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사 박히준의 도서비평] Let’s M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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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사 박히준의 도서비평] Let’s Move!
  • 승인 2022.03.11 0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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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히준

박히준

mjmedi@mjmedi.com


도서비평┃움직임의 뇌과학

봄이다. 겨우내 봄을 기다리며 가지 끝 꽃망울에 기운을 가득 모아 꽃 피울 준비가 한창이다.

나도 추위에 움츠러들었던 몸과 마음을 들어 밖으로 발걸음을 향한다. 가볍게 걷거나 달리며 나도 봄을 준비한다. 걷거나 달리는 일은 앞으로 나아가며, 새로운 길로 나를 인도하는 일이다.

캐럴라인 윌리엄스 지음, 이영래 옮김, 갤리온 출간
캐럴라인 윌리엄스 지음,
이영래 옮김, 갤리온 출간

오늘은 바람을 가르며 한강 다리를 건너면서, 문득 윤동주 시인의 “새로운 길”이란 시를 떠올렸다.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어제도 가도 오늘도 갈/ 나의 길 새로운 길/ 민들레가 피고 까치가 날고/ 아가씨가 지나고 바람이 일고/ 나의 길은 언제나 새로운 길/ 오늘도, 내일도/내를 건너서 숲으로/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그렇다. 나가서 걷다보면 굳이 다른 길로 가지 않더라도, 길은 항상 새로움을 준다.

1분 달리고도 헉헉대며 얼굴이 붉어지던 때가 엊그제이지만, 조금씩 달리는 시간이 반복될수록 나의 삶에도 소소한 변화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우선 스트레스에 대한 내성이 좀 더 생겨났고, 화가 나는 경우에도 툴툴 털어버리고 가기가 수월해졌다. 무엇보다도 달리기에서 내 페이스 유지의 중요성을 깨달은 순간, 더 이상 삶에서도 성과나 상황을 남과 비교하지 않도록 무던히 노력할 수 있는 힘이 생겼다. 잘 달리는 사람의 페이스만 따르려는 시도처럼 무모한 일이 있을까? 결국 달리기이든 인생이든 부상을 입거나 포기하게 되기 쉬울 뿐이다. 조금씩 아주 조금씩 내 페이스에서 나아지도록 노력하는 것만으로도 인생은 충분한 가치를 지닐 수 있다.

걷기와 달리기의 효과를 경험하게 됨에 따라, 움직임과 관련된 다양한 책들을 찾아 보게 되었다. 그 중에서 내 흥미를 유발한 책 한 권을 소개하고자 한다. 책 제목은 “움직임의 뇌과학”.... 움직임에 뇌가 관여하는 것은 누구나 아는 상식이다. 그런데, ‘움직임의 뇌과학’에서는 우리의 상식 이상의 무엇을 알려 줄 수 있을 것인가? 책의 부제인 “움직임은 어떻게 스트레스, 우울, 불안의 해답이 되는가?” 역시 운동이 스트레스나 정신건강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수 많은 책과 구별되지 않아 보인다.

그러면, 이 책은 왜 나에게 흥미롭다고 생각되었을까?

그 첫 번째 이유는, 운동하면 좋다라는 홍보형 글이 아니라, 움직임이 왜 중요한가라는 질문에서 시작한다는 점이다. “동물이 애초에 뇌를 진화시킨 것은 생각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움직이기 위해서” 생겨난 것이라는 다양한 근거를 제시한다. 식물과 다르게 동물이 움직이려면, 시시각각 외부 환경에 대응하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다. 이러한 대응을 위해서는 다양한 가능성과 규칙을 파악해야 하고, 이를 통해 위험을 줄이기 위한 계획을 세울 필요가 있다. 결국 우리 뇌는 몸을 잘 움직이기 위해 생각하도록 진화한 것이라는 주장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실제 움직임은 근육을 필요로 하는 생존기능이지만, 그와 동시에 어디로 가야하는지 알아내야 하는 “인지기능”을 언제나 동반해야 한다.

그 다음으로, 이 책이 다른 책과 다른 점은, 움직임을 매개로 하되, 몸과 마음의 연결고리와 관련된 과학적 근거에 주목한다는 점이다.

움직임이 뇌의 인지기능이 직접 관련되어 있다는 많은 증거가 있다. 그 중 세계적 신경과학자인 Eric Kandel 인터뷰가 흥미롭다. “저는 걷는 것을 좋아해요... 걷기에 관련된 저술을 읽으면서, 뼈가 내분비샘이고 오스테오칼신이라는 호르몬을 분비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 그러다...오스테오칼신을 주입하는 실험을 했고, 이것이 기억을 증진하며 여러 지적 기능을 강화한다는 것을 발견했죠.” 중력에 저항하며 움직일 때 뼈에서 만들어지는 오스테오칼신은 뼈를 튼튼히 하는 역할이리라는 처음 예상을 깨고, 혈액을 통해 뇌에 메시지를 전달하는 역할이라니, 참으로 흥미롭지 않은가.

또한 이 책에서는 걷기나 달리기처럼 중력에 저항 움직임에서 나타나는 뼈의 역할 이외에도, 다양한 신체 기관과 뇌의 관계에 대한 근거들을 찾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정신력에 영향을 미치는 근력의 역할이나, 단단한 코어의 중요성, 결합조직과 스트레칭이 염증 조절과 기분에 미치는 영향, 호흡조절과 감정 제어의 힘 등을 제시하며, 몸을 구성하는 각 인체 구조들이 움직임을 매개로 어떻게 마음 조절과 인지기능과 관련을 맺게 되는지에 대한 재미있는 근거들을 다각도로 조명한다.

마지막으로, 우리의 뇌가 움직임을 위해 진화되어 온 것이라고 한다면, 적절한 움직임은 정서적인 안정과 건강한 뇌기능을 유지하는데 필수적인 요건이 아닐 수 없다. 결국 걷기, 뛰기, 그리고 춤추기 등 다양한 몸의 움직임은 취미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뇌를 뇌답게 만들어 주는 중요한 삶의 여정일 수 있다.

따스한 봄 기운이 밖으로 우리를 불러내는 이 때, 뇌가 우리에게 오래전부터 준비해 놓은 선물을 누리기 위해 일단 밖으로 나가보면 어떨까? 아마도 어제와 다른 새로운 길이 우리를 맞이하고 있지 않을까. 일단 지금 움직여 보자. Let’s move!!

 

박히준 / 경희대 침구경락융합연구센터 소장, 경희대 한의대 교수, 장-뇌축기반 맞춤형 침치료기전 연구실 P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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