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의 주역] 지화명이 - 눈 먼 권력자의 최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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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의 주역] 지화명이 - 눈 먼 권력자의 최후
  • 승인 2022.03.11 0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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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원

박혜원

mjmedi@mjmedi.com


박혜원
장기한의원장

권력을 오래 쥐고 있다보면 사람이 변한다. 이것은 뇌과학으로도 증명된 이야기이다. 권력을 가진 사람은 상대방의 감정을 헤아리는 거울뉴런이 잘 활성화되지 않는다고 한다. 역지사지의 정신이 없어지며 아래를 내려다보지 않게 되는 것이다. 독재자가 위험해지는 것은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 오랫동안 권력을 쥐고 있으면 그것이 당연해지며, 자기 외의 다른 사람은 올바른 결정을 내리지 못한다는 오만에까지 찌들게 된다.

주역에도 이와 같은 상황을 나타내는 괘가 있다. 바로 지화명이다.

지화명이의 효사는 이러하다.

 

明夷 利艱貞

彖曰 明入地中明夷 內文明 而外柔順以蒙大難 文王以之 利艱貞 晦其明也 內難而正其志 箕子以之

 

불은 태양과 같은 것이고 땅 위로 떠올라 만물을 비춰야 하는데, 땅 속에 갇혀 있으니 지금 세상은 암흑으로 뒤덮인 상태이다. 이런 때에 아무렇게나 행동하면 넘어지기 딱 좋다. 그렇다고 내내 움츠러들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을 수만은 없다. 그러니 그 어려움을 무릅쓰는 것도, 그 밝음을 숨기고 때를 기다리는 것도 필요하니 어렵고도 바르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初九 明夷于飛 垂其翼 君子于行 三日不食 有攸往 主人 有言

 

초구는 충절을 지키며 수양산에서 굶어 죽은 백이 숙제를 나타내는 효사이다. 주 무왕이 은 주왕을 치러 갈 때 백이와 숙제는 두 가지를 들어 만류했다고 전해진다. 첫째, 선왕의 탈상도 마치지 않은 채 정벌을 떠남이 옳은가, 둘째, 신하 나라가 주군의 나라를 치는 것이 옳은가. 그들의 말이 예(禮)이고 의(義)임은 맞으나 지금은 그런 것을 따질 시기가 못된다. 날아 오르려거든 날개를 위로 향하게 하고 파닥여야 하는데 그 날개를 떨어뜨린다는 것은 하강을 의미할 것이다. 초야에 묻혀서 왕의 부름에도 응하지 않고 고집스레 굶어 죽는 것을 택한 것에 옳다 그르다를 가릴 수는 없으나 후세에까지 이 일이 회자되는 것을 보면 말이 없을 수가 없다.

 

六二 明夷 夷于左股 用拯馬 壯 吉

 

육이는 음효가 제 자리에 있으니 중정(中正)했다고 보고, 문왕을 나타내는 효사이다. 왼쪽 다리를 상했다는 것은 제 자리에 있으나 나아갈 수 있는 상태가 아니라는 것이다. 상전에는 육이의 길함이 順以則也라 했다. 순응함으로써 법도를 지킨다는 것이다. 문왕이 옥에 갇혀 있는 것을 구원하는 말은 타당한 이유이며, 명분이고, 주위의 심정적 지지이며, 결국은 문왕을 구하러 올 무왕이다. 그러니 구원하는 말을 씀에 건장하면 길하다.

 

九三 明夷于南狩 得其大首 不可疾貞

 

구삼은 무왕을 상징하며, 상육과 짝이 되어 폭군인 주왕을 나타내는 상육을 처치함을 나타낸다. 세번째 효사의 자리는 아래에 있는 내괘에서 위쪽에 있는 외괘로 건너가는 곳이라 투쟁과 고난이 없을 수가 없다. 육사부터는 외괘인 곤괘로 넘어가니, 불은 이제 스스로를 숨기고 고개를 숙이며 땅 속으로 들어갈 시간이다. 해가 지평선으로 넘어가기 직전의 시간은 아주 짧다. 그 사이에 사냥을 하여 큰 머리를 얻어야 하니 바른 것을 따질 새가 없다. 초구에게 비난을 얻더라도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빠르게 얻는 것을 택해야 하는 것이다.

 

六四 入于左腹 獲明夷之心 于出門庭

 

육사는 주왕의 이복형제인 미자(微子)를 의미하는 효사이다. 형제인 만큼 주왕의 신뢰를 얻었으나 폭군인 주왕에게 아무리 간언을 해도 듣지 않자 예악(禮樂)을 관장하는 관리들과 제사 도구를 가지고 자기의 영토로 피신했다. 상전에 入于左腹 獲心意也라 하였다. 그 마음과 뜻을 얻어서 계속 폭군 옆에 있으며 호의호식할 수도 있었지만 문정으로 나오는 것을 택했다. 제사 도구를 모두 가지고 왔다는 것은 천자(天子)라고 불린 왕의 권위를 인정할 수 없다는 뜻이다. 아무리 형제라 한들 폭군이 인내할 수 없는 지경에 다다른 것을 의미한다.

 

六五 箕子之明夷 利貞

 

다섯번째 효는 보통 왕의 자리이지만, 왕도 아닌 기자가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음은 이 괘의 상태가 정상적이지 않음을 뜻한다. 기자는 무왕에게 선정을 베푸는 방법으로 홍범구주(洪範九疇, 세상을 널리 다스리는 아홉가지 규칙)를 전해준 사람의 이름이다. 그는 주왕에게 간언을 하다가 감옥에 갇히자 미친 사람 행세를 하여 거기서 풀려났다고 한다. 왕이 왕의 노릇을 하지 못하는 어두운 세상에는, 기자와 같은 현자가 우군을 대신하여 올바른 원칙을 강력하게 설파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일단 살아 있어야 그것도 가능하다. 아무리 현자라 한들 폭군의 손에 목숨을 잃는다면 다음을 도모할 수 없다. 미친 사람 노릇을 하는 것이 어디 예와 의에 맞겠느냐만 그럼에도 살아남아 도모해야 할 일이 있기에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다. 미친 사람 노릇을 하는 동안 정말 미치지 않고 올바른 정신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바르고 밝게 갈고 닦는 것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 한편으로는 폭군이 믿을 정도로 미친 사람 노릇을 해야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현자인 자신을 유지해야 하니 어려울 수밖에 없다.

 

上六 不明 晦 初登于天 後入于地

 

상육은 폭군 주왕이며, 이 어두운 세상을 초래한 장본인이고 왕임에도 불구하고 중정하지 못한 암군이다. 해는 땅에서 솟아오르지만 결국 땅 속으로 다시 들어가는 것이 세상 이치이다. 낮동안의 태양이 아무리 밝다해도 세상에는 결국 어둠이 찾아오며, 그 어둠 역시 결국엔 때가 되면 끝난다. 자신의 때가 끝날 줄 모르고 폭력을 저지르는 자들은 결국 그 때가 끝났을 때에 죄값을 치르게 되어 있다.

역사에는 폭군과 암군이 없던 시절이 별로 없었다. 그것은 현대에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무엇을 얻으려고 했는지는 몰라도 지금껏 얻은 것 없는 전쟁을 계속해서 고집하는 독재자는 상육과 같다. 어떤 이들은 초구와 같이 푸틴의 도발에 응한 젤렌스키가 나라와 국민을 걸고 잘못된 선택을 했다고도 말한다. 그러나 그는 계속해서 수도를 지켰고, 친러 성향이었다는 전직 대통령마저 고국으로 돌아와 거기에 합류했다. 육사와 같이 러시아의 국민들도 반전 시위에 참가했다. 반전 시위에 참가한 러시아 어린이들이 경찰서에 붙잡혀와 나란히 유치장에 앉아 있는 사진마저 뉴스에 올라왔다. 폴란드 사람들은 국경을 넘어오는 우크라이나 사람들에게 구호물품을 제공하고 우크라이나의 맥도날드와 KFC는 군인과 민병대를 위해 모든 음식을 무료로 제공하는 중이다. 어나니머스는 러시아의 주요 웹사이트들을 해킹하기 시작했고 일론 머스크는 우크라이나 지역에 스타링크 서비스를 제공했다.

그러나 상육만 모른다. 동이 트기 직전인데도 아직 어둡다는 것만 믿고 자신이 어떤 처지에 놓여 있는지를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그 끝을 안다. 역사의 많은 폭군들의 최후가 그러했듯이, 그 긴 시간의 끝이 어떻게 끝나리라는 것을 그만 빼고 다 알고 있다. 어두움을 내모는 것은 빛이며 그 빛은 전세계에서 계속해서 당도하는 중이다. 부디 그가 해가 중천에 떴음에도 어둡다 고집을 부리는 짓을 더 이상 지속하지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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