함께 큰 기대를 품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암 치료 자료

 권도원 선생은 2001년부터 2002년 3월까지 미국 LA에 있는 White Memorial Medical Center를 정기적으로 방문하여 암 환자들을 치료하였다. 그 때 진료실에서 통역을 맡았던 교포간호사 이서양 씨가 남긴 자료가 있다. 이 자료에 등장한 암 환자는 11명이다.

권도원 선생은 2009년 11월 5일에 제선한의원에서, 『미래한국』의 김창범 편집위원과 12시 30분부터 네 시간동안 인터뷰를 진행하였고, 그것이 2009년 11월 18일에 나온 『미래한국』 <357호>에 실렸다. 인터뷰 내용 중에, 김경례 성균관대 명예교수(약학)를 중심으로 백만경 아주대 연구교수(신경학), 조정환 숙명여대 교수(약학) 등과 권도원 선생이 함께 참여한 논문이 미국 학술지인 Amino Acids에 실렸다는 것을 소개하였다. 이 논문은 암 환자에게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9개의 마크를 추적한 결과로, 체질침을 맞은 환자의 경우 이 마크들이 현저히 줄어들어 암이 치료가 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는 것이다. 논문에서 대상으로 삼은 환자는 직장암(55세 남), 폐암(52세 여), 유방암(59세 여) 세 case이다.

『월간조선』 2011년 5월호에 「체질을 알면 天命을 안다」라는 제목으로 실린 권도원 선생의 인터뷰 기사에서 김정우 기자는, “제선한의원을 찾은 환자는 처음 그의 외모와 행동을 보고 8체질의학에 대한 확신을 갖는다고 한다. 그는 매일 한의원에 출근해 오전 내내 40여 명의 암 환자를 치료한다. 우리 나이로 올해 91세지만 70대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는 외모에 가벼운 발걸음으로 뛰어다니기까지 한다. 평생 체질식을 실천해 온 권 원장 자신이 8체질의학의 산증인인 셈이다.”라고 썼다. 하루에 40명이라면 1년이면 누계가 1만 명 정도 된다.

권도원 선생의 아들인 권우준 씨는 2016년 10월 23일에 그랜드하얏트호텔에서 열린 모임에서 행한 강의 중에 이렇게 말했다.

“박사님은 암 환자에 손을 대시면서 일반 환자는 안 보셨어요. 지난 거의 20년간을 일반 환자는 안 보셨어요. 그래서 1단계 2단계 3단계 4단계 5단계 처방이 거기서 멈추었어요. 박사님은 그것을 그대로 두시고 암 처방으로 넘어가신 거에요. 암 처방은 대단히 분화되고 세분화되고 발전이 되었어요. 5단계까지 처방은 그때 거기서 멈춰버린 상황입니다. 특히 1단계 2단계 3단계 처방이 그렇습니다.”

20년간을 암 환자만 보았다면 위에 든 단순한 산술로, 암 환자 치료 경험이 20만 회 정도 되었다는 뜻이다. 100살을 넘긴 권도원 선생은 생존하고 계시지만 그가 경험한 치료 성과와 연구 결과가 제대로 정리되어 밝혀진 것은 없다. 그나마 Amino Acids에 실은 논문이 유일하다.

 

판타지

권도원 선생은 1958년 말에 체질침을 고안했다. 그리고 1959년 4월 26일 『동아일보』에 권항전의 이름으로 기고한 ‘사상의학의 창시자’에서, ‘「수세보원」은 네 가지 다른 바탕에서 사람을 말하는 새 인간학이요 새 철학으로, 이것은 진실로 시간적으로 19세기에 나타났으나 20세기 이후의 것이며 공간적으로 한국에서 발생하였으나 지구적인 것이니, 이 혜택이 널리 세계에 미치도록 선양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하였다. 또, 1965년 『의림』 47호에 쓴 신년소감에서, “한의학은 옛것이지만 그것을 발굴하려는 우리는 현대인이며 또 그것의 가장 높은 평가는 미래에 속한다. 그러므로 ~중략~ 미래인의 입장에 서야 된다”고 하였다. 그리고 1965년에 발표한 「1차 논문」의 결론에서 “심지어는 암의 경우라 하더라도 물론 아직까지는 임상 경험이 충분하지는 않은 형편이지만 그것을 치료해 내는 것 역시나 상당히 희망적이라는 사실을 필자가 파악해냈다는 점도 덧붙일 수 있다.”고 했다.

권도원의 시대에서 암 치료법을 연구한 20년은 정리되지 않았다. 나는 지난 〈1321호〉 ‘창시자의 판타지’에서, “물론 모든 창시자에게는 판타지(fantasy)가 있다.”고 썼다. 권도원 선생이 남긴 연구 자료가 누구에게 있건 간에, 그것에서 판타지적 요소를 가려내는 것이 향후에 후학들이 수행해야 할 필수적인 과제라고 분명하게 밝히고 싶다.

 

이강재 / 임상8체질연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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